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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8-20 (월) 21: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621    
[8/19/07] 어떤 일꾼입니까?
어떤 일꾼입니까? (사도행전 15:22-35)
우리 이민사회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 일꾼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민사회를 망치는, 한국 사람임을 욕 먹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주)신문에도 종종 나는 도박꾼, 사기꾼, 성매매범, 살인범 등 말입니다. 이민사회와 미국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탄에 사로잡힌 종으로서 악을 조성하는 사람들로서, 결코 사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에 오히려 없으면 더 좋을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오로지 (이민)사회에 주어진 일만 하는 일꾼들이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 의식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시간만 때우고, 자기 일이 아니면 도무지 관심을 갖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 옹졸한 일꾼들입니다. 셋째로, (이민)사회에서 자기 일에 충실할 뿐 아니라 선한 일에 협조하거나, 새로운 선한 일을 만들어 내어 사회에 유익을 주는 일꾼들입니다. 남의 어려움을 돕고,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올까 하는 마음으로 늘 이웃에게 덕이 되는 사람들로서 이 사회에 꼭 있어야 할 일꾼입니다.
한편 교회 안에도 일꾼의 종류가 다양합니다. 첫째로, 믿음이 없는 일꾼이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올바른 신앙을 갖지 못했지만, 어떻게 하다가 일을 맡게 되어, 세상 사회에서 하던 식으로 교회 안에서 하려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히며, 원망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작은 일에도 자기의 공로를 드러내고, 바깥 사회에서는 불신자의 모습과 다름없이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믿음은 있는 데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미성숙한 일꾼들입니다. 무엇인가 일을 하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사람들의 칭찬이 없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실망을 쉽게 하고 일을 놓고 마는 그런 일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익이나 자신의 영적 유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작은 믿음이지만 소정의 훈련을 받고 구원의 확신을 있으면서 늘 삶의 초점을 잃지 않는 일꾼입니다. 내가 왜 사는지, 왜 교회를 섬기는지 그 목적을 잊지 않고 자신과 교회에 영적 유익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일꾼들이 있습니다. 비록 자주 실수를 하더라도 주위의 형제 자매들과 잘 해결해 나아가는 일꾼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믿음으로 지혜롭게 일하는 일꾼들도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지도자 야고보처럼 교회가 하나됨을 지키기 위하여 지혜로운 중재를 하는 일꾼들입니다. 본질적인 것을 붙잡고 비본질적인 것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뿌리가 깊어서 언제나 자기 주장보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고자 하며 자신은 숨기거나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는 일꾼입니다. 그래서 실수가 적고, 이러한 일꾼들로 인하여 연약한 성도들이 영적인 도움을 받고, 진정한 위로와 신앙 성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꾼입니다.
아마 초대교회에는 세째와, 넷째 부류의 일꾼들의 많이 있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하였으며, 교회가 계속해서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일꾼들의 등장합니다.

안디옥 교회 안에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는 어떤 유대인 신자들의 가르침과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이 부딪히게 되자, 양쪽 지도자들이 예루살렘교회 총회로 모여 변론한 후에 결의한 사항을 공문으로 작성하여 안디옥은 물론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본문 24절부터 29절까지 적혀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살펴본 바와 같이 그 편지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여 괴롭히지 말고,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규제 조항들을 스스로 삼가면 잘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9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더라도, 스스로 조심하여 삼갈 것들을 잘 삼가면 영적으로 자신에게 유익한 것들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문을 가지고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과 수리아, 길리기아로 가도록 선택된 사람이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였습니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22절)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공문을 그냥 바울과 바나바의 편에만 보내면 이방인들 편에서 주장했던 그들이기 때문에 오해가 있을까 하여, 유대 예루살렘 교회 인도자, 지도자 중에서 유다 바사바와 실라를 선택하여 보냈던 것입니다. 아마 유다 바사바는 요셉 바사바(행 1:23)의 형제로 사도의 후보로 뽑혔던 사람이었던지, 장로들 중에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실라는 실루아노의 헬라어 이름으로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신실한 형제라고 칭찬했던 지도자였고(벧전 5:12), 바울과 함께 2차 전도여행에 동참했던 것입니다(행 15:40). 사도 베드로도 실라를 신실하다고 했듯이 얼마나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신뢰를 받았던 사람들이면 그렇게 귀한 일을 맡겼겠습니까? 중요한 일을 맡길 때에는 그 책임과 의무를 잘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고 맡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맡기실 때에는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고 맡기신 줄로 믿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우리에게 맡기실 때에도, 우리의 가정과 직장을 맡기실 때에도, 소중한 시간과 건강, 자녀들을 맡기실 때에도, 책임있게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선한 일에 사용하라고 맡기신 줄 믿습니다.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을 맡기실 때에도 비록 믿음은 작지만 그 책임을 다하라고, 성실하게 감당하라고 맡겨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청지기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다 바사바와 실라가 안디옥에서 무리를 모아놓고 편지를 전하니 그들이 읽고 그 위로한 말을 크게 기뻐하였다고 합니다(31절).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사도와 장로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놓고 소식을 무척 기다렸을 것입니다. 교회가 분란이 나서 나뉘어지게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 행하여야 하나? 율법을 다 지켜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무척 궁금해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져온 공문을 읽고는 크게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믿고 나서 할례를 받아야,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의 도를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몇 가지 믿는 신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규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서 말입니다. 그런데 유다와 실라는 예루살렘 총회의 공문만 전달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32절) 하였습니다. 역시 중요한 일에 선택을 받은 지도자들답게, 그들은 여러 말로 백성들을 권면하고 위로하여 믿음 위에 굳게 세워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바로 제자양육이지요. 그래서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세상에서는 잘못한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신문 보도가 나가고, 그 잘못을 지적하며 야단을 치고 깎아 내립니다. 그래서 한번 그렇게 찍힌 사람은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용서와 용납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그러면 곤란하겠지요.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하고 용납되지 못한 사람들이 용서받고 용납이 되어야 하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까? 세상에서 칭찬과 격려를 받지 못하고, 실망과 상처 투성이의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올 때에 교회에서조차 비난하고 욕하고 정죄한다면 정말 그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지 않겠습니까? 사탄은 자꾸 믿는 사람이라도 넘어뜨리려고 온갖 의심과 두려움으로 불안하게 하지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는, 하나님의 일꾼은 오히려 의심이 있는 자에게 확신을 주고, 두려움으로 불안해 하는 사람에게 믿음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격려해 줍니다. 꺼져가는 등불에 기름을 더 넣어주고, 상한 갈대를 잘 받쳐 줍니다. 바로 붙잡아 주고 곧게 힘있게 자라게 합니다. 바로 유다와 실라가 그런 아름다운 사역을 감당한 것입니다.

한편 본문에서 바나바와 바울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예루살렘 총회에 결의안을 유다 바사바와 실라를 통하여 보내면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나서, “들은 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의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24-26절)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총회에 모인 모든 지도자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가리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라고 합니다. 얼마나 영예스러운 칭호입니까? 칭찬입니까? 나중에 우리들의 이름 앞에 수식어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도 아끼지 않는 자’라고 생명책에 기록된다면 그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이름이 그렇게 기록되기를 축원합니다. 실제로 바울과 바나바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들을 헌신하였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유대인들이 동네의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그들을 핍박하고 쫓아내었으며(행 13:50), 이고니온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과 관원들까지 합세하여 그들을 욕하고 돌로 쳐죽이려 하여 급하게 도피하기도 하였고(14:5), 또 루스드라에서는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고친 후에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몰고 와서 바울을 끝내 돌로 쳐서 거의 죽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14:19). 그러나 이들은 복음 전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그 무서운 핍박을 받으면서도 다시 일어나서 구원의 복음을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식지 않고, 감사가 넘쳤기에 그 어려움 속에서도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의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들과 배우자를 위하여 그 영혼을 사랑하며 목이 메이도록 울며 가슴 아파한 적이 있습니까? 핍박 가운데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인내와 사랑으로 더 기도하며 주께 매달리십니까? 주위에 방황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안타깝게 여기고 간절히 기도하십니까? 그러면서 주님의 사랑을 퍼붓고 참고 기다리십니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 일꾼입니다.
예루살렘 총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바울과 바나바를 향하여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서, 옆에 있는 주님의 형제 자매들에게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는 자도자가 되는 것이 참 아름다운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아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 그런 일꾼이 정말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생각하시며, 기뻐하시는 일꾼이 아니겠습니까?

35절에 보면 그들은 다시 안디옥에서 거하면서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쳐 전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다 바사사와 실라 뿐만 아니라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 도우며, 서로 세워주며, 서로 주의 일을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주된 일이 아닙니까? 전도와 제자 양육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전도하고 계십니까? 말씀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꼭 전문가가 되어 아주 잘 하는 사람만 전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그런 은사를 특별히 주셔서 아주 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사를 받지 아니하였어도 모든 신자는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고, 알고 있는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의 자리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사명입니다(마 28:19-20).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계시다면, 여러분들은 모두다 우리 주님의 종들입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며 가까이 하지만(요 15:14), 우리 편에서는 종입니다. 종이라 함은 일꾼입니다. 주님을 믿고 섬기며 따르는 종입니다. 주님께서 명하시는 일들을 감당해야 할 종, 일꾼입니다.
어떤 일꾼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 바사바와 실라, 혹은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일꾼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주위의 성도들이 보기에 신실한, 믿음직스러운 일꾼입니까? 주어진 모든 일에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다하시고 계시는 일꾼입니까? 우리 주님을 위해서 라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각오로 일하고 계십니까?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하며, 알고 있는 말씀으로 권하고 위로하시고 계십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오늘 주님께서 꼭 필요로 하는 일꾼들이 아니겠습니까? 과거에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냈던지 상관 없습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이 5년이 남았던지, 10년, 20년, 30년이 남았던지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난 후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어떻게 반응을 할까 기대하며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께서 신뢰할 수 있는 일꾼, 주위 사람들까지도 신뢰하고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꾼, 주님을 위해서 라면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 그런 종들,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며,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구원 받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해가며 제자의 수가 더해가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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