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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2-12 (화) 01:2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62    
[2/10/08] 더 신사적이어서
더 신사적이어서 (사도행전 17:10-15)
어떤 교회가 참된 부흥을 하며, 어떤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지난 주에 살펴본 능력있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어 오늘 본문에 베뢰아 교회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문맥에 의하면 베뢰아의 성도들은 초대 교회들 가운데 데살로니가 교회보다 더 참된 부흥을 체험하였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12절) 인근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믿어집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실라를 체포하려는 유대인과 그 도시 읍장들은 야손의 집에 쳐들어갔으나 없어서 대신 야손과 믿음의 형제들을 체포하고, 바울과 실라를 데살로니가에서 떠나도록 하겠다는 약속의 보석금을 받고 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고자 그들은 밤을 이용하여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냅니다(10절). 베뢰아는 데살로니가 남서쪽으로 약 50마일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작은 성읍이었습니다.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과 실라는 거기서도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베뢰아의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사람들과 또 달리 그들의 복음을 대합니다. 그 결과 베뢰아 교회는 참된 부흥을 체험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믿어서 그렇게 되었나요?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이 “더 신사적이었다”고 말입니다. 11-12절에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의 신사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신사복, 즉 양복이나 양장을 잘 입고 점잖하게 보이는 사람이 신사적입니까? 영국신사로 대표되는 Gentleman 을 뜻하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고상한 성품, 열린 마음이라는 뜻이기에 NIV 영어 성경에는 noble character 로 번역이 되어 있고, 다른 번역에서는 noble minded 혹은 open minded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신사적입니까? 첫째로, 고상한 성품이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여 막무가내 식으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교양을 갖춘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정다운 사람이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참 편합니다. 정말 부담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존감(self-esteem)이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존감이 없는 사람, 열등감이 많은 사람과는 무슨 대화를 해도 조심스럽게 해야합니다. 쉽게 오해하고 잘못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사적이 못되지요.
둘째로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닫힌, 패쇄적인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열려 있어 어떤 말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 트인 사람, 융통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 편견에 치우친 사람이 아닙니다.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이지요. 나도,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니까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나도 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은 가르침을 받기가 쉽습니다.
셋째로 진실한 사람입니다. 정직한 사람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잘못했을 때에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약점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숨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약점을 숨기면서 똑똑한 체하는 사람은 신사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이렇게 더 신사적이었다 라고 성경이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품이 고상하십니까? 마음이 열려 있습니까? 진실하십니까?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그렇지 못해도 대부분의 여러분은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변할 수 있습니다. 의지가 중요합니다. 마음을 열고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자세, 태도가 중요합니다. 진실하고 정직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런 베뢰아 사람들이었기에 그 결과를 11절에 기록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보면 복음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강론될 때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고, 정말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받아들인 진리이니 그 진리의 말씀이 그들 속에서 역사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바꾸어 말씀드리면, 만약 여러분이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것이 그러한가 연구하고 받아들이며 매일 성경을 보신다면 여러분은 신사적인 사람, 즉 고상한 사람, 열린 마음의 사람,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단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다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을 내려놓고, 그저 쉽게 판단하지 않고 말씀을 들은 후에 정말 그런가 더 들어보고, 연구하여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열정을 가지고 간절히 말씀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라고 일상생활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진리를 사모하며 말씀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고 하면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그들의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를 결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믿음을 가졌으니 얼마나 확실하고 단단한 믿음이었겠습니까? 그러니까 12절에서 보다시피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믿었고, 헬라인들 중에도 많은 귀부인과 남자가 믿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저도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맹목적으로 다 받아들이는 것보다, 이 말씀이 정말 진리인가 매일 들여야 보고 연구하면서 스스로 깨닫고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이기에, 참 진리이기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에 그렇습니다. 이미 믿음을 가지신 분들도 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며 정말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시키며 받아들이고 사시기 바랍니다. 즉 진리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헌신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데살로니가 사람들이라고 해서 신사적이 아니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도 신사적이었지만 베뢰아 사람들이 더 신사적이었다. 더 고상했다. 더 열린 마음이었다. 더 열정적이었다. 더 진실했다는 말입니다. 완전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 불완전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성령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아직 그 안에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백하였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 . .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5,20)고 말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이런 갈등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신사적인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더 갈망합니다. 하나님을 더 사모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음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합니다. 육신의 더러움, 추함을 증오하며 거룩한 성결의 영으로 다스림 받기를 원합니다.
저는 데살로니가 교회보다도 베뢰아 교회가 더 그렇게 갈망하고 사모했기에 더 신사적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믿습니다. 교인들 사이에도, 성도들 사이에도, 교회들 사이에도 더 신사적인 교인, 더 신사적인 성도, 더 신사적인 교회가 있다라는 말입니다. 지상교회가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다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 가운데 이렇게 베뢰아 교회처럼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정말 그런가 하여 연구하고 받아들이는 교회가, 그런 성도들이 전부는 아니라도 많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싸우는 가운데 고상하고, 열린 마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사모하면서 믿음을 쌓아가는 교회, 교인들이 오늘날도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교회 교인들이 그런 교회이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에 따라 이 세상 사람들을 나눈다면, 이 세상 교인들을 나눈다면 신사적인 사람과 비신사적인 사람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또 신사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정도 차이가 있어서 덜 신사적인 사람과 더 신사적인 사람들의 있다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신사적이라고 하였습니까? 고상한 성품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죄성도 있지만, 기본적인 양심이라는 것이 있고, 더군다나 성령을 받은 신자라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였기에 어느 정도 고상함이 있습니다. 그것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고상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죄성을 지닌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고상한 성품을 개발하십시오. 책을 많이 읽으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힘써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을 학대하고 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특별한 사랑을 입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자존감을 회복하십시오. 자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긍심(self-confidence)을 말합니다. 열등감을 버리십시오. 사탄,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리 옆에 앉아 계신 분들도 다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는 자녀임을 기억하고 존중하십시오. 매너를 가지고 대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열어 놓으십시오. 좀 넓게 생각하십시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기십시오. 내 생각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십시오. 가능하면 편견을 버리도록 애쓰십시오.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누구에게든지 배울 수 있다는 겸비한 자세를 가지십시오. 또한 정말 진실하십시오. 나 자신에게와 이웃에게 정직하십시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는 얼마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하면 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내가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 12:9)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오히려 나의 약점과 부족함을 자랑하십시오. 그럴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더 신사적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베뢰아 교인들처럼 열정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정말 그러한가 기도하면서 더욱 말씀을 묵상하고, 매일 성경을 읽으며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 진리를 알고자 하는 갈망,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루고자 하는 갈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내 안에도 죄성이 아직 살아있어 언제든지 죄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며, 어찌하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하고 산다면 우리 경향가든교회가 더 신사적이라는 소문은 하늘 나라에까지 들릴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까지 바울과 실라를 잡으려고 쫓아와 소동을 부리는 사람들처럼(13절) 사탄 마귀가 더 극성을 부리겠지만, 얼마든지 물리치고 승리할 것입니다.
더 신사적이 됩시다. 더 고상해 집시다.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입시다. 더 진실해 집시다.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더 열정을 가지십시다. 그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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