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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7-02 (월) 09: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03    
믿음으로 나갔고 바랐음이니라(히 11:8-10)


인생이 이 세상을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그것만을 믿고 사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존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천국도, 지옥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듯이 바람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존하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조차 믿고 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고후 5:7)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강해를 시작하면서 믿음의 영웅 세 사람, 아벨과 에녹과 노아를 살펴보았습니다. 고 하영조 목사님은 그의 히브리서 강해 설교집에서 ‘이 세 사람을 강의 지류라고 본다면, 이 물줄기가 흘러서 바다가 된 것이 아브라함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고 하는 진리를 선포한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그를 “믿음의 조상”(롬 4:16)이라고 했으니 당연하지요. 스데반 집사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순교의 각오로 말씀을 전할 때에도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 7:2절하-4절)고,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신약성경은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요,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 3:7)라고 말입니다.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까요?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기꺼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8절)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 아브라함은 태어나면서부터 75년을 살았던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날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땅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땅입니다. 당대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여 돈을 잘 벌었던 부자였습니다. 그가 평생 잘 살아온 땅, 문명이 발달해 살기 좋은 그 땅에 많은 이웃과 친구를 두고 75세에 어느 누가 이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냥 고향 땅에 머무르는 것이 아브라함에게는 아내 사라와 함께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셨을 때,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요, 행동으로 옮기기에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안다고 하면 보다 쉽겠지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아내와 함께 떠난 것입니다. 비록 주위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비방하였을지라도 말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고 했습니다(창 12:7). 분명한 부르심이 있었기에 떠났던 것입니다. 분명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떠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는 언약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을 내려 놓고 따릅니다. 내 경험과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너무 달라도 믿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약속을 신뢰하며,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주님을 따르라고 하실 때 순례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옛 삶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 5:37-38)고 비유로 말씀하셨고,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였습니다. 또, 에베소교회에게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엡 4:22-23) 한 것처럼, 믿기 전의 불신앙과 무신론자나 이교도의 사고방식,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가치관으로 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새 땅에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옛 것을 다 포기한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다 버려야 합니다.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앞을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과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 놓인 어떤 장애물도, 어떤 문제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믿음으로 미래의 밝은 소망을 바라보고 인내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9-10절)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가족들에게 전해져서 3세대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이 그와 함께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순례자로 살면서 견고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약속의 새 땅에 거하였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도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지으실 미래의 영원한 천성을 바라며 기다렸습니다. 이 세상의 땅이 영원히 살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소망하였습니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을 믿고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1-2)고 한 것입니다. 이 하늘나라 소망이 있는 자들은 이 땅에서 잘 참아냅니다. 모세도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 11:27)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과 장막을 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약속을 믿는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소망이 확실하면 이 세상의 어떤 고생도 힘들지 않습니다. 천국 소망이 분명하면 고생하는 것이 길게 느껴져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분명하면 무슨 일을 만나도 이 세상 순례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믿는 소망이 분명하다면 얼마든지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한달 안에는 분명히 재림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한달 동안을 얼마나 경건하게 살겠습니까? 죄를 물리치고, 기도하면서, 전도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제 한달 후면 다 끝날 것이니 세상적인 것에 그렇게 몰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다면 그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실망이 되고 낙심이 되어서 더 이상 기다리지도 참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확하게 언제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참 믿음은 의심에 귀를 막는 것이며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믿고 내다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만나서 의기투합하여 만든 공동체가 아닙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자 만든 모임도 아니고, 정치를 하려고 모인 공동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불러주실 때 믿음으로 순종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입니다.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옛 땅을 떠난, 옛 삶을 청산한 우리들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젖어있던 구습으로부터의 떠남은 하나님께서 부르심의 시작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에 즐겼던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기적인 내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떠나 하나님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풍습과 유행, 수많은 우상을 영향을 받은 가치관에서 떠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믿기 전에 사랑했던 것들과 작별해야 하며, 우리가 붙들고 의지했던 것들 것 결별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괴롭고 아프겠지만 그런 경험을 통하여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그 때 아브라함처럼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은데 실제로 복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은 적습니다. 한때 부름을 받았지만 자신이 주저앉은 자리를 떠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떠나도록 명령을 받았건만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전능하셔도 옛 것을 버리지 못하는 자들을 억지로 끌어다가 축복의 자리에 앉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옛 것을 애착하여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떠나야 할 갈대아 우르를 용기를 내어 떠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어 축복의 통로로 삼고 싶어하는데, 하나님이 싫어하는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복이 주어지겠습니까? 결단하십시오.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떠나십시오. 버리십시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드십시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 나그네요, 이 세상의 순례자들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사랑하는 주님을 눈과 눈을 맞대고 영원히 함께 살 천국입니다. 이 소망을 확실히 붙드십시오. 이 나그네 길에서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나, 어떤 고난과 문제가 닥칠지 모르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가는 길이 좁고 힘들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가까이 품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참고 기다리시면서 어떻게 하면 더욱 하나님을 잘 알고, 더욱 가까이 하며, 기쁘게 할까 하는데 관심을 갖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이나 낮이나 주님 생각 잘 때나 깰 때 함께 하소서
지혜의 주여 말씀으로서 언제나 내 안에 계십소서
주는 내 아버지 나는 아들 주 안에 내가 늘 살고지고
세상의 영광 눈 앞에 없네 언제나 주님은 나의 기업
주님만 내 맘에 계시오니 영원한 주님 참 귀하여라
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 주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만유의 주여 소망되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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