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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10-09 (월) 10:5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12    
더 좋은 소망, 더 좋은 언약(히 7:11-22)
만약에 모든 것이 완전하다면 더 좋은 것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래서 이 세상의 삶 자체가 다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찾습니다. 조금 깨어있는 사람일수록 완전을 추구합니다. 불완전함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죄 용서함, 구원 다 마찬가지입니다. 불완전한 죄 용서함이나 불완전한 구원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을 전부로 알고 살던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것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다 지킬 수도 없을뿐더러, 속죄의 제사를 드려도 일시적이며 불완전하였기에 보다 더 완전한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멜기세덱 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예표임을 말씀드렸습니다(히 7:1-10). 율법이 있기 전에, 레위 지파가 있기 전에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축복하기에 말입니다.
오늘은 레위 지파 제사로는 온전한 구원을 받지 못하며, 거룩하여 지지 못하기에 더 좋은 제사 곧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더 좋은 소망, 더 좋은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증하십니다(22절). 11절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온전함(perfection)이라 함은 완성(completion), 성숙(maturity)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적인 온전한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레위 지파의 제사장 직분으로는 온전함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론의 반차를 좇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별다른(또 다른, another) 한 제사장을 세웠다는 말씀입니다. 헬라어에는 ‘별다른’이라고 번역하는 단어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avlloj 로 같은 종류의 다른 것(another of same kind)과 또 하나는 e[teroj 로 다른 종류의 다른 것(another of different kind)입니다. 하나는 양적인 차이와 또 다른 하나는 질적인 차이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로서 멜기세덱의 반열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옛 언약의 제사장들은 전부 avlloj 였고, 새 언약의 제사장은 오로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인데 e[teroj 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도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직분이 신약에 들어와 바뀌었듯이 율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12절은 말합니다.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변역하다(change)’의 원어적 의미는 다른 것으로 바꾼다(replace)는 뜻입니다. 구약의 유대주의(Judaism)가 신약의 기독교(Christianity)로 대체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유대인이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면 그 믿음은 구약의 여호와만을 믿는 유대주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 레위 지파 제사직분은 사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직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레위 지파가 율법대로 지키던 모든 예식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 지파에서 나지 않았습니다(13절). “우리 주께서 유다 지파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서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14-15절)고 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는 예수님이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에도 예수님을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5:5)라고 하였습니다.
즉 멜기세덱처럼 시작한 날도 끝도 없는(3절) 스스로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스스로 탄생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성관계를 가져서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도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질적으로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는 다른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로 멜기세덱 제사장의 실체입니다.

이렇게 율법의 제사장 직분과 새 언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너무 다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이 훨씬 우월하고 더 좋은 것입니다. 완전합니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쫓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16-17절)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육체적으로 율법에 있는 대로 레위 지파에서 난 것이 아니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되었기에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탁월하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또다시 시편 110:4 말씀을 인용하면서 옛 언약의 제사장직은 일시적이지만, 새 언약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것을 강조합니다.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의 죽음도 제사장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십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감당하십니다.
그래서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18-19절)고 하였습니다. 옛 언약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고 폐하여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제사 제물이 온전히 우리를 죄 없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율법이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못합니다. 율법이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단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며 죄인인 것을 알게 할 뿐입니다(롬 3:20).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해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하지만 여기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해서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제사의식이나 예식들은 다 폐하여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은 아직도 유효하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온전함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좋은 소망의 새 언약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를 빌어 600여년 전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1-33)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의 언약과 달리 새 언약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새 언약은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법을 두며, 기록한다고 하십니다.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인침으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일시적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죄 사함을 받으며 더 나아가 죄를 이길 능력까지 받은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권세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롬 8:1-2)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 언약이 훨씬 더 좋은 소망인 것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의 삶에 원동력인 것입니다.

그리고 옛 언약의 제사장보다 새 언약의 제사장이 훨씬 더 탁월하고 완전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20-21절)고 하였습니다. 옛 언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맹세하지 않아도 레위 지파 후손이면 자동적으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 언약의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이었으며 맹세한 후에 돌이키지도 않으셨습니다. 바로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라는 약속의 말씀을 또다시 거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000여년 전에 다윗을 통해 맹세로 약속하신 대로 1000여년이 지난 후 정말 예수님께서 오셔서 새 언약의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22절)고 한 것입니다. 여기 ‘보증(guarantee or surety)’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의 석방을 보장해주고나 약속해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보증을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능력이 있어야 되고, 믿을만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더 좋은 소망을 가져다 주는 더 좋은 언약의 보장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맹세하고 그 절대 권위로 세우셨다는 약속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성품, 희생, 부활의 능력이 새 언약의 효력을 보장해줍니다. 이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말입니다. 이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자주 흔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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