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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11-20 (월) 09:29
분 류 절기설교
ㆍ조회: 1386    
불평보다 감사를(출 16:1-12)


어느덧 올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 하였습니다. 참으로 세월은 빨리 지나갑니다. 이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지나면 성탄절을 준비하는 모습들과 크리스마스 Carol 이 우리 주위에서 들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금방 2018년 새해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과거를 교훈 삼아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 상태는 어떠한지 살펴보고 고칠 것을 고치며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가는 자가 참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주일 맞이하여 우리의 영혼과 마음가짐을 점검해 보기 원합니다. 혹시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는 않은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옛날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원합니다. 즉 하나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불평과 원망보다는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며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을, 약속을 지키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적같이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건넜으며, 뒤 쫓아오던 바로의 군대가 갈라졌던 홍해가 합하여져서 모두 수장(水裝)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데, 광야 길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곧바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시고 광야, 뜨거운 사막을 통과하게 하신 것은 그저 단순히 그들을 고생시키려고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을 가면서 백성들의 중심이 치유되며,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바로 서고, 믿음이 좀 자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계속 실패합니다. 사실 그 동안도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는데, 사막에서 사흘 길을 물을 얻지 못하고 가다가 마라에서 쓴 물을 대하니,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약하며 하나님을 신뢰함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 다 드러나고 말았습니다(출 15:22-24).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은혜를 베푸셔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주시고, 질병도 고쳐주셨습니다(출 15:25-26). 그리고는 엘림에 이르도록 하여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의 오아시스를 만나게 하십니다(출 15:27).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신앙은 여전하였음을 오늘 본문이 말해줍니다. 아마 그들이 사막 길을 감사하면서 건넜다면 그 다음 시험들도 능히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 이전 출애굽의 감격과 기쁨을 잊지 않았더라면 또 실패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넘어집니다.

엘림에서 잘 쉬고 또 진행하여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출 16:1). 애굽을 떠난 지 두 달 반이 되었을 때입니다. 아니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한지 며칠도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 때 온 이스라엘 회중이 양식이 떨어졌다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2절). 아마 그 동안은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 양식이 떨어지고 나니 이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게 되어 불평하면서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불평의 내용이 3절에 나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신들이 애굽을 떠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비록 종살이를 하더라도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 떡을 배부르게 먹으면서 살다가 죽는 것이 좋았는데, 모세가 쓸데없이 이곳으로 끌고 와 굶어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 머리에는 ‘무엇이 참된 길인가?’하는 것보다는 ‘무엇이 배부르게 하는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비록 노예로 살더라도 그저 편히 잘 먹을 수 있으면 좋다는 생각으로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용어로 형이상학적인 삶보다도 그저 짐승처럼 형이하학적인 삶을 살기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신 이유는 애굽에서의 세속적이고 우상숭배에 물든 삶에서 철저히 분리시켜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만, 그들은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워하고 돌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난 참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의미가,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 세속적인 삶이 너무 재미있고, 신앙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의 문화나 조류에 어느 정도 적당히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애굽을, 옛 삶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비록 몸은 교회에 앉았을지는 몰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입에서 불평이 튀어나오고, 하나님과 주위 사람들을 원망하며 살 것입니다. 믿어도 적당히 믿으면 되지, 꼭 ‘이런 식으로 믿어야 하는가?’라고 불평하며 말입니다. 이유는 마음이 아직도 애굽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이 세상의 추한 부분과 허무함에 진절머리가 나기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아무리 기적을 보고, 병 낫는 체험을 하여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의 삶을 맡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 없는 자신의 삶, 죄의 노예로 사는 삶이 어떠한가를 똑똑히 인식하고 거기를 완전히 떠나는 것, 옛 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떠나셨나요? 버렸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 불신앙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4절). 하늘에서 양식을 내릴 것이니 그들이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거둘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들으셨다는 말씀을 계속하십니다. 7절, 8절, 9절, 그리고 12절에도 하나님 자신이 직접 들으셨다고 합니다. 얼마나 그 불평, 원망의 소리가 듣기 싫으셨으면 이렇게 반복하시면서 말씀하셨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크게 화를 내고 단번에 벌을 내리실텐데, 오히려 우리 하나님은 원망하는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겠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원망이 겁이 나서 그랬을까요?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망하기 전에 이미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때가 되어서 그 계획을 이제 이루시는 것뿐입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불평하지 않아도 새로운 양식으로 그들을 먹일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다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에게 ‘믿음을 보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부정하는 쪽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몇 번씩 그들이 원망했다고 반복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까? 모세의 외침을 들어보세요.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6절하-8절)!
말씀대로 저녁에 메추라기가 온 땅을 덮을 정도로 날아와 땅을 덮었습니다(13절). 아침에는 만나 떡으로, 저녁에는 메추라기 고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나에게 원망한 것은 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요, 하나님께서 그 원망을 들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그들이 다 죽을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모세의 권위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 불평과 원망이 무서운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찬송도 들으시고, 기도도 들으시고, 우리가 남을 비판하고 욕하는 소리도 들으시고,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는 소리도 다 들으십니다. 이 진리를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불평했더니 바로 응답이 되었다고 좋아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불평에 응답하신 것은 ‘너희들의 악한 말들이 내 귀에 들렸기 때문에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그렇게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제 저녁을 잘 먹고, 또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로 우리에게 이런 음식을 허락하셨는가?’ 깨닫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불평을 들으신 것은 아닌가?’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의 불신앙적인 태도를 바꾸어 신앙적으로 살라고 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해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보다는 감사로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12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리 애굽을 그리워한다고 해도 그들은 다시 애굽의 노예들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그 백성들은 하나님이 무능해서 고기를 주시지 않고, 떡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바가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시며, 적어도 그 백성들은 떡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삶들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4절 하반절을 보면 먹을 것을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그 백성들을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에 대한 내용은 14절 이하에 나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양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를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달아보시고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나중에 40년 광야 생활이 끝나갈 때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의 test 를 pass 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막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교회 생활한다 하더라도, 비록 성령 체험을 했다 하더라도 약간의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불신앙의 모습을 나타낸다면 오늘 먹을 것이 없다고 애굽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똑 같은 모습입니다. 누가 우리 삶의 주인인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속했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 속했는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모세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사실은 불평, 원망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대적, 반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욕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지요? 우리는 누구를 불평하고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목적이 있어 우리에게 일을 하게 하시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원망이나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합니다. 불평하지 말고 부족한 내가 하나님의 뜻을, 그 목적을 이루는데 쓰임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감사함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우리가 훈련되기 원하십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우리는 전혀 쓸모 없습니다. 하나님은 훈련되지 않은 백성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는 데에는 며칠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군사로 훈련되는 데에는 40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 탈락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 가운데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은 두 가족 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2세대가 들어갔습니다. 이유는 대부분이 훈련을 잘 받지 않고, 나쁜 습관을 끊지 못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훈련하도록 합시다. 사실 불평이나 원망은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해서, 신뢰하지 못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마디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형편이든지 감사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올해 말까지 계속 감사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아니 평생을!
하나님께서 훈련을 시키실 때에 기쁨으로 잘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래의 일을 알려 주시지 않습니다. 엘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알려 주시기 않았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곧 내릴 것인데도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다면 그들이 불평하고 원망했을까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알려 주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오늘 하루를, 지금 이 시간을, 아니 매 순간을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사실 그 동안도 우리의 필요들을 채우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test 하실 때에 불평이나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잘 pass 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노래는 악보만 있다고 노래가 아니고 부를 때까지는 노래가 아니듯이, 종도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듯이, 사랑도 고백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듯이, 축복도 감사할 때까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저 감사하면서 test 에 pass 하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 멘!!
                 Happy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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