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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6-05 (화) 00: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31    
[6/3/07]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사도행전 13:42-52)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무슨 말이나 어떤 일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지요. 그런데 듣는 말이나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하여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반응이 다릅니다.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의 반응이 다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결정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계속 말씀을 전해달라는 반응과 거부하며 오히려 시기하고 저주하는 반응입니다.

첫째로, 긍정적인 반응을 살펴봅시다. 42-43절에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회당에서 전해들은 복음은 유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너무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지 말라’는 금지 조항이 365가지, ‘하라’는 준행 조항이 248가지로, 모두 613가지의 율법 조항을 항상 지키라는 가르침을 어린아이 때부터 듣고, 배우고, 읽고, 외우면서 지키려고 애써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죄가 마음을 누르고 있었는데, 바울이 전하는 말씀은 은혜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진리를 그냥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믿으면 죄 문제가 해결되고,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복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하였기에 그 눌린 마음이 한 구석에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회당에 모여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으로서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율법도 필요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 선생이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은혜를 받은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을 수 밖에요. 뿐만 아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청하였지요. 그러자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 사람들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다고 하였습니다(44절).

둘째로, 부정적인 반응을 살펴봅시다. 45절에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하였습니다. 아마도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로 회당을 빠져나갔고, 그 마음에 시기와 분노로 가득차서 바울과 그 복음을 거부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여기 ‘변박하고 비방하거늘’이라는 단어는 ‘저주하다, 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주하고 욕하는 이유가 시기가 가득해서 라고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선포로 사람들 가운데 놀라운 반응이 일어나자 즉시 그들을 욕하며 방해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 때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교회사적으로, 구원역사적으로 볼 때에 아주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46-47절, 사 49:6).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처럼 당연히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하겠기에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의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이방인에게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진리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22:1-14). 한 왕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성대하게 치르기 위하여 사람들을 청하였는데,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일이 바쁘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또는 초청장을 가지고 전달하는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왕이 대노하여 그 사람들을 다 잡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릅니다. 그래서 종들을 시켜 길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다 청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복을 입고 오지 않아서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던져지기도 하였습니다. 예복이 상징하는 것은 최소한의 믿음, 가장 기본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이 비유에서 깨닫는 것은 선택 받았다고 믿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다고 해서 하나님은 하늘 나라 잔치를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복음을 거부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복음을 이방인에게로 주셨습니다. 자신들이 영생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구습에만 묶여 있기에, 생각의 폭이 너무 좁기에, 율법에 너무 얽매였기에 복음을 이해하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죄 사함의 길이, 구원의 길이 너무 쉽기에 오히려 받아들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48절)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할 때에 이방으로 향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된 자들을 다 믿게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야, 그렇구나!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결국 믿게 되니까 뭐 그렇게 열심을 내고 전도할 필요가 있냐? 어차피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니까’라고 생각하신다면 생각이 짧으신 것입니다. 잘못 이해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성도의, 교회의 사명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럴 것이면 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지상 대 사명을 주셨겠습니까? 왜 복음의 증인 되라고 명령하셨고, 입을 열어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였겠습니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은 다 믿더라는 말씀은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말씀이지, 우리 편에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아닙니다. 이미 믿은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있는데, 나는 믿어지게 됨을 감사하며, 성경 말씀에 있는 대로(엡 1:4, 롬 8:29-30, 요 6:44) 나를 창세전에 작정해 주셔서 믿게 되었구나 하고 감격하며 영광을 돌려 드리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영생주시기로 작정하셨는지 모르니까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지요. 안 그러면 해외 선교도 할 필요가 없지요. 사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하였고, “주는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동참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까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50-51절)고 하였습니다.
또 다시 복음에 대한 반응이 극명하게 차이가 납니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그 지경에서 쫓아내어 버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두 사람은 그들을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떠납니다(눅 9:5, 10:11). 이제는 더 이상 그들과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여러 번 제시하였음에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기회조차 없을 뿐 아니라, 마음이 점점 더 강퍅해 져서 전혀 상관이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인 제자들은 기쁨이 충만했다고 합니다. 성령이 충만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는 너무 중요합니다. 사람들마다 다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무서운 것은 생각이, 마음이 굳어진 사람입니다. 이미 강퍅해져 버린 사람입니다. 교만으로 가득찬 사람입니다. 마음이 완전히 닫혀진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열려진 사람, 생각을 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권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십시오. 받아들이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생명과 같이 아주 귀한 것일수록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더더욱 영생은, 구원은 오직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 합니다. 아니 이미 해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진리를 그냥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였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신 분이 혹시 이 자리에 계시면, 지금 이 시간 마음을 열고, 겸손히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하시면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TV 어떤 광고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말씀드리는 이 복음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 선택은 영원을 좌우합니다.

아니 이미 그 귀한 선물을 받아 누리고 계시는 성도님들,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겸손히 가르쳐 주시는 그 모든 말씀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는 반응을 하시면 정말 여러분에게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반응하시면서, 그저 고집대로 사시면 정말 여러분에게 엄청난 손해입니다. 좀 지혜롭게 사십시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 뿐만 아니라, 되어지는 모든 일에, 들려지는 모든 말에 대하여 반응을 잘 하십시오.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은 거의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반응을 하는 것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지혜롭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를 좀 생각을 신중히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반응을 보이십시오. 누군가 잘못을 지적해주면 물리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고 하였습니다. 숨 거두는 날까지 좀 배우려고 하십시오.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친구들에게, 주 안에서 맺어준 형제 자매들에게,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인생을 외롭게 마치고 싶으시다면, 장례식에 아무도 오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자신의 실수를 조금도 인정하지 말고, 아무에게도 배우지 마십시오. 아무도 당신에게 가르칠 수 없도록 행동하십시오. 아마도 가장 외로운 사람으로 인생을 마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슨 박사 학위가 여러 개 있다 하더라도 다 알 수 없습니다.
전병욱 목사님은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은 ‘약하다’,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반증이다. 강한 사람은 웬만한 모욕과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망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존심을 내세우셨다면 절대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존심을 죽이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한번 잘못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긴 시간을 후회하면서 고통 가운데 보낸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즉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 하는 책임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 후에 되어지는 일에 대하여 여러분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십시오. 말씀의 가르침을 선택하십시오. 긍정적으로 반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여러분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는 것이며, 여러분의 미래를 환하게 할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잘 했다는 칭찬을 들을 날이 곧 옵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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