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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5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624    
[1/22/06] 우리 하나님은 (4)
우리 하나님은 . . . (4) (시편 42:1)
- 찾으면 만나 주시는 하나님–

저는 새해를 맞아 우리 신앙의 기초를 다시금 다지며 점검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믿는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확실히 알고, 확실히 믿고, 확실히 우리 삶에 적용하여 실천하는 생활을 하기 원합니다. 제일 먼저 우리 하나님은 절대주권의 하나님으로서 온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며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서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다 준비해 놓으시고, 허락하신 것이든지 앞으로 허락하실 것이기에 그저 순종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이 그 좋은 한 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거저 받은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거저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찾기만 하면 만나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주권의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면 우리를 만나주시는 인격적인 분입니다. 다른 우상 신들과 달리, 죽은 신들과 달리 정말 살아계셔서 자녀된 우리가 찾으면 만나주십니다. 성경 곳곳에서 이러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신 4:29), “내 아들 솔로몬아 나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대하 26:5),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 27:8),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 6:3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눅 11:9-10),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이 외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필요한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세상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 맨 처음에 놓아야 할 것입니다.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하고,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삶의 전부가 하나님을 찾는 것, 추구하는 것에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것을 찾고, 추구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명예를, 쾌락을, 성적 욕구를 추구하고 삽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나 세상 권력을 추구합니다. 혹은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집, 친구들, 취미 등을 추구하고 삽니다. 또는 자식을 바라보고 삽니다. 자식이 잘 되기만을 구하고 삽니다. 아니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성취감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렇게 살면 자신 내면의 비어진 공간이 채워지리라 생각합니다. 만족하게 되고, 행복해 지리라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혜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듯이 그러한 것들로 만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술로, 도박으로, 마약으로 빠져버립니다. 아니면 그저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갑니다. ‘죽으면 그만인데 뭐’ 하며 삽니다. 참으로 비참하고 허무하게 인생을 마칩니다. 파스칼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공백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공백을 채우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하나님께서 채우지 않으면, 다른 것이 그것을 채우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쓰레기로 마음을 채웁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떤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을 갈급하게 찾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문맥을 살펴보면 주위 사람들이 이 시편 기자를 향하여, 그의 믿음을 비방하는 것을 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이나 환경을 보고, 자신들의 잣대로 그를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3절)라고 말입니다. 그것도 가깝게 지내며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듣는 소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5절, 11절)!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주위에서 무어라 해도 자신은 하나님만 찾습니다. 하나님만 바랍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인생에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제게 여러분의 스케줄과 Checkbook 을 보여주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시간과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가 보면, 여러분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말과 행동은 거짓이, 가식이 섞여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의 시간과 돈은 거짓말할 줄 모릅니다.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제게 자신있게 여러분의 시간과 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말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마 5:6)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르다면 반드시 채우시는 은혜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얼만큼 하나님의 ‘의’를 원하십니까? 정말로 간절히 원한다면, 여러분이 찾는 의는 어떤 것이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현재 우리가 원하는 만큼 하나님께 다가갑니다. 만약 우리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거나, 아니면 이것이 원래 내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변하지를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여러분이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은 그 곳에, 그 상태로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나은 어떤 것을 갈망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면, 찾으면 하나님과 아주 친밀하게 동행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기도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몸에 깊이 배어 있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 다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느냐, 찾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찾으면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찾지 않으면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변하지도, 성장하지도, 그렇게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고, 아무리 애써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핑계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옭아매는 세 가지 핑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연민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그래서 개인적인 책임을 피하게 하는 거짓입니다. ‘나는 원래 그래, 그런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든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 세상이 나를 타락하게 만들었지,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라든가, ‘나 만 그런가, 다른 사람도 다 그런데 뭐’ 하면서,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아내나 자식들을 원망하면서 그들이 자기에게 더 잘해 주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하며 신세한탄을 하는 자기 연민에 빠지면, 자기 자신에게 열중한 나머지 자신이 사실상 우주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의기소침해 있는 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두번째 핑계는 ‘노력하는 중이다’(I try)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면 그저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변명에 불과한 말입니다. 무슨 일을 좀 해보라고 하면 ‘노력해 보지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든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통독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살을 뺄 수도 있고, 안 뺄 수도 있습니다. 욕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욕할 수도 있습니다.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끊을 수도 있습니다. 진실할 수도 있고, 진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도 있고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력하는 중이라’ 라는 말은 여러분이 느끼는 부담을 덜어주는 한낱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하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모두 거짓말입니다. 세번째 핑계는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거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나는 고칠 수 없어’, ‘변할 수 없어’ 라고 생각이 굳어졌다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무서운 것은 스스로 변화되기를, 고치기를 원하기 전에는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원하지도 않는데 일부러, 억지로 하지는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그렇게 폐인으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 같으면 부끄러운 구원이 될 것이고,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속에 살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스스로 바꿀 수 없지만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찾고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 주실 수 있고,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해야 할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일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살아갑니다. 선택의 대부분은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결정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결정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앞서 했던 선택과 나중에 하게될 선택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떤 선택도 그저 ‘사소한’ 선택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가 빛을 향하여 한 발짝 더 나아가던가, 어두움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아무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은 선택조차도 우리를 둘 중에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가 내린 결정에 담겨 있는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의미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조금씩, 한 발자국씩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뜻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대하십니다. 하나님을 찾게 되면, 만나게 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빛을 찾는다면, 찾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핑계를 대며, ‘노력하는 중’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을 멈추고, ‘나는 안돼,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을 바꾸어 빛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조금씩 나아갈 때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면 어두움을 향해 가려는 충동을 느낄 때에도 빛 가운데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고 계십니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추구하고 계십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그것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을 잘 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서 한번 질문해 보세요. ‘내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 삶을 볼 때에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까?’ 사실 믿지 않는 사람조차 그 차이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처럼, 목이 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음 같이,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원하지 않으시면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간절히 찾으면 만나주십니다. 우선 여러분의 마음에 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고쳐져야 하는데, 나의 모습 이대로는 부족한데, 더욱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데’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주위에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채우십시오. 아마 아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있는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친구들을 찾아내어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들이 가는 곳에 가고, 그들이 하는 것을 하십시오. 그들의 모범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그들을 쫓아가지 못해 당신이 떠나게 되든지, 그들의 영향을 받아 당신도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든지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훈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제게 참을성을 주십시오. 지금 당장 말입니다’ 라고 합니다. 우리는 참을성 있게 주님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다림에는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주님을 닮게 합니다. 기다리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더 가까이 알고자 하는 갈망을 더합니다. 물을 찾아 헤매는 목마른 사슴과 같은 심정이 됩니다. 때때로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도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고 하는 귀한 고전을 쓴 토마스 아켐피스는 ‘행복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행복도 하나님도 얻지 못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을 만나며, 알게 되고 영원한 삶, 기쁨, 평안, 삶의 행복도 얻게 된다고 합니다. 형통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놓기 전에는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만족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깨닫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늘 하나님을 찾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구하기 바랍니다. 아니 우리 주님이 여러분의 삶에 전부이기를 바랍니다. 찾으면 만나주십니다. 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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