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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6-12 (화) 00:3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86    
[6/10/07]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롬 8:31-39)
부모가 유력한 어린아이와 부모가 무력하거나, 없는 어린아이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내 뒤에 나를 돕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고 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큰 힘을 줍니다. 세상에서 겪는 모든 일에서 믿을만한 든든한 사람이 내 편일 때는 아무리 어려워도 잘 견디고 이겨나가지만, 믿을만한 사람이 내 편에 아무도 없을 때에는 그 무엇에도 이길 자신이 없지요. 외로울 뿐입니다. 특히 큰 어려움이 닥치면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이 세상에 그 무엇도 겁낼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감히 누가 우리를 넘나 보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본문에 바로 앞서 8장 29-30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무슨 말을 우리가 더 할 수 있겠느냐고 31절 상반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끝으로 이렇게 우리를 예정하여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께서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은혜를 더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1절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이라고 하는데 여기 우리 말에 '만일'(if)이라고 번역한 것을 ‘만약에’라는 뜻의 가정한 것으로 해석하기 쉬운데, 원어의 의미에 가까운 더 좋은 번역은 가정보다는 전제의 뜻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since), 혹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because)'로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이 말이 우리 성도를 모든 유혹에서 이기게 하는 중요한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면 비록 모든 것이 우리에게 평탄하게 보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안정과 평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어떠한 폭풍우 속이라도 안전하다. 이유는 하나님을 대항할 자가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우리는 겁낼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때로 성도들이 약하여져도 절대로 실망할 필요가 없다" 고 하였습니다. 동감하는 설명입니다. 본문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어떤 혜택이 있습니까? 바울은 수사학적이고 역설적인 질문을 몇 가지 던지면서 답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31-32절).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이 서신을 쓸 때의 상황은 로마제국 황제들이 성도들을 심하게 핍박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31절 하반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합니다. 아무도 대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유는 우리를 대적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하나님이기에 그렇습니까?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주신 분이 그 외의 필요한 은혜들을 선물로 주실 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든든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누구도 우리를 송사할 수 없습니다(33절).
33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지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들을 죄인이라고 고소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 '송사'(accuse) 라고 하는 말은 재판의 처음 단계로 검사가 죄의 혐의를 주장하여 피의자를 기소하는 절차를 뜻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 송사한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우리를 의롭다 칭하셨기에, 판결하셨기에 이미 결론은 나 버린 것입니다. 앞서 29-30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고소 앞에 우리들의 대답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은 변함없다고 하여야 합니다. 한번 구원의 확신을 입은 사람이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택한 것이 아니고 앞서 30절에 언급하였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말입니다. 그 결과 사탄은 우리에게 어떤 송사도 제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받은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늘 감사하고 사탄의 유혹에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용서 받은 죄에 대하여 사탄이 자꾸 죄의식에 사로 잡히게 함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죄에 대한 결과로 인하여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죄 용서함을 받는 것과 죄로 인한 결과를 직면하는 것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세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34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 대하여 어떤 소송도 제기될 수 없다면 확실히, 당연히 그들에 대한 어떤 정죄도 제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정죄'(condemnation)는 유죄 판결입니다. 죄의 삯인 사망을 의미합니다(롬 6:23). 이것이 사탄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고 하셨고, 로마서 8장 1절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34절은 우리가 정죄 받을 수 없는 이유 네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흘린 피는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였습니다(벧전 1:18-19).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의인됨의 기초가 됩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미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롬 6:5). 세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영원토록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권세로 전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요, 주권자되시기 때문입니다(빌 2:9-11). 이 세상의 어떤 심판자보다도 높은 권세로 이 모든 피조세계에서 영원히 왕 노릇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영원히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4-25)고 하였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누구도 그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35-36절, 38-39절).
        35-36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아무도 끊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끊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분리시키지 못합니다. '환난'(qliyi", trouble)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신분을 박탈당하고, 자유를 잃고, 육체적으로 핍박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곤고'(stenocwriva, hardship)는 내적으로 압력을 받는 고통입니다. 가족때문에, 직장때문에,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마음적으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통입니다. '핍박'(diwgmoV", persecution)은 포수가 짐승을 사냥할 때 총을 겨누면서 그 뒤를 계속 쫓아 오는 경우를 뜻합니다. 복음을 지키고, 진리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계속 다가오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기근'(limoV", famine)은 말 그대로 배고픔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오는 굶주림의 슬픔입니다. '적신'(gumnovth", nakedness)은 헐벗는 고통입니다. 신앙정조를 지키다가 입을 것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위험'(kivnduno", danger)이나 '칼'(mavcaira, sword)은 말 그대로 생명이 위험스러운 상태에 빠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 여러번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 이방인의 위험, 광야과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고후 11:26). 그래서 시편 44편 2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극한 위험의 상황에서 죽을 뻔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세력들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합니다. 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온 세상의 어떤 피조물이라도, 인간이라도, 영물들이라도, 귀신들이라도, 아니 저들이 다 연합하여 우리를 하나님 사랑에서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가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37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모든 일에서 우리는 넉넉한 승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간신히,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더더욱 패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다윗 왕은 하나님에 대하여 찬양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시 27:1-3)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융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 46:1-3)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그 내용이 똑 같은 구약의 말씀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기에' 라는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사셨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계십니까? 신앙생활때문에,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일 때문에 안팎으로 고난을 당하십니까? 아니면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여러분 앞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역경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만약 내가 잘못하여 죄 짓는 것으로 말미암아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고상한 이유가 있는 고난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하시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하여 지금까지 하신 일들을 기억하십시요. 앞으로도 어떤 고난과 환란이 닥칠지라고 오늘 말씀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도, 그 어느 것도 끊을 수 없음을 깨달으시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기에, 하나님이 내 편이기에 나는 넉넉히 이기리라, 잘 견뎌내어 사탄이 아무 소리 못하게 하리라'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편이십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를 위하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확실히 믿으십시다. 감사와 찬양을 드리십시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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