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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09-12-14 (월) 11:0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98    
[12/13/09]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시는 주님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시는 주님(마26:17-30)
요즈음 수요예배 시간에 전도서 강해를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며 사는 삶이 지혜로운 삶인 것을 자꾸 강조하게 됩니다. 올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가까우면서 내년을 생각하고 계획해보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아니 궁극적으로 우리 성도들은 모두 죽음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주님 만날 시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데려가실지 모르기 때문에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 자신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시는 장면입니다. 자신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이 39절까지 이어집니다. 요약하자면 자신의 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경험하시며(17-25절), 주의 성찬을 제정하시고(26-30절), 무능력한 제자들을 도우시며(31-35절), 마지막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림으로(36-39절)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준비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가롯 유다와 성찬에 대하여 많은 교인들이 신학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에게 좀 지루할지 모리지만 중요한 교리 설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로 이해하고 바로 믿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인 목요일로 여겨지는 무교절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어디서 지키며 그 음식을 먹을 것인가 묻고 있습니다(17절). 유대 달력에는 중요한 절기들이 있습니다. 그 해 밀이나 보리 농사를 하여 추수를 하게 되는 시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칠칠절 혹은 오순절(출 23:16), 출애굽하여 40년 광야 생활에 거할 곳과 물과 먹을 것을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하여 드리는 장막절 혹은 수장절(레 23:33-43), 대 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며 피를 뿌리는 대 속죄일(레 23:27-32), 그리고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등이 있습니다. 무교절은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절기로 바로 이 유월절부터 시작하여 일주일을 지내는 절기 입니다. 많은 절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절기가 바로 유월절이며, 사실 가장 의미가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430년간의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자그마치 이 때가 되면 당시 온 이스라엘의 약 250,000 양이 희생제물로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 시간은 목요일 저녁 해가 진 다음, 그러니까 금요일이 시작되는 시간에 유월절 음식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무교절 첫 날 유월절을 지키고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18-19절) 합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에 의하면 베드로와 요한이 주께서 시키신대로 성 내에 물 한 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서 그 집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식사를 하게 됩니다(눅 22:7-13). 예수님께서 12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이라고 하십니다(20-21절). 다들 근심하면서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22절)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23-24절)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시간 전까지 도대체 누가 주님을 배신하여 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문제이며, 나머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 13:18)고 시편 41:9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롯 유다가 “랍비여 내니이까” 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25절).
    그런데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의 영향을 받은 교인들이 ‘가롯 유다가 그렇게 예수를 팔므로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죄가 사하여 졌으니 그의 그러한 행동도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쓰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하면서 사탄의 종 노릇을 한 그를 그다지 나쁘지 않게 여깁니다. 너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의 악한 행동을 선하신 목적에 사용하였다고 해서 그 죄가 덜하여 지거나 그 죄인이 죄책감을 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고유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유다의 죄악을 사용하신 것이지, 멸망의 자식을 의인으로 변화시키신 것이 아닙니다(요 17:12).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 유다가 그렇게 행동했다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는 태어나지 않았더면 좋았다고 오늘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분명히 지옥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가롯 유다도 다른 11제자들과 같이 3년 동안 함께 설교도 들으며, 기적도 체험하고, 함께 전도도 하고, 주의 사랑을 입었던 제자였습니다. 다른 11제자들이 예수님을 팔 자가 재정 부장을 맡고있는 가롯 유다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아와 함께 예배도 드리고, 성경 말씀과 일치되는 설교도 들으며, 교회 일도 감당하고, 구제도 하고, 전도도 하고, 세례 받고 성찬식에도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혼이 멸망할 수 있습니다.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마 7:21). 유다처럼 전혀 딴 생각으로 종교생활을 했다면, 진실로 거듭나지 않았다면, 변화를 받지 못했다면 말입니다.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정말 믿어지는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는 죄 사함, 구속함을 입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면서 가롯 유다가 그를 떠나자, 그 유명한 거룩한 예식인 성찬식을 제정하십니다. 옛 언약의 유월절을 새 언약의 성찬식으로 바꾸십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월절은 율법이 있기 전에, 성막이 세워지기 전에 있었던 절기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키시는 유월절이 그 마지막으로 의미를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새 언약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옛 언약의 유월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심을 기념하였다면, 이제 새 언약의 성찬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주님께서 직접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과 능력을 기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절)고 하였습니다. 다른 공관복음에도 다 기록되어 있고, 고린도전서 11장에도 말씀해 주신 이 성찬식은 우리가 반드시 바로 해석하여 정확하게 기억하여야 할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떡과 포도잔을 가지시고 자신의 몸이며, 흘릴 피라고 하신 것에 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소위 화체설을 주장합니다. 성도들이 성찬을 대할 때 그 떡과 잔이 실제로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문맥상 전혀 맞지 않는, 성경 해석상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또한, 이러한 해석을 극단적으로 반대하며,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는 말씀만을 주장하면서 성찬은 그냥 주의 죽으심을 단지 기념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종교개혁자 쯔윙글리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침례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칼빈의 주장대로 우리가 성찬을 대할 때에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장로교회와 개혁주의적 감리교회, 몇 성공회 교회가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화체설은 틀린 것이 분명하고, 단기 기념하기 위하여 성찬을 참여한다는 것도 그 의미가 너무 축소된 것 같아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몸을 찢기시며 피를 흘리심을 기념하여 성찬에 참예할 때에 첫 성찬식에서야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지만 오늘날에는 영적으로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주님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제정하신 성찬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무엇보다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입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가 받을 징벌을,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바로 유월절의 의미입니다.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뿌리며, 누룩이 없는 떡을 먹으며 출애굽을 기념했던 것과 같이, 어린 양되시는 예수님의 피가 뿌림을 당해야 했고, 살이 찢김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둘째는, 이제 새 언약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모세와 옛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8) 하였듯이,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새 언약을 옛 언약에 연결시키심은 그의 죽음이 옛 언약의 완성이며, 수없이 많은 희생 양들의 피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은 율법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옛 언약도 은혜 언약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렘 31:33).
셋째는, 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사며 하나님과 불화를 이루었던 우리들이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모든 부정한 죄를 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는, 특별한 제한적인 구속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28절에 성찬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피 흘리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가롯 유다를 위하여 흘리시는 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러한 배신도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받고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의 백성들, 택자들을 위함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대속의 은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실 때에도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가 잉태한 아들은 성령으로 된 것으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는, 그의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안전 보장이라는 것입니다. 29절에 예수님께서“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제 예수님은 곧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 나라로 올라가시기에 나중에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그 때에 새 것으로 그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원히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다시 만나는 그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다시 재림을 확인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영원토록 축복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만큼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완전하고도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느니라”(요 10:29)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바로 몇 시간 후에 절대로 자신은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놓고는 공적으로 닭 울기 전 세번이나 주를 부인하여도 나중에 회복시키시는 분이 아니었습니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는 부분을 살펴 보았습니다.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지키시면서 그 유월절이 택한 백성들의 마지막 유월절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만 가롯 유다가 제자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팔 배신자로 나타납니다. 섬뜩한 내용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3년 동안이나 사랑을 받고, 많은 것을 보고, 주님의 일을 한 유다였습니다.
정말 우리 교회 안에서는 그런 가롯 유다가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복음으로, 성경 말씀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분들로만 가득차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만약 아직도 성령을 받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하여 믿어지지가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까? 성령을 받고, 진실로 주님이 믿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믿어지고, 부활이 믿어지고, 지금도 살아계심이 믿어지고, 신구약 성경 말씀 모두가 진리임이 믿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 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었습니다. 대속이었습니다. 새 언약의 시작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양을 비롯한 동물들의 희생 제물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여러가지 예식, 의식, 제사, 시민법 등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대신 살과 피를 흘려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었기에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시며 담대히 그 보좌에 나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물론 제한적인 구속 사역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피라고 하였습니다. 그 안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오래 전에 정하시고 선택하여 주심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보답하며 살아야지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4-7)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주님 다시 오시고 나서도 계속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며 보호하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새기면서 오늘 성찬식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마지막 30절에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성찬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서도 감사의 찬양을 드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보다 자세히, 확실히 그 뜻을 이해하는 우리가 대속의 주님, 구속의 주님을 찬양해야 하겠습니까? 남은 평생에 우리의 미래를 잘 준비한다면 그 은혜를 찬양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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