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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5-14 (월) 05:5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57    
큰 믿음의 어머니(마 15:21-28)


‘어머니의 날’은 미국 남북 전쟁 중, West Virginia에서 Ann Jarvis에 의해 제창된 ‘어머니의 봉사일’ (Mother's Work Days)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 날은 적, 아군 가리지 않고 부상병들의 위생을 돌보기 위해 지역 여성이 동원되어 활동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1907년 5월 12일, Ann Jarvis 가 소천한지 2년이 지났을 때, 그의 딸 Anna가 돌아가신 믿음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가 주일학교 교사를 했던 St. Andrew’s Methodist교회에서 기념식을 갖고, 흰 카네이션을 헌화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Anna의 어머니를 향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으며, 이때 어머니를 기억하는 날의 중요함을 인식하여, 이듬해인 1908년 5월 10일, 같은 교회에 470명의 학생과 어머니들이 모여 최초의 ‘어머니의 날’을 축하하였습니다. 이때 Anna는 참가자 전원에게, 어머니가 좋아하던 흰색 카네이션을 전달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흰색 카네이션이 어머니 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후 Anna는 친구들에게 ‘어머니의 날’을 만들고 전국 곳곳에서 경축할 것을 제안하게 되었는데, 미국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마침내 1914년 미국의 제28대Thomas Woodrow Wilson대통령이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의 날’로 선포하면서 정식 기념일이 되었고,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오늘 그 전통으로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며 선물을 합니다.

오늘 어머니 주일을 맞아 우선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과 수고에 감사를 드리면서, 어머니들이 주님 보시기에 큰 믿음을 가진 분들이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믿음의 어머니들이 그들의 중보기도와 행동으로 그 자녀들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귀신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이방 가나안 땅의 여인, 귀신들린 딸의 어머니의 믿음을 가리켜 28절에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이 어머니의 큰 믿음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21절에 본문의 배경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시간 전까지는 대부분 사역을 갈릴리에서 하시다가 거기를 떠나 북쪽으로 42마일 정도 떨어진 지중해 연안의 두로와 거기서 또 18마일 떨어진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군중들이 그를 로마 제국을 뒤엎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왕으로 세우려는 시도(요 6:15)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그를 체포하려는 시도(마 14:2)가 보였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주된 사역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나타내며,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어떤 민족이나 인종을 초월하여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받아 주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관계없이 참 믿음과 겸손으로 주께 나아오는 사람을 영접하였습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니”(마 11:28), 혹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큰 믿음입니까? 이 가나안 땅의 어머니가 가졌던 믿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회개하는 믿음입니다(22절).
22절에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하였습니다. 우리 말과 영어에는 ‘주 다윗의 자손이여’ 가 먼저 나오고 나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였지만, 원어에 의하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먼저 나옵니다. 가나안 여인이라 함은 이방 신들을 섬겼던 여인이라는 말입니다.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7장 26절에 의하면, 이 여인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께 나옵니다. 바로 이것, 사탄의 길, 우상을 섬기던 길에서 돌아서서 주께로 나오는 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더군다나 이 어머니의 호소를 들어보면 그 회개가 진실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한 가지 소망이라면 자격은 없지만, 주님의 긍휼, 자비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죄인인 인간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망이라면 하나님의 긍휼, 자비가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큰 믿음은 먼저 진실한 회개가 수반됩니다. 사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라면 자신이 죄인으로서 얼마나 무가치하고, 전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주의 긍휼을, 자비를 바랄 뿐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대상인 주님을 확실히 알고 경외합니다(22절).
이 여인은 예수님을 가리켜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짖습니다. 큰 믿음은 물론 작은 믿음이라 하더라도 믿음의 대상이 올바른, 확실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아닙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상식 밖의 믿음을 말하는 것을 봅니다. 자기 상상대로, 바라는 대로 믿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음이 역사를 하려면, 능력을 나타내려면 확실한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정말 믿어도 될 만한 올바른 대상을 믿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 어머니는 그 동안 죽은 우상신을 믿다가, 이제야 바로 믿어야 할 대상을 만난 것입니다. 주시며,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입니다. 그녀는 가나안 땅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은 종교를 포기하고, 살아있는 하나님이신 주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능력을 들었을 것이고, 그의 선하심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찾아 경외하며 나온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기는커녕 존경하지도 않고 죄인의 친구요, 마귀 들렸다고 비난하는 반면에, 이 가나안 어머니가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주님은 귀가 솔깃하였을 것입니다. 비록 이 어머니가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이 어머니는 딸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면서 생명 걸고 주님에게로 나아온 것입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 고통 받는 것을 보고 그 죽은 우상이 딸을 고칠 수 없음을 알고,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오직 한 분,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 주권적인 왕으로, 사랑의 주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끈질긴, 굽히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23-25절).
큰 믿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장애와 어려움을 만나도, 조금은 실망할지 모르나 굽히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딸을 고쳐달라는 이 어머니의 부르짖는 간구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23절). 예수님께서 지금 이 어머니의 긍휼을 구하는 호소와 자신을 가리켜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도 아무 반응을 보이시지 않으시는데 계속 여인이 소리를 지르니까 제자들이 오히려 그 여자를 내보내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작은 동정심도 없이,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는 치우친 편견으로 내 쫓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여인이 들으라고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24절)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지극히 옳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계획은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돌이켜서 주를 영접하며, 그 백성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그 소식을 전하며 구원역사를 펼쳐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자신을 부인하여, 거역하며, 오히려 적대시하는 그들이지만 그의 주된 사역은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언약의 백성들이 먼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 했겠습니까? 아마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 정말 치사하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자비와 긍휼의 메시아라며, 이렇게 속 좁게 유대인들에게만 은혜를 베푸느냐, 그만 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그런 심정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딸을 생각하며 계속 끈질기게 주께 부르짖습니다. 주님의 침묵에도, 냉담함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께 간구합니다. 주님 밖에는 소망이 없는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절하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끈질기게 붙잡습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25절)라고 말입니다. 모욕적인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절을 하면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여기 ‘절하며’라는 말은 원어에 의하면 주님을 경외함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지만 강한 의심 때문에 몸부림칩니다. 하나님에 대한, 성경에 대한 의심과 싸웁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의 방해와 조롱과 싸워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을 들어보지 못하거나, 주위의 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에서 잘못된 것을 봄으로 혼동합니다. 실망하고 안 믿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그 어떤 장애물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은혜를 사모하며 주께 끈질기게 간구합니다. 굽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겸손입니다(26-27절).
예수님께서 이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6-27절) 라고 합니다. 이런 말은 그녀가 겸손하지 않으면 나타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자존심이 있다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주님 앞에 전혀 자존심이 없기에 그런 겸손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녀를 개로 빗대어 말하면서 자녀의 떡을 취해서 개에게 줄 수 없듯이 안되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로 취급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그 말도 맞는 말씀입니다 만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 아닙니까? 얼마나 강한 호소입니까? 이제는 예수님께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의나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여인의 믿음입니다. 개라고 불러도 좋고, 부스러기라도 좋다는 것이 얼마나 이 여인의 겸손함을 말합니까? 주님께서 베푸시는 능력의 부스러기만 맛 보아도 자기 딸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시험을 통과한 이 어머니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무어라 하십니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절)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딸이 나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녀가 주께 부르짖었을 때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계속 거절하여도 끈질기게 겸손으로 하는 말을 그녀로부터 들었을 때에 주께서는 그녀를 축복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고 약속하신 말씀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 어머니의 자기에게 대한 계속되는 반응을 보시고 주님께서 너무 기뻐하지 않으셨겠나 생각이 듭니다. 산상수훈 팔복의 설교(마 5:3-11)를 들은 적도 없는 여인에게서 겸손과 애통함과 온유함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구하고 두드리고 찾고 하였기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감동하셨으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셨겠습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믿음의 분량을 달아보신다면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그 측정은 회개, 지은 죄를 진실로 자백하고 돌이키는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확실히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경외함으로, 어떤 난관이라도 주께 나오는 것을 굽히지 않는 끈질김으로, 그리고 모든 자만, 자존심을 다 버린 겸손함으로 주님께 나아와 간구하는 것인데, 그러한 믿음으로 오늘도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에게 무슨 소원이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께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믿음을 가진 자는 그 믿음대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무엇이 부족하십니까? 지은 죄에 대한 진실하고 진지한 회개가 더욱 필요합니까? 정말 회개하십시오. 아직도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에 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못합니까? 그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합니까? 정말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를 경외하십시오. 아니면 여러분에게 끈기가, 끈질김이 부족합니까? 조금만 어떤 장애가 오면 낙심하고 뒤돌아 서 버리고 맙니까?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는 지도 모릅니다. 어떤 핍박도, 난관도 이겨내야 합니다. 어떤 시험이나, 유혹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교만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까? 아직도 자존심을 세우고, 지키고 삽니까? 그것마저 버리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고 부르짖습니까? 나를 개라고 불러도 좋고,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라도 좋습니다 하면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날 줄로 믿으며 자신을 낮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 세상의 어떤 어머니도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라면 이렇게 주님을 붙들고 간구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죽어가는 자녀를 살리는데, 상처 입은 자녀를 회복하게 하는데, 곁 길로 간 자녀를 돌아오게 하는데, 가족의 구원을 바라는 어머니라면 이런 가나안 어머니처럼 큰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오리라 믿습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그 믿음을 주께서 보시고 칭찬하시며, 그의 크신 능력과 은혜로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응답하여 주십니다. 계속해서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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