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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4-27 (금) 00:0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8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 1:3-11)
때로 우리가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은 우리의 삶에 왜 고난이, 어려운 순간들이 자주 다가오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죄악이 가득한 세상,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고난입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 5:7)고 하였고, 욥도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욥 14:1)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도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렘 20:18)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고통, 슬픔, 실망, 아픔, 고생 등으로 가득차 있음을 성경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왜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착하고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 죄인이라고 합니다(롬 3:10, 23). 모든 사람이 이 타락한 세상에서 사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외 없이 누구나 좋지 못한 일들을 만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모든 죄 사함을 받은, 구속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악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종종 고난을 당합니다. 더더욱 진리를 따라 살고자 하는 한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리 믿는 자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 이유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고난을 만날 때 그 해석을 잘 해서 그 의미를 깨닫기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진짜인지 테스트하기 위해서 입니다. 연단하기 위해서 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 17:3) 하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니라”(신 8:2) 한 것처럼 그 백성들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고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종종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반면에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셨고 그는 패스했습니다. 정말 아브라함은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믿음임을 하나님이 알았던 것입니다. 즉 진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고난을 통과하면서 잠깐 근심하더라도 주님을 사랑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 1:6)고 하였습니다. 결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에 없음을 나타내 보이는 참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그의 자녀들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굳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롬 5:3-4)고 하였으며,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더욱 간절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향이 여기가 아니고 더 나은 본향이 있음을 더욱 사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67,7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고난을 겪으면서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마치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잘못할 때에 사랑의 채찍으로 징계하여 맞고 나서 고치고 순종하듯이 말입니다(히 12:5-11).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징계를 맞아도 깨닫지를 못하고 순종하지 않아서 계속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정말 우둔한, 영적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넷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다시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열심으로 사랑하시는지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니며 고생할 때에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고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믿는 자들이 평소에는 그 큰 사랑을 잘 못 느낍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며 그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고난을 통과한 후 더욱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잘 쓰임 받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많은 어려움을 통과할수록, 연단을 많이 받을수록 더 잘 섬길 수 있습니다. 더 큰 일꾼이 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영웅들도 그렇고,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도 그렇고,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한 분들은 다 많은 어려움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빚으셔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다른 성도들이 고난을 당할 때 그들을 위로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하셨습니다. 정말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간 후에 다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큰 위로를 받고 나서 그렇게 형제들을 위로하고 강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도 이 진리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

   고린도후서의 배경을 잠시 설명을 드리면,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1년 반을 머물면서 교회를 개척하여 약 4년이 지난 후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써서 디도 편에 보내면서, 자신이 고린도를 거쳐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에 가서 말씀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 중에 바울의 사도됨을 인정하지 않고 불신하면서 거스리는 자들이 있음을 듣고는, 고린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마게도냐로 가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음을 듣고 기쁜 마음에서 고린도후서를 써서 보내게 됩니다. 디도의 역할이 무척 컸습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인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 잘 하여서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을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원한다는 문안 인사를 합니다(1-2절). 그리고 나서,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면서 자비와 위로가 넘치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3절)! 여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함은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우리 모든 죄인을 대표하여 죽으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질상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오셔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정말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원래 “자비의 아버지”라는 하나님 이름은 구약에서 종종 나타나는 명칭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 24:14)고 하였고, 또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시 86:15) 하였으며,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축복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후 2:16-17)고 하였습니다. 사실 성령 하나님의 이름도 보혜사(Comforter), 위로자입니다(요 14:16).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기에 어떤 환난에서도 우리를 능히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정말 자상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고통에 결코 무관심한 분이 아닙니다. 자녀가 아프다는데도 TV 나 보고 앉아있는 무뚝뚝한 분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미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과 핍박 속에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고난을 당해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5-6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고후 11:23-27)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위로가 넘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고난 당하는 자들이 있으면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으며 고난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8-9절)고 하였습니다. 죽는 것 같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만 붙들었더니, 하나님만 의뢰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10절)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위로의 하나님을 의지하면 견디게 하시고, 이겨 나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위로하실 줄 믿습니다. 또 그렇게 우리를 위로하시는 이유는 환난을 당하는 다른 성도들을 위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도 하나님만 의뢰하며, 소망을 가지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7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을 위하여 고린도교인들이 기도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사역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은혜)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11절)고 합니다. 자신이 그런 어려움에서 살아난 이유가 많은 성도들의 기도 덕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고 합니다. 물론 고린도교회 안에도 바울을 믿어주고 끝까지 그를 위해 기도했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그런 은혜를 입고, 건짐을 받았기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면 자포자기 하든지, 요행을 바랍니다. 그러다 요행이 통하지 않으면 멸망으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든지, 술이나 마약으로 폐인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이시며, 아버지이시며, 예수님이 여러분의 신랑이십니까? 그런데도 이민 생활에 어떤 어려움을 통과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합니다. 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고난이 닥치는지 그 이유들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들이 있어서 허락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붙들고 의뢰하면서 위로를 받으시며 이겨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넘어져도 아주 넘어지지 않습니다. 잠깐 후면 일어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들어 일으키십니다.
   정말 죽음이 문턱에 와 있어 이제 곧 주님을 만나게 되는 지경이 아니라면 ‘죽겠다’는 말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절망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진짜 믿음이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믿음을 테스트해 보시려고 허락하시는 고난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테스트해 보시려고 주신 고난입니다. 또한 하늘의 소망을 더 갖고 살라고 주시는 고난입니다. 더 큰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려고 주시는 고난입니다.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라고 주시는 고난입니다. 연단을 통해 더 멋진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삼으셔서 더 크게 사용하시려고 주시는 고난입니다. 그리고 옆에 비슷한 고난을 겪는 형제, 자매들을 위로하라고 주시는 은혜입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더욱 하나님만 붙들고 힘을 내어 고난을 이겨낸다고 한다면 얼마나 귀하게 쓰임을 받는 인생입니까?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입니까? 그런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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