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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4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71    
[12/18/05]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마 1:18-21)
우리는 또다시 성탄절을 맞습니다. 아마도 올해도 어김없이 한해 동안 우리 주위에 감사할 분들과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선물들을 준비하며 바쁘게 지내실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선물로 보내심을 감사하며, 함께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성탄의 의미를 오늘 다시 한번 되새기기 원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 즉 약혼을 하였는데, 결혼하여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가 임신을 했습니다(18절). 요셉이 이 사실을 알고 마리아를 사랑하기에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 율법에 의하면 결혼하기 전에 처녀가 임신을 하면 간음죄로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요셉의 꿈에 주의 천사가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네 아내 마리아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니 데려와서 같이 살라는 것입니다(20절). 그리고는 계시하기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21절)고 하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은 살기 위하여 태어나지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태어나셨습니다. 자기 백성, 즉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태어나셨습니다. 여러분! 복음,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복음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받았다는 것이고, 복음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경험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죄 사함, 죄 용서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용서의 은혜를 체험해 보셨습니까? 작은 잘못을 범했다가도 용서를 받으면 마음에 안도와 푸근함이 넘치는데, 죽을 죄에서 그 죄 사함을 받았을 때에 안도감을 주며,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까? 평안하며, 기쁘고 행복하게 합니까? 저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장 큰 은혜가 이 용서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하는 은혜와 함께 다른 모든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 103:2-3) 하였습니다. 비록 죄의 결과는 당한다 하더라도, 죄 사함을 받은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여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많은 신자들이 죄 사함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용서 받은 감격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계속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고, 과거에 지은 죄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 때문에 죽음의 두려움에 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들에게 불행의 원인이 되는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을 흔드는 사망의 세력, 사탄 마귀를 없이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사망과 마귀는 죄와 함께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반드시 누군가가 대신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해결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임으로 그 삯을 치르려면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 죄 값을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만이 자격이 있습니다. 죄인은 죄 값을 치를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에 의하여 탄생하신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몸으로 말입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들처럼 죄인들이 관계를 맺어 아이가 탄생했다면 그도 타락한 죄인인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죄 값을 치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예수 그리스도)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고 말합니다.
그래서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았습니다. 대신 죽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진노,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진 자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하였고,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 그러면 그냥 곱게, 자연스럽게 돌아가시지 왜 꼭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에 성경은 답합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 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어기실 수 없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 용서함을 얻기 위하여 어린 양과 같은 희생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갑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그 희생 제물에게 전가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 사람 대신 어린 양이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립니다. 그 때 그 피가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줍니다. 물론 한시적입니다. 일시적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지만 죄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죄를 영원히 없이 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표였던, 구약 제사 제도의 한계였습니다.
그것이 예수님 스스로 친히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죄를 없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용서하고 덮을 뿐 아니라, 우리 죄를 완전히 없애 줍니다. 지워 주십니다.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짓고 있는 죄, 앞으로 지을 죄까지 모두 십자가에서 처리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 십자가 죄 사함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에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을 입은 사람만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용서의 은혜를, 이 선물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만이 누리는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그 피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없이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마시는 신령한 음료입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 참여하게 될 성찬입니다. 성찬식에서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곧 예수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의 죄가 없어진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소식, 복음인 것입니다. 이제 믿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사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에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잠시 잠자는 것입니다(고전 15:18-20).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놀라운 용서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이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오직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주장할 뿐입니다. 더 이상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법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고 하였고, 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놀라운 용서의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베풀어 주신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더 큰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용서를 받아들이고 누려야 합니다. 죄 사함을, 용서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용서의 말씀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하나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지난 주일 설교에서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자기를 그렇게 팔아 넘긴 형제들을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셉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이었다고 믿습니다. 요셉이라고 죄인이 아니었습니까? 그도 죄인이었는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죄 용서함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용서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용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자신이 용서 받지 못한 사람은 그 마음이 악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수심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미 용서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상처를 주고, 우리 인생을 비참하게 만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처럼 그 죄를 아주 잊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하였으며, 또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밞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 하였습니다.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히 10:17-18).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받은 자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최고의 섬김입니다. 상대방은 물론 자신을 자유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용서할 때에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어쩌면 이번 성탄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이 여러분들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며, 화목하게 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용서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용서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큰 죄입니다.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여년 전에 이 땅에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우리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서 였습니다. 부디 이 죄 사함의 은혜, 용서의 은혜를 받고 누리십시오. 사람들은 우리의 죄를 기억할른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은 죄 값에 대한 응당한 벌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기억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자백하기만 하면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약속하셨습니다. 단순히 믿으시고 용서 받았음을 누리십시오. 예수님 안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사망도, 심판도, 저주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유함, 영생, 평안, 기쁨이 있을 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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