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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2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85    
[8/21/05]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행 5:17-32)
우리들 주위에는 유난히도 눈치, 코치가 빠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눈치, 코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사람들의 눈치만 살피며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싫어지는 것이 저 뿐이겠습니까? 자기 손해를 전혀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 자기 희생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보면 그냥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저 뿐이겠습니까? 더 나아가 배알도 없는 사람처럼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유익하면 비굴하게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속이 뒤집어 지는 것이 저만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손해를 보아도 된다는 식으로 신념에 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좋아보이는 것이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정의를 소유하고 지어졌는데, 아마 하나님께서도 마냥 사랑을 받을 줄만 알지 줄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하여 기꺼이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종종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게 되면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순결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들, 교회는 사탄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축복이라고 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하였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 3:17),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20하),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벧전 4:14상)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 팔복 설교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0-12)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받는 핍박이 있습니까? 세상 앞에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눈치나 보며 신앙생활 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바로 믿고 있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저 중국 땅이나 북한의 성도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전혀 핍박이 없다고 한다면 한번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내가 바로 믿고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4장에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다가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협박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첫번째로 핍박을 받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그들의 협박을 무시하고 계속 복음을 전하여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믿고 그들을 따르자 마음에 시기가 일어나서 다시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17-18절). 사도들이 겪는 두번째의 핍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주의 천사가 옥문을 열고 다시 나오게 되고, 천사의 말대로 다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생명의 말씀, 복음을 전합니다(19-20절).
그런데 21절 하반절부터 27절에서 보다시피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인 공회를 열어 합법적으로 사도들을 처형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그래서 사람을 옥에 가서 데리고 오라고 하니, 재판을 받을 사도들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옥문이 든든히 잠겼었는데, 지키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저들은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24절)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친다고 보고합니다(25절). 그래서 다시 잡아 들여서 공회 앞에 심문을 받게 됩니다. 아마도 사도들은 주의 천사의 도움으로 옥에서 나오게 되었으므로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고, 지금 공회원들 앞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물리적인 핍박이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세밀한 간섭과 적절한 필요를 채우심을 믿으며 사도들은 낙심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핍박 앞에서도 전혀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28절에 나오는 공회의 심문을 통하여 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싫어하였는지 알게 됩니다. “가로되 우리가 이(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사도들이 주장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30절에도 보면 사도들이 그들을 향해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하였고, 앞선 2장 베드로의 설교에도 “이스라엘 온 집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행 2:36)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복음의 주제는, 사도들의 메시지 주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이 살아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믿으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 처형을 당한 모든 책임을 자신들에게 지우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자기들에게 돌리고자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저들이 얼마나 위선이며, 모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아시다시피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고 십자가에 처형하기를 거절하였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겁내 하면서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자기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하)고 하였을 때에,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 하면서 저들이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이야기들을 해 놓고는 지금 와서는 백성들의 눈치를 보면서 왜 그 피를 자기들에게 돌리냐고 하니 말입니다.
저들과 대조적으로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절)고 저들의 심문에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목숨을 잃는다 하여도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30-31절)!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똑똑히 전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 상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셔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이 되셨으며, 구세주(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복음의 내용입니다.
잠간 여기서 여러분에게 제가 묻겠습니다. 아직도 이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의 대가, 형벌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사도들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오늘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며,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에 자기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돌이켜 주님을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며, 영원히 삽니다. 너무 쉬워서 믿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 성경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즉 거저 주시는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할렐루야!

자 이렇게 복음을 선포한 사도들은 저들에게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32절) 하였습니다. 증인이 말하지 않는 것은 비굴한 것이요, 자기에게 손해가 나는 것이 두려워서 아니면 싫어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증인은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딥니다. 진실을, 진리를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구원 받은 믿음은 참된 증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32절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으로도 표현하였습니다. 여기 순종한다는 원어의 뜻은 주권자에게 복종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 받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그 주권에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 주께 순종하게 되어 있으며, 주께 순종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왕, 나의 주되시는 분을 확실히 믿으니 순종하고 따라가지요. 그러나 사람을 순종하는 경우는 사람을 믿고,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사람에게 순종하기 보다,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한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이 내주한다고 하십니다(롬 8:9; 고전 6:19-20; 12:13).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있기에 증인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말 사람보다 하나님에게 순종하십니까? 아니면 사람의 눈치나 살피며 비굴하게 사십니까? 핍박 때문에, 당장 겪는 어려움, 불편함, 경제적인 손해 혹은 다른 사람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이 싫어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까? 예수를 믿고 교회 다니는 것을, 사람들 많은 데서 식사 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에게 순종할 것입니까? 하나님에게 순종할 것입니까?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내가 잠간이라도 조금 더 편안하기를 원한다면, 이 세상에서 좀더 잘 살려는 욕심이 여러분을 주장한다면, 죽어도 손해보기는 싫다면, 희생은 어떤 모양도 원하지 않으신다면 그렇게 사람들의 눈치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사십시오.
그러나 구원의 감격을 잊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희생을 잊지 않는다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신다면 사람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탁하신 생명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원하는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하기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하시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무겁고 녹슨 감옥의 철문을 열어주셨듯이 우리들의 앞 길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온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고자 하는 결단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기회로 삼으실 것입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소신있게, 확신 속에서 담대히 용기를 내어 증인의 삶을 살며, 오히려 감사의 조건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날 우리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들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핍박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과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고 힘 내십시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다 보고 계시며, 오늘 본문의 사도들 뿐 아니라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잘 한다고 하면서 격려의 박수를 치며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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