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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해경
작성일 2009-10-14 (수) 09:4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11    
[10/7/09] 수요예배 - 주 안에서 친구의 유익
주 안에서 친구의 유익 (전도서 4:1-12)-- 한태일 목사

여러분에게는 참 친구가 있습니까? 참된 친구가 좋은 것은 서로 못할 말도 없고, 무슨 일을 해도 허물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수년 전에 큰 히트를 쳤던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 ‘친구 사이에는 미안한 것이 없다’라는 말처럼 무슨 짓이든 함께 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하물며 예수를 잘 믿는 그런 친구라면, 그런 친구가 우리 주위에 있다면 아마 이 세상에 그 무엇 부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친구 하나 없이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말이나 행동에 앞서 이해관계를 따지는 관계만 있다면 참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전도자 솔로몬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참 친구의 유익’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것은 비록 무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친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살만한 이유는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동행할 배우자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해 보십시오. 아마 세상을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가 있다면, 대화가 되고 나를 이해하는 친구가 있다면 외로움을 달랠 수 있고, 어려움을 나눌 수 있기에 힘들어도 즐겁게 살아갈 것입니다.

우선 본문 1-3절을 살펴보면 우리 인생은 마치 학대를 받는 감옥살이와 같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너무 끔찍한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재난, 고칠 수 없는 질병, 질병 못지않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난, 서로 상처를 주고 원수가 되어 싸우는 일, 이것들보다 더 비참한 일은 죄를 짓고 실제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감옥 시설이 좋아도 인간으로서 모든 자유를 박탈 당하고 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런 불행을 허락하셨을까요? 사람은 육체적인 어려움을 통하여 영혼이 자유롭지 못함을, 죄인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학대를 보면서 이야말로 인간이 불완전한 상태, 죄인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1절). 세상에는 많은 학대가 있습니다.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직장의 상사는 부하 직원들을, 빚쟁이들은 빚진 자들을, 감옥의 간수들은 죄수들을, 군대 장교들은 졸병들을 학대합니다. 남편은 힘이 있다고 아내를 학대하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학대합니다.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은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을 학대합니다. 즉 힘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힘이 없고, 권력이 없는 자들을 학대합니다. 그렇다고 학대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자유롭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그들보다 더 힘이 있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로부터 학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말 슬픈 일은 사람이 학대를 받고 눈물을 흘리지만 아무도 그를 위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학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학대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바로 죄에서 온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죄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 죄가 불신을 낳고 서로 불신하게 되니까 학대하고, 학대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이 세상이 마치 거대한 감옥과도 같은데 과연 여기서 사는 것이 축복이겠느냐는 것입니다(2-3절). 어떤 의미에서는 사는 것이 죽은 것보다는 복이라 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태어나지 않아서 악을 보지 않는 것이 더 복이 아니겠느냐는 논리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인간이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어서 4-8절에서는 학대 받는 사람들 외에도 여전히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째, 자기 재능만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4절). 여기 “모든 수고와 여러가지 교묘한 일”이란 남들과 다른 비상한 머리를 사용하는, 재능을 사용하는 모든 수고를 말합니다. 이들의 단점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만 최고이며, 자기 재능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웃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삽니다. 둘째, 가지고 있는 돈만 의지하는 게으른 사람들입니다(5절).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여기 손을 거둔다는 것은 일은 하지 않고 집에서 얻어 먹기만 하는 경우입니다. 대게 이런 사람들은 집에 먹을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집에 돈은 있고, 일은 하기 싫을 때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도박이나 주색잡기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왜 자기 살을 먹습니까? 아무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런 생활에 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살을 깎아 먹는 사람은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까지 망하게 만듭니다. 그런가 하면 셋째로,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들도 행복하지 못합니다(8절). 여기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다”는 뜻은 진짜 없는 것을 말할 수도 있지만, 있어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식도, 형제도, 친척도, 이웃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일만하는 일의 노예가 되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돈이 있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오직 일 자체에 매달려 삽니다. 사람이 아니라 일 벌레(workaholic)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도무지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 전도자가 제시하는 세 종류의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첫번째 부류는 너무 자만하여 사랑할 줄 모르고, 두번째 부류는 너무 게을러 욕망에 중독되어 제 살을 먹느라 사랑할 줄 모르고, 세번째 부류는 일만 좋아하여 인간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전도자 솔로몬이 이들을 거론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이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고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가진 것으로 남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요, 축복의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9-10절).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두려움과 고통을 이기며,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지금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가치를 찾는 길이라고 합니다. 우선 두 사람이 함께 수고해서 일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옵니다. 또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일으켜 세워줄 수 있습니다. 특히 죄와 유혹에 빠지려 할 때 혼자인 것보다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물론 친구도 친구 나름입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참된 친구를 말합니다. 더 나아가 주 안에서의 참 친구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또 누워 잘 때에도 한 사람이 눕는 것보다 두 사람이 누우면 더 따뜻한 법입니다(11절). 뿐만 아니라 싸울 때에도 혼자 싸우면 지기 쉽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하여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12절).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끈도 한 겹은 쉽게 끊어지지만 삼겹줄은 끊으려고 해도 잘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라는 좋은 선물을 주십니다. 또 한평생 서로 사랑하면서 의지하고 살라고 배우자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참 친구에게, 남편이나 아내에게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짝이 없으면 얼마나 외로운지 모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좋은 선물 가운데 믿음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사람이 혼자 위기를 넘기기 어렵지만, 힘을 합치면 위기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만난 형제, 자매들을 귀하게 여기며 만남을 잘 가꾸어 가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없는, 믿음이 없는 친구와는 세상 재미는 좀 있을 지 몰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부부 사이 사랑한다 하여도 부부 사이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빛 되시는 예수님의, 성령님의 인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이 세상에서 학대를 받고 삽니까? 아니면 누구를 학대하고 삽니까? 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자유로와야 이 세상 삶에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하였습니다.

혹은 여러분의 머리, 재능만 믿고 삽니까? 좀 있다고 게으르며 그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삽니까? 아니면 죽도록 일만 하고 삽니까?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남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십시오. 관심을 가지십시오.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서로 힘이 될 것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친구가 주는 유익은 너무 큽니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참 친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면서 다 알게 하겠다고, 나누겠다고 하셨는데(요 15:15), 그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품고 사는 우리들이 서로에게 그런 진리의 참 친구들이, 형제, 자매들이 되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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