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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5-18 (금) 00:16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08    
내가 속히 오리니(계 22:6-12)
사랑하는 가족 중에 누군가 떠나면서 다시 온다고 약속을 했기에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들지요. 염려와 걱정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200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주님께서는 오시지 않고 삶은 어렵고 이 세상 사람들은 더욱 악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들은 더 이상 소망을 두지 않고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그 약속을 믿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의 성도들은 주님이 승천한지 약 100년 정도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 핍박이 심해서 생활하기가 힘드니까 기다려도 오시지 않는 주님에 대한 소망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마지막 장 결론에서 주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6절, 12절)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는 그 당시 성도들 보다는 아주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2000여년 시간이 흘렀기에 그 약속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라고 하셨듯이,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고 이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도 그 예언의 성취는 길게는 약 1500년, 짧게는 600년 걸렸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간의 개념이 다를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에게 긴 시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에게는 아주 짧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불평하는 자들을 향하여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고 하였습니다. 어쨌든 주님께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이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하셨기에, 미전도 종족 모두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나서야 주님 다시 오십니다. 그 시간이 우리에게 긴 것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도 있기에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언제든지 다시 오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적 같이 오신다고 하셨으니 오늘 밤에라도 오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만나는 준비를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합니다.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성경 말씀은 믿을만하고(trustworthy) 참되다(true)고 합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6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예언의 말씀은 항상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믿을만하고 참된 진리라는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이야기하는 도중에 갑자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7절)고 하십니다. 이미 1장에서 주셨던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지금 주님은 요한에게 영물인 천사와 대화를 하는 신비한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신비한 체험을 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음으로 망한 자들이 있습니다(참고 히 6:4). 그런 체험으로 구원을 받고 거룩해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요한은 실수할 뻔 하다가 천사에게 경고를 듣습니다.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8-9절)고 하였습니다. 신비한 환상에 빠져있던 요한은 환상을 보여준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자기는 요한이나 그 형제, 또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주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야단을 친 것입니다. 빨리 환상에서 깨어서 이제 이 말씀을 증거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이 말씀을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성도들 가운데 핍박을 심하게 받아 힘들어 하는 자들도 있고, 아니면 아예 소망을 잃어버리고 타락하여 음란한 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경고하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체험만을 추구하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말씀을 지키라고 합니다. 또는 아무리 힘들다고, 아니면 너무 편하다고 소망을 잃고 살면 안됩니다. 또 어떤 이단들처럼 극단적으로 이 세상 삶은 다 팽개치고 그저 주님의 재림만 기다리며 전도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루터는 ‘내일 이 세상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혜롭게 분별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소망을 더욱 붙들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종말론적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천사는 요한에게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고 세상에 알리라고 하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질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10-11절)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예언의 말씀은 곧 바로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에 인봉하지 말고 즉시 공개하라고 합니다. 즉 성경은 감추어진 말씀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속히 알려서 복음을 믿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의 때, 심판의 때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공개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이 말씀을 믿고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못하여 그냥 그대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도 있고, 더러운 생활을 하는 자는 그냥 그대로 더럽게 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권면해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처럼 마음이 강퍅한 그대로 두십니다. 그들은 지금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삽니다. 변하지를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억지로 믿게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달아 마음에 감동을 받고 의지적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십니다. 그래서 믿고 의롭게 된 사람들은 그대로 의를 행하며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아갑니다. 행동과 성격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음성이 또다시 들립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12절)! 주님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실 상이 있다고 하십니다. 믿는 자들이 한 행위대로 상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미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행한 모든 선한 일에 대한 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구원은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은혜를 바로 깨달은 사람은 주님을 위하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 선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며 삽니다. 그러데 그렇게 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심으로 갚아주십니다. 이 진리를 알기에 그날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하여서는, 게으른 것에 대하여서는 이 땅에서 심판을 받으며, 하늘나라에서의 상은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는 주님의 음성을 정말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꼭 다시 오십니다. 비록 우리 생전이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 끝나서 주님을 만날 때를 위하여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우리가 걸어가는 생명의 길이 무엇입니까? 그 길이 좁은 길입니다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길입니다. 그 길이 복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생각이나 경험으로, 내 열심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눈에 아무리 좋게 보여도, 내 생각에 옳게 보여도 성령님이 아니라고 하면 가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가십시오. 큰 상이 있습니다. 그 날 박수를 쳐주시며 맞아주실 그 주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나의 맡겨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이런 저런 어려운 일들을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고 비난하더라도 주님이 잘했다 칭찬한다면 우리 인생은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할 때에, 사람들이 생각할 때 잘 했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비록 주님 다시 오심이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소망의 약속을 붙들고 그 날까지 십자가를 지고 생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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