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22,217
오늘방문 : 5616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8-14 (일) 01:0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757    
믿음이 온 후로는 (갈 3:23-29)


자유를 잃고 무엇엔가 얽매어 산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겪어본 사람들 만이 압니다.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나, 일제시대에 얽매어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힛틀러의 나치 아래 살던 사람들, 오늘도 북한에서 공산당 아래 자유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혹은 술이나 마약 중독자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풀려난 후에야 자유가 얼마나 좋은지 압니다.

바울은 우리가 복음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것임을 증명하였습니다(갈 3:15-22).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다윗의 언약으로, 그리고 궁극적인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아무 조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기 때문에 정죄도, 심판도 받지 않고 오히려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어 영원히 그 유업을 받아 누리게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어떻게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으로 인도하는지, 다시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깨우쳐 줍니다. 우선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23절)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때까지 율법 아래 매인 자로서 감옥에 갇혔었다고 표현합니다. 정신적으로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나가려면 간수가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 “갇히다(kept in custody)”라는 단어의 뜻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당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가정교사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4절)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번역의 몽학선생(tutor)은 중국어 성경에서 따온 말로, 중국이 징기스칸의 몽고의 지배를 받았을 때 중국사람들이 몽고의 말이나 풍습을 배우기 싫어하였습니다. 마치 일제시대에 일본사람들이 일본말과 풍습을 가르칠 때 우리나라 사람이 싫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몽고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몽학을 배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몽학을 가르쳐야 하니 얼마나 그 선생이 엄격했을지 상상할 수 있지요. 1세기 당시 유대인들 문화에서는 똑똑한 노예가 각각 주인의 자녀 가운데 한 명을 맡아 그를 훈육하는 엄격한 보모 역할을 했습니다. 주인의 자녀가 허락을 받지 않고 학교를 벗어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이 선생이 체벌하였습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 몽학선생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이 몽학선생의 이미지와 연관시킴으로, 율법은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 큰 벌을 받게 되는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도록 합니다. 그래서 24절에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감옥을 지키는 간수를 제거하여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냥 두면 아무 소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소망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결과 믿기만 하면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25-26절)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더 이상 몽학선생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이 감옥을 지키던 간수들을 다 제거하시고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 은혜를 감사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얽매였다가 풀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으니 그 감동과 감격을 생각하고 말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27절)고 합니다. 즉 믿음이 온 후라는 뜻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지위와 신분을 하나님 앞에서 얻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맏아들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아이가 자라서 성년이 되면 아이들이 입는 옷을 벗고 어른들이 입는 옷(toga), 즉 로마인들이 입는 헐렁한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그가 성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된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몽학선생 아래 엄격한 훈련을 받다가 성인이 되면 아이의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혀 주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온 후에는 율법이라는 옛 옷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는 것입니다. 자유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교회에게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3-24)고 한 것입니다. 새 사람의 옷을,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의무와 책임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옷 입은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28절)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의 옷을 입게 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변화가 가져온 다른 사람들과의 수평적인 결과를 말합니다. 믿음의 온 후로는 모든 차별이 사라집니다.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당시에 어느 누구도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노예든 자유인이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는 자는 지위와 신분에 관계 없이 모두 하나라고 합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동양인이든 스패니쉬든 상관이 없습니다. 종이든 주인이든, 고용주이든 고용인이든,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상관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성 차별이 없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믿고, 회심한 모든 자들은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모든 인간은 다 다릅니다. 구별됩니다. 다른 것이 없어지고 다 똑같아 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 다르지만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그의 아들들이며 딸들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차별대우 하지 않습니다. GOD NEVER DISCRIMIANTES PEOPLE! 그리고, 믿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다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라는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다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고 명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되게 하셨는데 힘써 지켜야지 깨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믿음이 온 후,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29절)고 합니다. 바로 지난 주일에 살펴본 아브라함의 언약의 성취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으로서 복의 근원으로, 축복의 통로로 그의 유업을 잇게 된 것입니다. 이미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하였습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감옥에 매여 살던 우리를 풀어주어 자유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복을, 상급을 주셨으며, 앞으로 더 주실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 예수님 재림하시면 천국에서 새로운 상을 주실 것입니다. 물론 그 때의 영광과 상급이 다 똑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유와 신령한 복을 가지고 올바로 사용했는지, 자주 사용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을 신실하게 섬겼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에 얼마나 충성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믿기 전에는 모든 인간이 무엇인가에 매어 살아갑니다. 마치 어떤 감옥에 갇힌 자처럼 말입니다. 죄의 권세에 억눌려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이런 인간들을 자유하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사 61:1-2)고 하셨습니다. 몽학선생인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은 후에는 우리가 몽학선행 아래 있지 않으며, 1)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26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2) 믿은 후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3) 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27-28절). 4) 또한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으로서 약속하신 대로 유업을 받습니다(29절). 신령한 복을 받습니다. 상급을 받습니다. 복을 받아 복의 통로가 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전 6월 21일에 우리나라가 최초로 자체로 개발한 ‘누리호’ 우주선을 쏘아 올려 세계에서 7번째로 실용위성을 자력으로 우주에 보낼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달 탐사선 ‘다누리’도 쏘아 올렸습니다. 그런데 다들 몇 번 연기를 거듭한 후에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결함이 있으면 안되니까요.
기억하시나요? 1986년 미국 우주선 챌린저가 발사 73초 후에 폭발해서 7명의 우주인이 희생되었습니다. 원인은 작은 고체 연료 추진기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 우주선의 앞 유리창을 만드는 유리 제조업자라고 상상해 보세요. 유리 제조 과정에서 조그만 결함이 생겨 유리창에 거품이 하나 들어간 것을 알고, NASA 관계자에게 ‘우주선 모든 유리창이 다 괜찮은데 딱 한 군데 결함이 있습니다. 나머지는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함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유리 자체는 아주 좋은 유리입니다. 지금 우주선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입니다’ 라고 예기하면, 우주선 기술자가 받아주겠습니까? 나머지 부분에는 아무 결함이 없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유리 자체가 품질이 뛰어나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선 앞 유리창이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불완전하여 우주선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완전해야, 완벽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모두 다 지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롬 3:23).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완전해질 수 있나요?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가 덧입혀져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믿고 받아들일 때 그렇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에게 진 빚을 다 갚아 주셔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그 결과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며, 인종, 남성/여성, 혹은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모두 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으며,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유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89 주일설교 왕의 탄생 (마 1:18-25) 한태일 목사 2022-12-18 308
1288 주일설교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요일 1:5-10) 한태일 목사 2022-12-11 330
1287 주일설교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요일 1:1-4) 한태일 목사 2022-12-04 341
1286 수요설교 나를 살피고 판단하사 (시 139:23-24; 히 12:12-17) 한태일 목사 2022-12-01 360
1285 주일설교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갈 6:11-18) 한태일 목사 2022-11-27 432
1284 절기설교 은혜의 가시 (고후 12:7-10) 한태일 목사 2022-11-20 320
1283 수요설교 신령한 복으로 섬기는 믿음 (행 16:11-15) 한태일 목사 2022-11-17 385
1282 주일설교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6-10) 한태일 목사 2022-11-13 411
1281 주일설교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라 (갈 5:26-6:5) 한태일 목사 2022-11-06 363
1280 수요설교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벧전 4:7-11) 한태일 목사 2022-11-03 323
1279 주일설교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렘 35:1-11, 19) 한태일 목사 2022-10-30 406
1278 수요설교 고난으로 갑옷을 삼으라 (벧전 4:1-6) 한태일 목사 2022-10-21 522
1277 주일설교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 5:16-25) 한태일 목사 2022-10-16 503
1276 주일설교 기도의 권태(계 8:1-5) 관리자 2022-10-03 340
1275 주일설교 네 영혼이 잘됨같이 (요삼 1:2) 관리자 2022-09-28 531
1274 주일설교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갈 5:13-15) 한태일 목사 2022-09-18 518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