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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09-12-28 (월) 08:3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70    
[12/27/09] 여호와께 성결
여호와께 성결 (출애굽기 39:27-31)
우리 인생은 반드시 결산을 할 때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결산이 있는가 하면, 이 세상을 작별할 때에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삶을 결산하게 됩니다. 또한, 오늘 같이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이 되면, 조금 지혜로운 사람들은 며칠 남지 않은 한해를 접으면서 지난 한해의 삶을 뒤돌아보고 잘잘못을 생각해보면서 새해를 맞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한해 동안의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했는가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갈 6:7상)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 사람의 눈은 가리울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경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히 여기고 모독한 사람들의 종말은 정말 비참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유 1:8)라고 하신 말씀처럼, 또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9)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신자들의 위선은 어떻구요. 겉과 속이 다른, 가면을 쓴 생활이 하나님께 통할까요?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약 1:22)고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서 털어버려야 할 것들,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들, 회개하여야 할 것들이 있으면 하나님께 진솔하게 다 고백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아직도 상한 마음들이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으면서, 좀 변화된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것들 가운데서 성막을 짓고 나서,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입는 옷, 에봇과 그 외의 옷들, 여러가지 치장하는 것들, 머리에 쓰는 관 등을 만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이 입을 옷에 대하여 길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그 행위보다도 제사를 드리는 한 인격의 믿음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이한 것은 본문 27-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에봇 외에도 다른 옷들을 입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제사장들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어야 하는 옷은 에봇을 받쳐입는 긴 청색 옷(22절)과 속옷과 고의, 그리고 머리에 쓰는 관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에봇만 입어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겹겹이 옷을 입게 하시고 치장을 하고 방울을 달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당사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겹겹이 옷들을 입게 하셨습니다.
22절-26절을 보면 긴 청색 옷에는 돌아가면서 금방울과 석류를 매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지성소 안에서 움직일 때에 매단 것들이 서로 부딪침으로써 소리가 나서 제사장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소리가 나면 제사장은 살아있는 것이고, 소리가 나지 않으면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항상 방울과 석류가 부딪치면 소리가 나야 한다는 것이 고정 관념처럼 머리에 박혀 있어야 합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 방울이나 석류는 제사장들에게 죽음을 의미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래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별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금방울과 석류는 무엇일까요? 목사에게 있어서는 설교와 기도 생활일 것입니다. 설교와 기도에 힘이 없으면 교인들이 목사가 영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는 교인들에게 할 말이 없게됩니다. 그러나 그 방울 소리가 나면 살아 있는 것입니다. 평신도 여러분들에게는 아마 예배를 드리는 태도나 QT, 경건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살아계심을 체험하여 은혜를 받으면,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건의 시간이 살아있어 방울 소리가 나면 영적으로 살아있는 성도일 것입니다. 아니 주님의 일이나 세상에서 맡은 일에 대한 태도로 방울 소리일 수 있습니다. 사명을 가지고 기쁨과 은혜로 감당하지 않고 마치 억지로, 할 수 없어서 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영적으로 죽은 자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사장은 속옷을 입었습니다. 물론 속옷을 입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특이한 것은 고의(turban)입니다. 고의는 underwear 를 의미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운 지방에 살아서 그런지 대부분 고의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 한 예가 다윗 왕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 성에 돌아왔을 때 너무나 기뻐서 춤을 추었는데, 그 아내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긴 것은 사실 이유가 있는 것이었습니다(대상 15:29). 왕이 이 고의를 입지 않고 춤을 추는 것을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도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고의를 입든 입지 않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만큼은 고의를 입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들도 부패한 본성,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의를 입느냐, 입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도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정신이 부정한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가장 거룩한 곳에서 가장 추악하고 음란한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믿는 신자라고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실 성경에도 그런 예가 있지 않습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시대에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말입니다(삼상 2:12, 22).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물론 고의를 입는다고 해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입지 않는 고의를 하나더 입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절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의는 거룩한 옷입니다. 거룩한 곳에서 거룩한 생각을 하도록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사장 머리에 관을 씌우고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도장을 새기고 청색 끈으로 관 전면에 달게하였습니다(30-31절). 그것은 제사장의 생각까지 통제해서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장의 직분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구별된 생활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이야말로 그 직분을 잘 감당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에봇이나 방울 달린 긴 옷이나 고의, 정금으로 만든 패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사실 벌거벗긴 몸으로 십자가 위에 달리셨고, 군인들이 그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쓰셨기에 피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무죄한 분으로 언제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향하셨으며, 끝까지 거룩하셨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루려는 생각으로 충만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잡아 놓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생각에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어떤 생각이든지 들어와서 우리를 지배할 수 있고, 실제로 주님의 나라와 성도들을 위하는 거룩한 기도의 시간이나 이런 예배 시간에도 얼마든지 악한 생각이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머리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붙인 것은 우리의 생각이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고의를 입어야 하는 것은 우리는 언제든지 악한 충동을 받거나, 음란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떤 만남이나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할 수 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진심으로 주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모두 다 오늘날 제사장들입니다. 성경은“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2:9)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왕과 같은 존귀한 제사장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귀에 방울 소리가 들립니까? 에봇 뿐만 아니라 속옷과 고의까지 입으셨습니까? 머리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분명하게 인을 치셨습니까?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정말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속한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까? 그렇게 살지 못한 부분들이 있음에도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부분들의 있습니까?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새해를 맞으시겠습니까?
우리는 또다시 기억하여야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고 하였습니다. 작년 송년주일에 설교한 본문입니다. 한 해동안 무엇을 심으셨습니까? 육체를 위하여서 열심히 심고 살았습니까?
오늘 후회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즉 과거에 잘못 심은 것에 대하여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의 잘못한 것에 대한 결과보다 훨씬 크고 풍성할 줄 믿습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녀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하-7)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부터 올해 남은 며칠 동안 우리 자신과 가정을 돌아보며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송구영신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기도하며 보내야 합니다. 새해를 그냥 그대로 맞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이미 회개한 내용을 또다시 회개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심령에 정말 회개해야 할 내용이 아직 있다면 회개하고 성결하게 새해를 맞이하자는 말씀입니다. 아직도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에 있다면, 이유를 알아내고 혹시 자신의 죄와 관계된 것이 있다면 진정한 회개의 기도와 사함을 얻는 은혜를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침체된 상태를 벗어나서 새해를 맞이하자는 말씀입니다.
한 해동안의 예배 생활, 기도 생활, 봉사 생활, 전도 생활, 헌금 생활, 이웃 사랑 등 모든 경건의 영역에서 신실하지 못함이 있었다면, 하나님보다 그 무엇을 더 사랑한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고백하면서, 다 털어내고 새해를 맞자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살은 것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심지어 마음과 생각으로조차 지은 죄가 있다면 다 고백해야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했던 마음도 다 고백하고 내려 놓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할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까? 또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도 시행착오로 실수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다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그리고 나서 2010년 새해를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성결’이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신실한 제사장으로서의 각오와 태도를 가지고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과 생각의 변화를 가지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새해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 자신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위에 넘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올해 마지막 남은 시간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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