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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5:0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44    
[4/30/06] 평신도 전도자 빌립
평신도 전도자 빌립 (사도행전 8:1-8)

‘사람들은 많은 데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적다’, ‘교인은 많은 데 정말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교인은 적다’ 는 말들을 들어보셨는지요? 저도 가만히 지나온 목회를 돌아다보면 결국 교회 프로그램이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맡은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음을 깨닫습니다. 세상 일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신 후에 태동한 초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빌립과 같은 헌신된 평신도 전도자들이, 평신도 사역자들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초대교회를 부흥하게 하였고, 그 부흥의 불길은, 선교의 불길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번지게 되었습니다.

빌립과 함께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처음으로 사도들을 돕는 자로 안수를 받은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되었습니다(7장).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돌에 맞아 죽게 되는 과정을 통하여 그 날 이후로 그들은 더욱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1절하) 하였습니다. 즉 큰 핍박을 피하여 많은 초대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흩어진 자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diaspora) 라고 부릅니다. 사도 외에 다 흩어졌다고 했지만, 나중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그대로 존재했던 것으로 비추어(행 9:26; 11:2,22; 15:4; 21:17), 주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사도들이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평신도 일곱을 세워 안수한 까닭이 많은 교인들을 돌보기에 자신들의 손이 모자라서 세웠는데, 특히 구제에 있어서 헬라파 신자들이 빠졌기에 세운 일곱은 다 헬라파 평신도들이었습니다(행 6:1-2).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여 바울로 변하기 전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3절) 하였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도 증인으로 서 있었던 사울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는 스데반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1절상). 아니 교회들도, 다른 교인들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얼마나 살기등등하였었나 잘 보여줍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그의 성품이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할 때에 기독교는 잘못되었다는 확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죄에 해당한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에 열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해, 잘못 이해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석학 가말리엘의 수석제자로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 스스로도 나중에 고백하기를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 없는 자로다”(빌 3:5-6)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회심한 후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7-9) 하였습니다. 또,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니라”(딤전 1:13)고 하였습니다. 곧 우리 예수님은 사울이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으로서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칼 한 것은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사울을 비롯한 유대종교 신봉자들에게와, 로마 제국의 엄청난 핍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갔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 선교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을 비롯하여 어느 나라든, 민족이든 기독교를 핍박하면 할수록 더욱 부흥하였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요 12:24).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이 심해져서 흩어진 많은 사람들이 온 유대 땅과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4절). 비록 고향과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 중에 한 예가 평신도 집사(혹은 장로)였던 빌립이었습니다. 빌립은 우상숭배와 거짓 종교로 가득찬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그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5절). 그렇습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외친 것처럼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일 지 몰라도 구원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즉 평신도 전도자 빌립이 외친 내용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도 전도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십자가와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믿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어떻게 전해야 합니까?

입을 열어 전해야 합니다. 6절에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하였습니다. 빌립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즉 복음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3-15,17) 하였습니다.
아직 복음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자들에게 입을 열어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그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이 되고 안되고 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 달린 것이요, 우리의 책임은 다만 복음을 들려 주는 것입니다.
물론 전하는 자의 행동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빌립에게서는 표적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6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좇았다고 합니다. 어떤 표적입니까?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7절) 하였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평신도 전도자들에게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제 막 초대교회의 불길이 그 이웃과 온 세계로 번져가야 하는 때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역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미지의 선교사들에게서 이런 기적들이 나타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미국 땅이나 한국 땅에서는 평신도 전도자들에게서 이런 기적들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시기 때문에, 또 잘못 믿게 될까 봐 우리들에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예수님도 기적을 좇는 신앙을 경계하셨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마 16:4) 하셨으며,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하셨습니다. 아니 당시에는 성경 66권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러한 기적이 필요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한 계시의 말씀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습니다.
아니 더더욱 복음 전하는 신자들이 그렇게 눈에 띄는 특이한 기적은 아니라도, 평범한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성품과 인격과 사고방식과 생활태도가 그들에게 빛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진실되고 정직한 모습, 자비와 긍휼이 풍성한 모습, 웬만해서는 화를 잘 내지 않고 잘 참는 모습, 힘든 세상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찬양하고 사는 모습,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모습 등이 기적이지요. 인간의 죄성을 거스려 절제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기적이지요.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모습이 기적이지요.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내주하셔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모습을 주위에 나타내고 살면서 복음을 전해보십시오. 능력이 나타납니다. 듣는 이들이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더러운 것들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비난과 욕을 먹는 사람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교회 직분을 가졌다 하더라도 스스로 전도의 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탄 마귀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탄을 섬기게 합니다. 자기 자신을 섬기게 합니다. 자신의 정욕대로 살게 합니다. 돈을 섬기게 합니다. 명예를 섬기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여러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변화된 삶을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그들에게 붙었던 사탄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무릎을 꿇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복음을 받아들인 결과가 무엇이지요? 8절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하였습니다. 그저 병이 고쳐져서 크게 기뻐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이 참 하나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결과 그 성에는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더 이상 죽은 신에게 얽매여 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헛된 거짓 종교의 압제 아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참 자유를 맛보게 되니 기쁨이 클 수 밖에요. 칼빈은 이 기쁨을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로 보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전파되어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참 자유와 참 기쁨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복음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합니다(눅 2:10). 이유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환란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으며, 고난을 받아도 찬송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그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 사마리아 성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알곡들만 아니라 가라지도 있었습니다. 그 예가 9절 이하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다음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이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좋은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여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의 평신도 빌립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십자가를 경험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셨습니까? 그 후에 무엇이 변하였습니까? 성령의 능력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까?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셔야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힘있게 전해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먼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하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려야 하지요. 여러분의 말을 믿을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변화된 삶,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삶, 말씀과 기도로 매일 주님을 닮아가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말 한 마디가 힘이 있고 효과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아직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성령님을 보내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귀한 예수님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지난 날의 죄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여러분!
평신도 전도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를 받고 그 나라를 위하여 헌신된 평신도가 필요합니다. 십자가의 군사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빌립을 찾고 계십니다. 귀하게 쓰시기 원하십니다. 이렇게 모이면 예배를 드리며, 말씀으로 충만하여져서 세상으로 돌아가시면, 주위를 돌아보면서 사십시오. 이 지역에도 많은 한인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기도하십시오. 내게도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주시고,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이 많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백성들이 많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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