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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5-10 (목) 11:2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950    
말에 실수가 없는 자(약 3:1-12)
참된 성도라면 자신에게 미성숙한 신앙인격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성숙해지려고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무슨 말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무척 노력을 합니다. 그러네 그 중 가장 힘든 것이 아마 말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야고보가 성령의 감동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심판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1절). 이유는 가르치는 자는 주로 말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말의 절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2절)고 합니다. 여기 실수가 많다는 것은 가르치는 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잘한다고 선생이나 어른이 아니고, 말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선생이요 어른인 것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려면 말을 적게 해야 하겠지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9)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보면 말이 많은 사람은 속이 비어있음을 봅니다. 그것을 덮으려고 말을 많이 하지요.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반 밖에 배우지 않은 사람은 말이 많고 항상 그릇됨이 많다.’
실제로 말 실수를 하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도 이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horses)과 배(ships)를 예를 들면서(3-4절) 우리의 입에 굴레를 씌울 것을, 통제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은 정말 입에 굴레를 씌워야 통제가 됩니다. 그래야 말이 유순해 집니다. 또 아무리 큰 배라 하더라도 항해사가 쥐고 있는 키로 배는 통제가 되어야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또 말은 불과 같아서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우리 온 몸을 더럽히며 마치 지옥 불처럼 불사를 수 있다고 합니다(5-6절). 그만큼 말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분노에 차서 함부로 내어 뱉은 한마디 부정적인 말이 교회에 엄청난 파괴력이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상 전쟁에서 칼이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말의 비수에 찔려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이어서 세상의 다른 짐승이나 새나 벌레들은 사람이 길들이면 잘 길들여지는데, 사람의 혀는 길들여지기가 힘들다고 합니다(7절).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8절)고 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하여 우리 말이 길들여지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자신과 싸워 길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내 말이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고 파괴적일 때 아무도 고쳐줄 사람이 없습니다.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못 고칩니다. 결국 자기 자신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도움을 의지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통제된 말일까요? 김서택 목사님은 1)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하되 대화의 목적에 맞는 정확한 표현과, 2) 상대방의 마음, 정신을 읽으면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공감을 할 수 있지요.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말하지 않고, 한 마디 한 마디 생각 좀 하면서 말을 하면 실수가 적을텐데 말입니다. 오늘날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책 읽는 시간은 거의 없고 TV, 인터넷 등의 영상 문화 속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생각하는 훈련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냥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버리지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도 모르고, 정리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어떤 말 뒤에 감추어져 있는 사고와 정신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또 내가 이 말을 했을 때에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일까 하며 그 표현의 방법까지 신중하게 한다면 정말 실수가 적을텐데 말입니다. 문제는 한번 내뱉은 말은 엎지른 물을 주어 담을 수 없듯이 주어 담을 수가 없다라는 것이지요. 물이 엎지러질까 조심하듯이 주의하여 말하면 잘 통제된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평소 평온하고 아무 일이 없을 때 말에 실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화가 날 때, 마음 속에 분노가 있을 때에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상처가 있고, 분노가 들끓을 때, 흥분될 때에 올바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말에 실수를 하게 되어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에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때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나오는 대로 퍼붓게 되면 그것이 바로 죽이는 독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말에 쏘인 사람에게는 그 독이 쉬지 않고 퍼져 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경고하시기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욕)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절제된 말, 통제된 말, 유순한 말은 정말 은혜스럽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덕을 끼칩니다. 솔로몬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가가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요오디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고 하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한 입에서 찬송가 저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가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이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9-10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저주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미워해서 그가 망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마음에 분을 품을 때에 그런 말이 나오지요.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결정적인 위치에 두고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저주가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가 말해준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저주입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이 우리는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저주하는 말도 하지 않고 언제나 찬송만 부르고 축복의 말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완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한 입으로 찬송이 나가기도 하고, 또 더러운 욕설이 나갈 때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도록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실수를 줄여가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마땅하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스러운 말만 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의 마음 상태가 중요합니다. 한 샘에서 쓴 물에서 단 물이 같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11절). 무화과 나무에서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에서 무화과를 맺을 수 없습니다(12절). 예수님께서도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하-35)고 하셨고, 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 15:18)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평소에 마음에 성경 말씀을 담고 있고, 선한 것을 담고 있으면 흥분될 때에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 우리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경건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저 입을 닫아야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영적 상태를 올바로 회복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삶의 지혜서라고 일컫는 잠언의 1/3이 말에 대한 교훈임을 아십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 안에 성령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신앙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양심에 호소합니다. 그 동안 주님 닮은 말의 표현들이 우리의 입에서 나왔었습니까? 분노할 때에 퍼부은 말로 독을 쏜 일은 없습니까? 한 입으로 찬송하면서 저주도 한 일은 없습니까? 아니 나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시다. 참맘으로 회개합시다. 우리의 마음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십시다.
그리고 결단합시다.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의 마음에 선한 것들을 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게 하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소서! 무엇보다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해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사탄,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사도 유다는 육에 속한 사람,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 1:16)고 하였습니다. 바로 앞 절에 이러한 자들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 1:15)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당연히 형제, 자매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6)고 하였고, 이어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 말도 사랑의 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로, 남을 판단하고 비방하고 저주하는 말보다는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술이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에 선한 것으로 가득하게 합시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생각하고 말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며 말합시다. 정말 덕스러운 말, 사랑스러운 말, 축복하는 말로 서로를 세워줍시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계속 마음을 다스리고 말을 절제하는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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