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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12-11 (월) 07:3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301    
죽음을 준비하십니까?(히 9:23-28)



사랑의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최대의 관심은 구원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푼 구원의 역사 혹은 구속사(Redemptive Histor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을 구원 하셨는가를, 그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그리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의 진리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80년, 90년, 아니 100년을 산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흙(dust)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spirit)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고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구원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생각하고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중병이 걸려도 자신은 곧 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서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27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은 죽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고, 또 때가 되면 인간의 육체는 다시 다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다 먼지로, 흙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습니다. 사도 요한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2-15)고 하였습니다. 즉 구원이라 함은 이 심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죽음은 반드시 인간에게 다가오고, 그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끝인 줄 알고 자살을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이 왜 이렇게 자살해야만 하는가 이해하실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큰 잘못입니다. 그 행위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실로 믿는 사람들은 자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잠시 지나가는 정거장일 뿐입니다. 성경은 육체가 잠을 잔다고 표현했습니다(고전 15:51). 이유는 반드시 깰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영원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삶은 영원한 시간의 한 점과도 같습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약 4:14). 그러니까 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로 알고 온통 관심이 현실에만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현세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돈 벌기에만 눈을 밝히며 몸에 병을 얻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은 참 안타까운 것입니다. 죽으면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갈 뿐인데 말입니다(창 3:19). 그러므로 죽음 후에 있을 영원한 시간을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옛 언약의 제사에서 피뿌림은 새 언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모형이었는데, 그 때에는 인간을 비롯하여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외적인 수단을 통하여 정결해질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23절). 그러나 이제는 하늘에 있는 그것들, 즉 영적인 것들이 더 좋은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이 주님의 피로 정결하게 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옛 언약의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의 차이점들을 대조하며 설명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참 하늘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24절) 하였습니다. 즉 이 땅의 성소는 참 하늘의 그림자로서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참 하늘에 지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십니다. 둘째로, 옛 언약의 대제사장들을 매년 희생제사로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갔으나 예수님은 자신을 단번에 드림으로써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25-26절)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발적인 것이었으며 최종적인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옛 언약의 제사처럼 자주 드릴 필요가 없이 한번의 희생으로 영원한 효력을 나타냈다는 말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시간을 초월해서 그 효력을 나타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 현재에 짓는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죄에 대한 형벌을,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결론으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28절)고 하였습니다. 이미 믿어 죄 문제가 해결된 우리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또 나타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천사가 말합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행 1:11)고 하였습니다.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우리 예수님께서 왜 다시 오십니까?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바로 그 때가 이 세상 끝입니다. 그 후에는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이 펼쳐집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라”(데살전 1:10)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날에 이 악한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진노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 바로 재림하실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날을 사모하며 정결한 신부로서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지켰습니다. 사자에게 찢겨 죽임을 당하는 핍박이 있어도 말입니다. 불에 타서 죽는다 하여도 말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잘 준비하였습니다. 천국 소망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하고 사십니까? 개인의 종말은 누구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최후의 날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 중 죽지 않고 살아서 그 날을 맞이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고대하던 날, 기쁨의 날, 영광의 날입니다. 영원히 눈물과 고통이 없게 됩니다.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는 날입니다.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몸소 경험하는 날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더라”(계 21:11)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잘 준비한 구원 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복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저주요 심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그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을 확실히 믿기에 그 날을 감격과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는 것을 알고 담대히 맞이합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기에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도 이겼기에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 믿음이 없어서 죽음이 두려운 분이 계십니까? 아직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마음에 모셔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에 오늘 이 시간 이 부족한 종을 통하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활짝 열고 받아들이십시오.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구원이 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딸을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면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사고방식이 바뀌게 됩니다. 가치관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해집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가기를 바랍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기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중심하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잘 준비하여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정결한 신부의 자세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를 더럽히려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한 영적인 은장도를 소유한 신부이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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