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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1-16 (화) 10: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601    
[1/14/07]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2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2 (디모데전서 4:4-8)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일을 성취하려면 그 분명한 목표(goal)를 이루어 가기 위한 확실한 노력, 행동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훈련(discipline)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살을 빼기 위하여 새벽부터 체육관(Gym)을 찾습니다. 자신의 몸을 위하여 Work Out 을 합니다. 뛰기도 하고, 들기도 하고, 수영도 하는 훈련을 합니다. 뚱뚱한 몸을 날씬하게 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쳐서 일찍 일어나 훈련을 합니다. 혹은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합니다. 물론 꾸준히 계속하면 반드시 결과는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코치는 선수들을 훈련을 잘 시켜서 경기에 자신있게 임하게 하여 승리하게 합니다. 승리에 필요한 모든 훈련을 잘 감당한 선수들이라면 이깁니다. 개인 체력 훈련, 전술 훈련, 팀의 조화 훈련, 상대팀의 전략에 대한 대처 훈련 등을 잘 감당한 선수들이라면 99% 이긴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만큼 준비가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면에 다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재정적인 면도 그렇고 앞서 언급한 건강도 그렇고 여러분의 가정, 직장, 사업체, 학업, 대인관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떤 목적을 세우신다면 반드시 훈련이 있어야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 신년 첫 주일에 저는 여러분에게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라고 말씀드리면서, 빌립보서 3장 10-11절 말씀으로 사도 바울처럼 우리 모두가 올해는 주님을 본받아 자신을 죽이고 살자고 했습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죄에 대하여 죽어야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내 이웃이 살고, 내 교회가 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을 본받는 모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훈련입니다. 영적 훈련(spiritual discipline)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이 없이는 주님을 본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자아를 죽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의 영적인 제자인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말씀 가운데, 7절 하반절에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연습이라는 단어가 바로 훈련(train, discipline)의 의미입니다. 이 단어 헬라어 원어(guvmnazw, gymnazo)에서 나온 말이 체육관(gymnasium)이라는 말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싫은 것이 바로 이 연습, 훈련입니다. 땀을 흘려야 합니다. 결코 유쾌한 시간이 아닙니다. 계속 반복되는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문맥은 주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외식하는 자들이 많은 데, 예를 들면 금욕주의자들처럼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먹는 음식도 구약에서 금했다고 해서 먹지 않고 하는 것이 경건한 게 아니라(3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다 선하니 그저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런 외식적인 행동으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5절)고 합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깨우치면 주님의 일군들이 될 것이며 잘 양육을 받을 것이니(6절), 다만 쓸데없는 미신적인 행위나 신화, 전설을 버리고 오로지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 훈련을 하라고 합니다(7절). 즉 경건에 이르기 위하여는 네 자신을 쳐서 훈련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에 이른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육체의 훈련도 약간 유익이 있지만 경건에 이르는 훈련은 모든 일에 유익하여 이 세상에서와 천국에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8절).
여기서 말하는 경건(godliness)이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하여 자기 중심의 삶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말합니다. 외적인 무슨 거룩한 태도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종교적(religious)이 되기는 쉽습니다. 그저 거룩한 척 하면 됩니다. 짐짓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경건은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3년 동안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경건의 삶에 본을 보이셨습니다. 경건한 사람이라는 말은 바로 주님을 닮은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성령님께서 코치가 되셔서 우리를 훈련시키실 때에 그 훈련을 잘 받고, 주님께서 하신대로 따라 하면 주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고통 가운데서 욥도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하)! 세 친구들이 옆에서 하는 말들을 듣고 자신이 죽는 훈련을 한 후에 정금같이 나오게 된 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지난 주일에 강조한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은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자마자 바로 자동적으로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믿고 난 후에 육신의 자연적인 현상은 주님과 멀어지는 것이지요. 우리의 죄성과 사탄이 가만히 있지를 않으니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주위에 주님과 가까이 지내시는 분들,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사시는 분들 말입니다. 저는 잡초가 전혀 없는 아름다운 잔디밭에, 혹은 정원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모든 잔디밭에는 잡초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다운 잔디밭을 가꾸는 사람은 시간을 내어서 잡초가 생길 때마다 뽑아버립니다. 마치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가지 치기를 하듯이 말입니다. 잡초가 하나도 없는 잔디밭과 정원에 아름다운 꽃들을 심고 가꾸듯이 주님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삶의 잡초들을 제거합니다. 그게 바로 훈련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말씀과 기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영적 훈련을 잘 받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단순한 삶입니다. 아니 가장 중요한 기초 훈련이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생활도 복잡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일에 ‘Yes’하고 삽니다. 삶의 재충전이나 여가 시간을 위한 계획은 전혀 세우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에 대한 성취로 말미암은 기쁨을 맛볼 여유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너무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심령이 가난해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리고 발전하는 문명, 테크닉이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해 준다고 착각하고 삽니다. 오히려 복잡해 졌는데도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2-3) 하였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진실함과 깨끗함에서(from sincere and pure devotion)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여기 진실함이라고 번역된 원래 의미는 단순함(simplicity)을 가리킵니다. 진지함을 가리킵니다. 사탄의 궤계에 넘어가서 복잡하고 더럽혀질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복잡해지면 정직하지 못하게 되니까 진실함이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신랑되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하는 데 정결한 처녀이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고 복잡하고 가식적이고 더럽혀 진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일편단심(一片丹心)이어야 하는데 마음이 갈라져 버리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마음이 복잡하면 어떻게 주님만 생각하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복잡하면 어떻게 주님을 생각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오랜 시간 기도를 할 수가 없지요. 아니 하루에 10분도 기도 할 수가 없지요. 말씀 묵상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너무 일을 많이 벌리지 마세요. 한 두 가지 일에 집중하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후에 우리는 다 관 안에 눕혀질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들이 슬퍼하며 울겠지요. 그러나 관이 땅 속에 묻혀지고 나면 그들과는 이별하고 우리 영혼은 주님과 일대일로 만나게 됩니다. 그 날에 여러분은 주님 앞에 서서 이 땅에서 한 일에 대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하였습니다. It’s just you and your Lord. 여러분의 가족, 친구, 자식 아무도 그 자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깊게 생각 좀 해보십시오. 여러분의 그 많은 스케줄, 일들 가운데 우리 주님과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저는 지금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24시간 가운데서 15분 혹은 30분을 주님과 단 둘이 보낼 수는 없습니까? 주님을 본받는 데에 가장 필요한 훈련입니다. 그 시간을 위해서는, 그 시간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누구에게든지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의 삶의 방식, lifestyle 이 복잡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책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방이나 주방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옷장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무실이나 차 트렁크를 열어보면 알 수 있지요. 삶이 복잡한 사람들은 정리가 잘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복잡하지요. 단순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명하는 일에 대하여서는 잘 할 수가 없지요. 우리가 본받으려는 예수님은 아무리 바빴어도 단순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면서 그 뜻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라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단순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단순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저 단순하게 주께서 자기에게 맡겨준 한 두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초점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의 쓸데 없는 말에 신경을 쓸, 다른 일에 곁눈질 할 여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그저 앞 만보고 갑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런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얼만큼 훈련을 혹독하게 받느냐에 따라 그 시간이 단축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 우리 삶을 정리정돈하는 것입니다. 복잡한 마음과 생활을 단순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셔야 합니다. 한 마음, 단순한 마음으로 신랑되신 예수 앞에 정결한 처녀로 서기 위하여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여러분들의 가기 원하는 그 길을 지금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잡한 환경과 생활이 전혀 다른 길로 여러분을 밀고 있습니까? 그래서 사랑하는 주님과 하루에 단 15분도 함께 하는 시간을 내지 못하고 지나버립니까?
새해가 밝았고, 두 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자꾸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훈련 받기 싫은 사람은 핑계를 잘 댑니다. 힘드니까요, 땀을 흘려야 하니까요. 그러나 진실로 여러분들이 자신을 죽이고 의에 대하여 살며, 주님을 본받기 원하신다면 단단히 마음 먹고 훈련에 임하십시오. 주님 닮아가는 경건에 이르는 훈련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고, 성령님도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돕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훈련을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지시고 해 보십시오.
우선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삽시다. 마음을 단순하게 그저 주님께만 고정시키고 사십시오. 이 세상 남편들도 아내가 일편단심 자신만을 향하는 것을 좋아하듯이 우리 주님께서도 참 좋아하십니다. 복잡한 생활을 정리하십시오. 복잡하게 살지 마십시오. 너무 일을 많이 벌리지 마십시오. 솔직하게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세상 욕심 때문에 그렇게 일을 많이 합니까? 정말 주님 위하여서 그렇습니까?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주님께서 무엇을 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훈련을 잘 감당하여 점점 우리 주님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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