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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2-31 (월) 10:0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214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라(빌 3:12-14)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종종 운동 경기를 사용하여 비유적으로 교훈한 적이 많습니다. 권투나 레슬링, 올림픽 경기의 달리기, 마라톤의 용어를 사용한 적이 많은데, 오늘 본문에도 달리는 경주자의 삶으로 우리 신앙생활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신 말씀이 3장 마지막 절까지의 주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저와 여러분을 택하셔서 부르신 까닭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이르는 것뿐만 아니라, 훗날 그 부름의 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부르신 부름의 상을 생각하며,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 성숙해져야 함을 간절히 열망함을 나타냅니다.
먼저 문맥을 살펴보면 3장 4-11절에서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된 삶을 말하면서, 화려한 이력과 함께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그러한 세상적, 종교적 이력에 비교할 때에 배설물에 지나지 않음을 선포합니다(8절). 인간적으로 성취한 모든 것을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나 그 능력, 또한 주님을 알고 교제하는 것과 바꿀 수 있음을 담대히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빌립보교회 안에는, 내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주장하는 완전주의자들로 혼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은혜로 받는 것과 구원받은 신자가 세상에서 불완전하게 살고 있기에, 완전히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는 시간까지 이 세상에서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을 거치며 더욱 영적으로 성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12절상)고 하였으며,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13절상)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로 믿고 사는 성도는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상을 위하여 영적으로 성숙해지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완전히 닮는 그 날에 이르기까지 내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고후 3:18). 육체적으로도 아이들은 자라기를 원하듯이 영적인 아이들도 자라기를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2018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해를 결산하며, 새해를 맞는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어떤 결심(resolution)을 하려고 합니까?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아진 우리 자신의 모습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12절)고 합니다. 여기 "좇아가노라(press on)" 하는 단어는 ‘뛰어간다, 따라간다’라는 뜻으로, 적극적으로 힘을 다하여 좇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생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생을 살아가는 바울의 삶의 목적이 그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같기에, 즉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니라"(롬 8:29)고 하신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게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3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현재 경주하는 우리의 삶은 과거와 미래가 있다는 시간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출생할 때 시작되었고, 어제까지의 과거가 있었고, 오늘의 현재가 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시 경주해야 할 내일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경주자가 만약 뒤에 시선을 두면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경주에 실패합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마라톤을 하면서 뒤를 자꾸 보고 신경을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 운전하면서 Back Mirror만 보면서 운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앞을 보아야지요. Back Mirror를 보는 것은 뒤로 갈 경우가 생기거나, 앞으로 가기 위해 주의해야 할 것이 없나 살펴볼 뿐입니다.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으라는 말씀은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지은 죄에 대한 회개를 하며 자기 반성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회복을 위해서 회개는 꼭 필요합니다. 또한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회고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감사는 축복의 엔진과도 같습니다. 다만, 과거의 실패에 집착하여 현재 삶에 용기를 갖지 못하여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지 못하거나 혹은 과거의 성공을 회상하며 현재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쳐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못하다고 하였습니다(눅 9:62). 우리 성도들의 삶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죄된 과거는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여 깨끗이 버리고, 과거에 받은 축복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영광을 돌리고,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2018년도 내일 하루 남았습니다. 지은 죄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회개하고 깨끗하고 정결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바랍니다.
13절에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에서 ‘잡으려고’하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앞서 최선을 다하여 내 근육의 한계까지 늘려서 목적지까지 뛰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에 머물러 안주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니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푯대, 즉 목적지에 집중하여 뛴다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라고 하는 제자리에 멈추거나 주저앉아 버리면 지금까지 달려온 과거는 송두리채 없어지고 맙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을 잃고 맙니다.
그래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가노라"(14절)고 하였습니다. 초점에 집중하는 것이 없이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은 전혀 쓸모 없습니다. 모든 마라톤 선수는 앞에 놓인 목적지에 눈을 떼지 말고 집중하여야 함을 잘 압니다.
바울은 지금 완전한 자가 되지 못하였으니, 또 이 세상에 사는 한 자신이 완전한 자가 될 수는 없으나, 일심으로 그 온전함을 향하여 뛴다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처럼(약 1:8)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은 우리 성도들이 경주하는 동기를 제공합니다.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상은 주께서 우리를 저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에 주어집니다(참고- 마 5:12; 눅 6:23; 고전 3:12-15). 물론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승점은 천국입니다. 바울은 임종을 앞두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라고 고백하였듯이, 그 동안 부지런히 한 가지 목적에 집중하며 최선을 노력을 다하여 뛰어온 그에게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아테네에서는 올림픽 마라톤 승리자에게 월계관을 머리에 씌워주고 500 드라크마의 상금이 주어지며, 원형극장에서는 특석으로 제일 앞줄 귀빈석에 앉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승자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급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급 개념을 영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적인 경주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동기는 그 마지막에 있을, 하나님께서 주실 부름의 상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상을 받기 위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정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노력하기 원합니다.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목적지인 푯대에 초점을 집중하여 달음박질하기 원합니다. 심령이 느슨해질 때마다, 헌신이 약해질 때마다 주님 만날 그 시간에 주실 부름의 상을 바라보십시오.
뒤의 것을 버립시다. 잊어버립시다. 청교도였던 천로역정의 저자 John Bunyan 은 “신자의 등에는 갑옷이 없고 앞가슴에만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미래지향적으로 경주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에 자만하지도 안주하지도 맙시다. 우리는 계속하여 주님 만나는 그 시간까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목적지에 도달할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한 가지 목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그 초점을 잃지 않고 집중하여서 달려가야 합니다. 이유는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 우리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에 주님을 의지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모세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고 하였으며, 욥도 “나의 날이 베틀의 북보다도 빠르다”(욥 7:6)고 하였고,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시간은 급히 달려오는 날개 돋친 마차’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누군가 돌아오지 않을 네 가지를 지목하였는데, 1) 입으로 내 뱉은 말, 2) 날아간 화살, 3) 지나가버린 인생, 4) 놓쳐버린 기회(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미 있고 내용이 있는 말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도록 집중하여 쏘아야 하고, 인생이 다 지나간 후에 후회하지 말고 오늘 하루 보람 있게 살아야 하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오랫동안 호스피스에서 일하던 어떤 간호사는 임종을 앞둔 많은 분들이 가장 후회하는 일들이 주로 그 동안 일만 죽도록 하고 살아온 것, 마음이 있는 것들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한 것, 그리고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살아온 것들 이라고 합니다.
또한, 유명한 시인 H.W. Longfellow 는‘당신이 왜 그 일을 그릇되게 했는가를 설명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말고, 당신이 그 일을 어떻게 바르게 행하고, 행하였는가에 시간을 사용하라. 그것이 더 짧게 걸리고, 더 많은 일을 창조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얽매이는데 소비하는 시간보다 미래를 생산하는 데에 시간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라는 말로 여겨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며 새해를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원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66권이 있습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2:2)고 하였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성경을 가까이 하셔야 합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니라"(고후 13:9하) 라고 하신 것처럼 기도가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올해보다 새해에는 더욱 기도하는 시간이 많기를 바랍니다. 정해놓고 기도하시고, 기도 모임에 열심히 함께 하셔서 기도하시고, 무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숙한 성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고전 4:16; 11:1). 우리 주위에 훌륭한 성도들의 모습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본을 보이고 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어진 환경입니다. 좋은 환경은 물론이고 어려운 환경이라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주어진 것을 깨달아 무언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토기장이 하나님께서는 종종 고난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빚으십니다.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십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고 하였습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와 같은 자원들을 잘 선용하여 새해를 더욱 힘찬 경주로 주님 만날 그 날을 사모하며 주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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