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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1-29 (월) 10:4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117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창 22:1-14)


새해를 맞아 저는 두 주일에 걸쳐서 우리가 믿는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절대주권으로 온 만물을 다스리시는 참 하나님(True God)이시며,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분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어도 상관이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 없이 한 순간도 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바로 안다면 늘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며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서,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신다면 미리 준비시켜 놓으시고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는다면 힘든 일을 만나도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 하기 위하여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가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창 22:1-2).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가서”(2절) 하신 것을 보면, 대부분의 부자관계처럼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아브라함 편에서 생각하자면, 하나님의 요구는 참으로 너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항할 수도 있는 요구, 참 하나님답지 않은 요구라고 생각하고 명령에 망설이거나 불복종 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랬다면 믿음의 본이 되는 조상으로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이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무 말없이 다음날 아침 일찍 독자 이삭과 두 하인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도 준비해서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 모리아 산(지금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봅니다(3절). 모리아 땅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5절). 아마 하인들과 같이 갔으면 그들이 자기의 행동을 막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산 아래에 떼어놓은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던 믿음의 근거를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 11:19)로 하였습니다. 이 전에 주신 언약의 말씀이 자기의 씨가 하늘의 뭇 별들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하였기에(창 15:5) 조금도 의심 없이, 만약 독자 이삭을 요구하시면 분명히 무슨 뜻이 있을 것이며, 아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걸어가면서, 이삭은 아브라함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질문을 합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절하). 그러자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고 아브라함이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을 잘 알고 믿었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에는 이미 준비해 놓으시고 허락하실 줄을 믿고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기도 합니다. 모리아 산(예루살렘), 번제물 어린 양, 이삭, 다시 살리심 등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온 세상 죄를 위하여 바치신 것처럼,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자를 아무 불평도 없이 기꺼이 바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믿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지시한 정확한 장소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은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얹었습니다(9절). 그런 다음 그는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그 때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성경이 적고 있지 않지만, 사실 그 순간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버지를 믿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기 손과 발을 결박할 때에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손을 들고 칼로 자기 아들을 찌르려는 순간(10절), 단 일초도 어긋남이 없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눈을 들어보니 근처 가시나무에 뿔이 걸려 꼼짝 못하고 있는 수양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아들의 생명을 취하는데 사용하려던 그 칼로 아브라함은 그 수양을 죽여 희생제물로 삼아, 아들 대신 번제물로 제단에 놓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13절). 그리고는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불렀습니다. 히브리 말에 ‘이레’라는 말은 ‘준비하다, 제공하다’ 라는 뜻입니다. 즉 ‘이 곳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양을 준비해 놓으신 곳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전체 이야기를 간략하게 세 문장으로 표현하면,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셨고, 2) 그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아들을 요구하셨고, 3) 희생제물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다가 허락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때때로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하시기 위하여 희생을 요구하시며, 그 때에 믿음으로 순종하면 자신 스스로 준비해 놓으셨다가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들을 때에 아브라함의 믿음에만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초점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는 데에 있습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위대하다면, 우리 하나님은 훨씬 더 위대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을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없는 것을 준비시켰다가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죽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살아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순종이었습니다. 자기 생각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아무런 토를 달지 않는 순종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셨던 일을 여러분에게 요구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에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요구하신다면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실 때에는 분명히 준비해 놓으셨다가 허락해 주실 줄 믿고 순종합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앞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 우리는 복음을 만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희생 제물을 제사장에게 들고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은 매일 계속 서서 백성들의 희생 제물들을 잡아 피를 뿌리고, 불에 태워야 했습니다. 그 동물의 피로 그들의 죄가 잠시 덮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완벽한 희생 제물인 순전한 어린 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바쳐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처럼 잠시 죄가 덮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고, 제거되고, 지워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대가를 일시에 다 치르셨습니다. 더 이상 동물의 피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외치신 것입니다.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죄 값을 다 치렀다’, ‘제사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완수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우리 예수님에게도 인간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를 요구하실 때에는 다시 살리실 것도 아셨기에 기꺼이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다른 종교와의 큰 차이점입니다. 이단을 비롯한 다른 종교는 서 있는 종교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서서 계속 노력을 해야 하고, 계속 제사를 드려야 하며, 계속 기도해야 하고, 계속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들은 선 채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들을, 규례들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앉아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인간이 서서 계속 노력해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해도 아무도 갈 수가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충분한 자격을 갖출 수 없습니다. 완전해 질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을 얻고 구원 받는 것은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값없이 주는 은혜를 믿음으로 앉아서 받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내용을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런데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3) ‘좋다, 그러면 내가 대신 하겠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완전함을 요구하셨고, 우리는 그 기준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아들을 선물로 우리를 대신해서 보내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옷, 의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록 아직 죄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의의 전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주셨다가 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죽은 것을 아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에는 아무 소망이 없는 줄 아시고 천국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아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후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고아처럼 외로운 줄 아시고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고자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친히 머리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만왕의 왕의 왕자와 공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의 노예인 것을 아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요구하셨던 것을 준비하셨다가 우리에게 직접 주셨습니다. 또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하였듯이, 우리의 인생에 인도자가 필요한 줄 아시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주셨습니다. 목사와 지도자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필요한 줄 아시고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기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격려가 필요한 줄 아시고 교회의 형제 자매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준비하셨다가 그 뜻 안에서 허락하십니다. 믿음으로 그 품에 안기면 됩니다. 순종하면 됩니다. 그 축복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아마 신앙생활을 좀 하신 분들은 거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경험이 너무 많구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계십니까? 그저 순종하고 나아가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으면 우선 마음을 드리시면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면서 나아갔던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니면 이미 준비해 놓고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준비된 어린 양을 손을 내밀어 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고 하였으며,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은혜를, 선물들을 체험한다면 깊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찾아 내시고, 부르시고, 구속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고,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천국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자녀 삼으시고 필요한 것을 다 허락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는 편지의 추신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감사합니다’라고 써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셨다가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것은 거저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거저 주어야 합니다. 거저 용서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거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체험하였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거저 받은 복음을 거저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는 감사의 찬양과 경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형제 자매를 섬김으로, 아니 매일 매순간 순종함으로, 더욱이 어려울 때에 순종함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첫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사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까? C. S. Lewis 는 이 진리를 아버지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조르는 아이에 비유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돈을 주는 것도 즐겁지만, 선물을 받으면 더 기뻐할 것입니다. 사실 모든 것 다 갖고 계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것을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되돌려 드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미 허락해 주신 것을 요구하시는데, 불순종한다면 그 같은 배은망덕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저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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