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43,836
오늘방문 : 16397
어제방문 : 10789
전체글등록 : 3,867
오늘글등록 : 1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09-11-10 (화) 00:1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45    
[11/8/09] 치유하시는 주님
치유하시는 주님 (사도행전 28:7-10)
한번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 북쪽 가버나움 동네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다가 많은 무리들 가운데 섞여있던 한 병든 여인을 고쳐주셨습니다(마 9:20-22; 막 5:29-34; 눅 8:43-48). 이 여인은 12년을 혈루병으로 앓았습니다. 혈루병은 요즘 말로 하자면 출혈성 자궁 내막염 혹은 자궁암으로 말미암아 때때로 피를 흘리는 병입니다. 많은 의원들을 찾아가서 고쳐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자기 동네를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주님을 뒤따르는 군중들 사이에 들어가 주님의 겉옷을 만졌습니다. 이유는 주님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치유의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아시고는 그 여인을 향하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왜 당시 병 고침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뒤따라 가던 사람들 가운데 주님의 옷을 만진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이 여인만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호기심에서 옷을 만졌거나, 혹시나 하는 의심을 가지고 만졌기에 고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도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기도하는 분들을 봅니다.
저는 오늘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어떤 질병도 고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믿음’을 가지고 ‘올바른 동기’로 주님께 기도한다면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은 오실 메시아가 그 백성의 상처와 아픔을, 질고를 치유하실 능력의 주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메시아의 고난도 우리를 치유하기 위하여서 당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라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고 예언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느 부모가 그 자녀가 병들고 아파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 자녀가 사생자가 아닌 다음에야, 부모가 가짜가 아닌 다음에야 함께 마음 아파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치유함을 받도록 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병들고 아플 때 어쩌면 더 아파하시는 분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고쳐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이 진리를 확실히 믿으셔야 합니다.
정말 구약에 예언된 우리 주님께서 2000여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약속하신 그대로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왕의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릴 때에, 그 제자들이 예수께 찾아와 당신이 참으로 메시아냐고 물었을 때에, “너희는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고 예수께서 답하셨습니다. 사복음서 곳곳에 예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병이든지, 장애든지,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선한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도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비록 배는 파선되었지만 멜리데 섬에 안전하게 도착한 바울과 그 일행들은 원주님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추운 날씨에 수영을 하거나 널조각을 이용하여 해안에 도착한 그들에게 원주민들이 나뭇가지를 모아다 불을 피워주었습니다. 그 와중에 바울도 나뭇가지를 모아 불에 넣다가 그만 독사에게 물리고 맙니다. 하지만 조금도 상하지 않은 그를 보고는 원주민들이 그에게는 신적인 능력이 있다고 여기고 신이라고 불렀습니다(6절). 아마도 이 사건을 들은 멜리데 섬의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가 바울과 일행을 초대하여 사흘을 머물게 합니다(7절).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한 것을 보면 보블리오는 로마제국에서 파송된 멜리데 섬의 총독으로 여겨집니다.
헌데 이 보블리오 총독의 집에서 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서 누워있었던 것입니다(8절).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의사이었음을 생각하면 그 부친의 병은 정확한 진단이었다고 믿어집니다. 누워있는 그 부친의 모습을 보고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를 합니다. 그랬더니 병이 나아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섬에 있는 다른 많은 병자들이 다 바울에게 와서 기도를 받고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9절). 물론 그 동안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이나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병 고침 받은 사건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새삼스러운 사건이 아니지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병 고침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에 대하여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믿고 기도하면 병을 나을 수 있고, 병든 다른 사람도 기도해 주어서 고침을 받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날도 그 때처럼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병을 고치는 ‘치유의 은사’를 주신다고 믿지 않습니다. 당시는 신약 교회들이 처음으로 탄생할 때이고, 특히 12사도들에게 그런 은사를 주셔서 가는 곳곳마다 그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 모여져 초대교회들을 세우는데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 사람에게 치유의 은사를 주셔서 그 사람이 마치 예수님처럼 그 옷자락만 만져도, 12 사도들처럼 손만 대기만 하면 완전히 낫게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의사가, 병원이 필요 없지요. 그런 분들 찾아가면 되지 않습니까?
은사에 대하여 더 자세히 여러분에게 가르칠 시간이 있을 줄로 압니다만, 신약성경에 나타난 은사들이 오늘날도 똑같이 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언의 은사는 성경이 완성됨으로써 끝났습니다(계 22:18).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서 예언한 대로 말입니다.
사실 오늘날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분들에게서 고침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다시 병이 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지요. 예수님이나 사도들처럼 다시 재발하지 않게 완전히 고쳐 주셔야지요.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분들이 병을 못 고치거나, 재발하면 주로 하는 말이 병자가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하지요. 하지만 성경을 잘 살펴보세요. 예수님께서는 병자가 믿음이 없어도 고쳐주신 적이 많습니다. 그저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신 것이지요. 고쳐주시고 난 후에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지요. 사도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나 오늘날도 분명한 것은 치유의 은사가 없는 우리들이, 그런 은사를 받지 않았어도 함께 힘써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실 줄로 믿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4-16)고 하는 성경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이 되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믿음으로 구하면 주님께서 고쳐주십니다. 그렇다고 의사도 찾아가지 않고 약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도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기름은 감람유 종류로서 당시 약으로도 사용하였습니다. 왜 그냥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했는지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특별은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은혜도 있습니다. 이 일반은혜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의사에게 치료도 받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병이 들면 의사들에게 찾아가서 치료를 받고 낫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일반은혜의 한 예입니다.
문제는 의사가 병을 다 고치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특별한 은혜이지요. 간절히 기도함으로 받는 믿는 신자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음식도 병 고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먹으며, 병이 낫는데 필요한 운동도 하면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잠간 언급하였듯이 병 고침 받으려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왜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하십니까? 그저 오래 살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좀 더 하기 위하여서 입니까?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이루어가는 목적을 가지고 고쳐달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하여 고쳐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고쳐주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안 고쳐주시겠습니까?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겠습니까?
만약 그래도 고쳐주지 않으실 때에는 분명한 다른 뜻이 있을 줄 믿고 계속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 안에서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몸에 육체의 가시, 즉 질병이 있어서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까? 그러나 그 병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다른 사람들의 병은 잘 고쳐주면서 어찌하여 자신의 병은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병을 고쳐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이 자신이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고쳐주시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고후 12:7-10). 그저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며, 내주하시는 에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사도 바울을 잘 사용하셨습니까? 고통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사용하셔서 놀라운 병 고침의 기적을 보이신 것은 그 멜리데 섬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서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석 달을 그 섬에 있었다고 하는데(11절), 두달 반 남짓 그 섬에 있으면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10절을 보면 아마 그들 모두가 병 고침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주님을 믿고 후한 대접으로, 예로 바울과 그 일행을 대접하고 떠날 때에 쓸 것까지도 주지 않았습니까? 초대교회들 전승에 의하면 이 때부터 멜리데 섬에 교회가 세워지고 그 총독 보블리오가 초대 목사가 되어서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 확장과 영광을 위하여 오늘도 우리들의 병을 고치시는 역사를 보이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놀라운 기적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병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병도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바울이 가졌던 열정(compassion)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했던 가요? 같은 병을 앓아 보아야 그 사람의 심정을 알아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육체의 가시인 질병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아파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아픈 사람의 심정을 100% 이해하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실제로 아파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아픈 사람의 심정으로, 연민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그 기도가 간절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바울에게 나타났던 능력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육적인 질병 뿐이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정신적인 병, 영적인 병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사탄 마귀가 주는 병을 사망까지 이기신 능력으로 치유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아 멘!
심지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어떤 병이 들었어도 기도하시면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하여 고쳐 달라고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님의 시간에 고쳐 주실 것으로 확실히 믿습니다. 믿는 자들이 합심하여 하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을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만약 바울의 질병처럼 고쳐주지 않으시면 나를 겸손하게 하시려고 주신 은혜로 생각하면, 약할 때에 주님의 힘으로 더욱 강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목회하면서 제일 안타까울 때가 양들이 아파할 때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는데 잘 낫지 않을 경우입니다. 그래도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때가 되어 낫게 하실 것이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결국에 선을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66 주일설교 [1/13/10] 수요예배 - 살아있는 자체가 유익합니다 한태일 목사 2010-01-15 2022
265 주일설교 [1/10/10] 귀중한 교회를 사랑합시다 한태일 목사 2010-01-11 1816
264 주일설교 [12/31/09] 송구영신예배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한태일 목사 2010-01-09 2674
263 주일설교 [1/6/10] 수요예배 - 하나님의 섭리 한태일 목사 2010-01-08 1939
262 주일설교 [1/3/10] 신년주일 - 다시 일어서는 힘 한태일 목사 2010-01-05 2439
261 주일설교 [12/23/09] 수요예배 - 지혜의 가치 한태일 목사 2010-01-01 1987
260 주일설교 [12/27/09] 여호와께 성결 한태일 목사 2009-12-28 1872
259 주일설교 [12/20/09] 놓쳐버린 성탄의 기쁨 한태일 목사 2009-12-21 2019
258 주일설교 [12/16/09] 수요예배 -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게 한태일 목사 2009-12-18 1889
257 주일설교 [12/13/09]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시는 주님 한태일 목사 2009-12-14 2102
256 주일설교 [12/6/09]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한태일 목사 2009-12-07 1864
255 주일설교 [12/2/09] 수요예배 - 지혜자의 특징 한태일 목사 2009-12-04 2096
254 주일설교 [11/29/09] 오늘도 성령행전은 계속된다 한태일 목사 2009-12-01 2131
253 주일설교 [11/22/09]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한태일 목사 2009-11-23 2038
252 주일설교 [11/18/09] 수요예배 - 인간에게 가치있는 것 한태일 목사 2009-11-20 2002
251 주일설교 [11/15/09] 원망보다는 감사를 한태일 목사 2009-11-17 1939
1,,,7172737475767778798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