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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34    
[11/6/05] 받은 은혜를 기억하라 3
받은 은혜를 기억하라 3 (민수기 6:22-27)
지난 부흥회 받은 은혜를 오래 잘 간직하기 위하여 두 번에 걸쳐서 회복의 은혜, 앙망의 은혜, 고난의 은혜, 감사의 은혜를 복습하였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교회의 은혜와 축복의 은혜를 다시 살펴보기 원합니다.
마음에는 사랑을, 입술에는 미소를, 손길에는 따뜻함을 가지고 사랑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영적인 몸인 교회가 우리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은혜가 넘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될까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은혜가 넘치면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내가 좋으면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요 3:39). 그러므로 또한 교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무엘상 22장 1-2절에,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 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니다가 아둘람 굴이라는 곳에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장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둘람 굴은 오늘날 교회라고 말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다윗이 장관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늘 우리 교회의 장관,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본문에서 참 교회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가정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절에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아둘람 굴에 모였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모였다는 것은 의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구성하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혈액형은 예수님의 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피로 맺어진 주 안에 한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정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
우리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교회가 천국의 모형이기에 돌아갈 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일하다가 우리 모두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거기 사랑하는 식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안 보면 보고 싶고, 생각나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이 아닙니까? 만나면 반갑고, 어려우면 도와주고 싶은 곳이 아닙니까?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랑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가정 공동체라는 말은 사랑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 10:12),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고 하였습니다. 입으로만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교회(요일 3:18), 가정 공동체입니다. 화목하여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고 하였습니다.
새 교회당을 주시기 전에 우리 모두가 한 가족처럼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둘째는, 피난처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들만 아니라 2절에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하였습니다. 환난을 당한 모든 자들이 와서 은혜를 받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또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고 하였습니다. 또한 빚진 자들이 와서 은혜를 받는 곳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들이 와서 은혜를 받고 부하게 됨을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하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고 하였습니다. 천에 하나 만의 하나 가난의 은사를 받은 분이 아니면, 간구해서 부하게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마 6:33).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원통한 자들도 와서 억울한 일을 해결 받는 곳이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어 아둘람의 뜻이 피난처이듯이 교회가 피난처 공동체요, 위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다윗과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함께한 자라는 말이 하나됨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도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11, 21) 하였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고 하였습니다. 지도자와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천국 가는 정거장이 되지 말고, 종착역이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 교회는 가정 공동체, 피난처 공동체, 하나되는 공동체이기를 축원합니다. 사랑 공동체, 위로 공동체, 하나로 뭉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이 짤짤, 은혜가 철철, 하나로 똘똘 뭉치는 교회!

그리고 마지막 집회에서 오늘 읽은 말씀 민수기 6:22-27로 “축복의 은혜” 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에게 참으로 충격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우선 우리가 주의 사랑을, 은혜를 누리라고 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하였듯이, 우리는 신령한 복을 이미 받았기에 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맛있는 짜장면을 사먹고 싶어도 뒷 주머니에 지갑이 있는 줄 모르고 돈이 없어서 침만 삼키고 있어서야 하겠느냐, 누리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는 범사가 잘되고 강건할 줄로 믿습니다(요삼 1:2). 이 땅에서 지옥같이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복을 받아 천국같이 살다가 천국 가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지옥이라 천국 같이 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정에도, 직장에서도, 사업체에서도, 교회에서도 천국 같이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축복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축복의 뜻은 빌 ‘축’, 복 ‘복’으로 복을 빌어주는 것이 축복이지 내가 나를 위해 복 빌어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축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 23절에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7절에 “축복할지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목사가 성도들을 축복할 때에 성도들이 복을 받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 책임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 달라고 기도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축복하지 않으면서 그냥 내 자신에게 복 달라고 해서 복 주시는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우상 종교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병 고쳐달라고,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도 그렇게 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기복신앙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다른 것은 우리는 우리 병을 고쳐달라고 하기 전에, 우리에게 복을 달라고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을 축복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중에 낫게 되고,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축복하고, 칭찬하고, 사랑하면 여러분 자신에게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교회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축복은 씨앗이고 복은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흥은 서로 축복할 때에 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109편 17절에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3:28), 또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잠 13:1)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말의 권세, 혀의 권세와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르치고 있습니다(약 3장). 그러므로 축복의 말을 하고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고 저주하고, 욕하고 살면 그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가 욕하더라도, 저주하더라도 축복해 주어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하였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니 우리는 다만 복을 빌어주면 됩니다(롬 12:19). 그러면 그 복이 우리에게 올 줄로 믿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것은 예수 믿기 전, 성령 받기 전에 해당되는 말이지, 이미 믿고 사는 우리가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축복해 주라는 것입니다. 시기 질투하지 말고 말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다는 말씀은 누차 반복하였습니다(갈 6:7). 정말 기도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과거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욕하고, 저주하고, 잘 안되기를 바라고 한 열매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축복해 주어야 하는지 축복의 내용에 대하여서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강을 주시기를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은혜를 충만하게 하시고, 그 마음에 평강을 허락해 달라고 빌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하나는 교회에서 축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을 위하여 축복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을 위하여 복을 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언약 공동체는 신약의 교회 공동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교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축복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축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가정이, 사업이 망하지 않으려면, 아니 잘 되려면 교회에서 축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축복하는 곳, 사랑하는 곳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시 118:26),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시 134:3)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축복하지 말고 하나님께 교회를 위하여, 그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며 축복해 주라는 것입니다. 역대하 30장 27절, 31장 8절, 10절!
내게 잘못하는 사람이라도, 나를 저주하고 욕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 복이 내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8)고 하였습니다.
또한 자손들을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0절에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부 잘못하고, 말 잘 듣지 않아도, 사고를 쳐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미안해서라도 잘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 뿐 아니라 우리의 영적 자녀들, 2세들에게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 성전을 짓는 것도 2세들, 3세들을 위하여 짓고, 원대한 계획도 세울 수 있기 바랍니다.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사들, Bryan 전도사님 내외분들을 축복해 줍시다. 격려해 주고, 칭찬해 줍시다. 그러면 우리가 복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은 교회의 은혜, 즉 교회는 가정 공동체, 즉 사랑 공동체이며, 피난처 공동체, 즉 위로 공동체, 그리고 하나로 뭉치는 공동체라야 은혜가 넘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축복의 은혜, 즉 내가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하나님께서 나를 복 주시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저주하고 욕하면 그것이 그대로 내게 돌아오는 것이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축복하고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우리를 욕하고 저주하는 자들까지도 축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교회에서 축복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서로 축복하는 교회로 세워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로 축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복의 기도를 해 줍시다. 서로 기도할 때마다 복을 빌어주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와 평강을 위하여 기도해 줍시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을, 자손들을 축복하십시다. 그들이 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땅에서도 천국 같이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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