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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9-15 (금) 01:0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602    
[9/10/06]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막겠느냐
이 세상에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일을 막겠습니까? 때때로 인간들이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어리석게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이 망하고 맙니다. 그 예가 성경 역사에, 기독교 역사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오랜 노예생활에서 자유하게 하려고 하실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마음이 강퍅하여 고집을 피우며 거역하다가 끝내 많은 애굽 백성들이 10가지 재앙으로 피해를 입거나 죽음을 당하게 되고 자기 아들까지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물론 홍해 바다에 많은 군사들이 수장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기독교 역사에도 일제 시대 일본 사람들과 6. 25 동란으로 인한 북한 공산군들이 믿는 신자들을 많이 핍박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은 오히려 그러한 핍박으로 인해 더욱 부흥하게 하였습니다. 아무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사실 세 번째로 반복되는 사건에 대한 설명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만 말씀하시더라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만약 두 번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정말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일한 말씀을 세 번 하시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온 마음을 다하여, 뜻과 정성을 다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말씀을 청종하여야 합니다. 반드시 듣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교훈이 하나님께서 세 번째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가이사랴에서 일어난 로마군대 백부장인 이방인 회심자 고넬료의 사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 사도들과 형제들은 그 위대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베드로를 정면으로 힐난하는 것이었습니다(1-2절). 여기 ‘힐난하여’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의 뜻은 단순한 질책이나 이의의 제기가 아니라 적대감을 가지고 정죄의 의도로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혀 비난 받을 일을 하지 않은 베드로가 힐난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이유는 3절에 있는대로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느냐는 것도 아니고, 왜 이방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느냐도 아닙니다. 왜 우리 할례자들의 전통과 관습을 깨고 무할례자의 집에 가서 함께 먹었느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것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그들에게 전도의 큰 장애물이 다름아닌 사명을 받은 바로 그 증인들, 자신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전통과 관습, 고정관념과 자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포기할 수 없어서 근본적인 하나님 나라 확장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 또 교회에서 자기 나름대로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열심은 좋은데 비성경적인 사고방식, 전통과 관습,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망치는 우리는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형제들에게 강한 비판을 받는 베드로가 아마 예전의 베드로 같았으면 불 같은 성질을 내면서 자신을 변호하며 야단하였을 것입니다. ‘야, 내가 누구냐? 예수님의 수석 제자가 아니냐.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셔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왔는데 왜 이렇게 무례하게 구냐. 싫으면 너희들이 교회를 나가면 될 것 아니냐!’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변화 받은 베드로는 이 일을 기회로 조용히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그리고 지혜롭게 차례로 설명합니다(4절 이하).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성도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느냐’ 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주의 뜻으로 인도하시며, 내가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베드로의 자세한 설명이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주의 뜻으로 인도하였는가’ 알려 줍니다.
첫째로, 그가 기도하는 중이었다고 합니다(5절상).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 간에 환상을 보니”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냥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가 되어서 욥바에 갔다가’라고 시작하지 않고, 그 형제들에게 다른 이야기를 먼저 말하기 전에 자신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즉 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중반의 유명한 신학자요 주석가인 Donald Gray Barnhouse 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가’라는 설교에서, 세 가지 길이 있는데 우리가 그 세 길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에 의지적으로 그 뜻을 따르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과 어긋나는 법이 없다. 셋째,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매일, 매시간마다 구하여야 한다. 하나님과 눈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편 32편 8절,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라는 말씀을 인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기도하여야 합니다. 매순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환상, 즉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5절하-10절). 기도할 때에 환상을 보고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세 번 들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3년간 주님을 따라다닌 제자로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사도였습니다. 초대교회 시절까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기 전에는 종종 선지자나 사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직접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받은 계시, 혹은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환상 중에 자신을 직접 나타내시면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계시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Barnhouse 가 말했듯이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면 말씀을 자주 대하여야 합니다.
셋째로, 계시의 말씀을 받은 후 상황, 환경입니다(11절).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깨자 마자,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이 피장의 집 문 밖에서 두드립니다.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계시의 말씀을 받기 전에 그들이 와서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면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서 고넬료의 집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을 집 안으로 영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방인들은 베드로가 환상을 본 후 즉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그제야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어 자신을 인도하시는 줄 여겼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상황이 주님의 뜻을 확인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먼저 기도했고, 계시의 말씀을 받았고, 상황이 뒷받침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성도들이 상황이나 환경을 먼저 생각하면서 거기에 맞추어 기도하며,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 상황이나 환경은 우리를 잘못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이 먼저 입니다. 그 후에 상황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으로 가기를 결정하였을 때에 또한 성령이 그에게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12절에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확신을 성령께서 심어주십시다.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확신을 옆에서 지켜본 증인 여섯 형제들도 있었습니다. 또 고넬료에게 나타난 천사의 말씀도 일치하는 것을 봅니다(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할 때에 주위에 사람들도 인정하여야, 동의하여야 합니다. 특히 신앙이 성숙한 분들과 상의하여 그들도 그 뜻에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의 복음을 듣고, 고넬료의 집에 모였던 친척과 친지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령이 임하였습니다(15절). 그리고 그 때 베드로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시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다고 합니다(16절). 즉 베드로가 설명하고 있는 이 모든 이야기의 진행은 ‘누가 이 사건을 일으켰느냐’, 그리고 ‘나의 확신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17절)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지혜롭고 자세한 설명을 다 들은 그 형제들은 잠잠해 졌습니다(18절상). 즉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어떤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이 그들에게도 은혜가 되고 기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진리를 선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18절하)!
정말 우리 성도들이 진리에 대하여 이렇게 지혜롭고 열린 마음으로 받는다면 얼마나 은혜가 될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일을 인정하고 찬양을 드리며 영광을 돌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안타까운 것은 이 사도들과 형제들이 받은 은혜를 오래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15장에 가면 다시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참으로 굳어진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이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꾸어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면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일임을 분명히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거역하며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 성령 세례를 받기 원합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나 전도의 대상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한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벌써 3주째 비슷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 누가로 하여금 사도행전을 기록하게 하시면서 똑 같은 사건을 세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입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아직 모르지만 가르쳐 주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따르겠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 뜻을 보여주셔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첫째, 기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눈을 맞추어야 합니다. 둘째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읽어야 합니다.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그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 때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과 맞아야 합니다. 주위에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과 상담하였을 때에 그들이 동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물론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일이라면 어려움을 잘 극복하여 결국 결정한 일을 이루시게 하십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막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제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비성경적인 생각을 바꾸십시오. 고정관념을 버리십시오. 쓸데없는 전통과 관습,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열린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시고 이루어 가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런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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