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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5-28 (월) 23:4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14    
[5/27/07] 자녀 양육
자녀 양육(출 10:1-20)
430년 동안을 애굽에서 노예로 종살이 하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는 애굽 왕 바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 앞에서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비롯하여, 온 나라에 나일 강물이, 그 하숫가가 피로 변하는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떼 재앙, 가축 괴질 재앙, 사람과 짐승에 독종이 임하는 재앙, 그리고 우박과 불 재앙에 이어 여덟번째 재앙으로 내린 것이 오늘 본문의 메뚜기 재앙입니다.
이 여덟번째 재앙 역시 바로의 완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으로 시작됩니다(1절).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바로와 그 신하의 마음을 완강케" 하였는데, 이처럼 바로를 계속 완악하게 하시는 이유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표징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이 메뚜기 재앙의 경고를 들은 바로는 모세에게 애굽을 떠나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되 자녀들은 두고 가라고 협상을 벌립니다(8-11절). 결국 여덟번째 재앙의 핵심은 자녀 문제, 즉 이스라엘 자녀들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녀들을 양육할 때, 육신의 자녀 뿐만 아니라, 영적인 자녀들까지 어떤 각오로 양육 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하여 배우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덟번째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자녀들을 하나님 스스로 차지할 의도를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그 자녀들 만큼은 보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영적 싸움은 자녀 양육에까지 포함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만약 성도들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지 않는 사고 방식에 동의하면 사탄에게 지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자녀 양육을 내어 주는 것이 됩니다.

바로 왕은 이 세상 권세를 잠시 쥐고 있는 사탄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사명은 단지 바로를 혼내 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재앙을 내려도 바로는 잠시 흔들릴 뿐,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완악해지기만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 같으면 지쳐 버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불신자와의 싸움에는 이런 싸움이 많습니다. 아무리 말을 하고 가르쳐 주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자기 생각은 죽어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칠 수 밖에요. 그럴 때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로와 그 신하의 마음이 완악한 것은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둔 것이니 낙심하면 안돼"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퍅한대로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으니 네가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 엄청난 10가지 재앙들을 한꺼번에 내리셨다면, 진노를 한꺼번에 퍼부으셨다면 그들은 감히 하나님을 대항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씩, 조금씩 징계하였더니, 조금씩 교만이 더 쌓이게 되어 10번째 재앙이 오기 전까지는 잠시 힘들어 할 뿐 그리 큰 충격도 받지 않음을 봅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강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겁을 내다가, 한 두번 불순종을 하다 보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무리 강도가 강한 매를 맞아도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죽어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영적으로 살아있는 성도들은 늘 작은 일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상처 받기 쉬운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누구 말 한마디에도 쓰러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늘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위로와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 오늘 본문의 핵심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스라엘 자녀 양육권을 누가 소유하느냐는 것입니다. 누구 방식으로 키우느냐는 것입니다. 2절에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신즉,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을 조금씩 더 완악하게 하셔서 계속 재앙을 받게 하시는 까닭이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처럼 이미 나이가 많이 든 어른들은 사고 방식이나 오랜 습관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큰 능력을 보고도 잘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2세대 아이들만큼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로 키우겠다는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거절했습니다.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 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하게 함과 일반이니라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10절)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서로 싸워서 이기면 반드시 그 나라의 신상부터 빼앗았습니다. 그 이유는 신상을 빼앗으면 어느 나라든지 힘을 쓰지 못하고 다시는 반역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신상이 없는데 어떻게 잡아 둡니까? 애굽인들은 그 자녀들이 신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데 따라가지 못하게 함으로 여호와의 신을 계속 붙들어 두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 자녀들이 하나님의 신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이 중요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일어난 치열한 전쟁이 바로 우리들의 자녀를 누가 어떤 식으로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2세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후세에 대한 바른 신앙교육이 없는 가정은, 교회는 이미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자녀들이나 예수를 믿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무엇에 대하여 증인이 될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그 신앙은 헛것입니다. 가짜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그 훌륭한 믿음의 증인들이 모두 후손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 어떤 사람은 예배를 통하여, 어떤 사람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통하여,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세상의 영광을 버림을 통하여 모두가 좁은 그 길을 갔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자기 복이나 받으려 하고, 자기 마음이나 위로를 받으려 하지, 지금 자기가 행하고 있는 비성경적인 사고 방식이나 행위가 그 후손들을, 후배들을 얼마나 믿음에서 떠나게 할 것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거 할 수 있는 부모, 신앙의 선배라면 얼마나 존경스러운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런 신앙적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이 세상적으로만 뒤지지 않고 잘되게 하려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부모라면 참된 성도라고 할 수 없지요. 결국 부모의 신앙이 자식들에게 그대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도 신앙적 싸움, 영적 전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언약의 자손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어떤 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달라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안심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러니 그 자손들이 그 정도 밖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전혀 마음에도 없는데 어쩔 수 없어서 한번 참석하는 예배, 거기서 무슨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우습게 알겠습니까? 왜 모세와 아론처럼 온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면서 날아드는 메뚜기 떼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살아계신 표징를 증거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야, 여덟번째 재앙은 무시무시한 메뚜기 떼 재앙이었어. 온 하늘을 메뚜기로 덮었는데,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에는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 그런데 하나님이 이 재앙을 내리기 전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아니? 바로 너희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고 이 재앙을 내리신다고 하셨어. 이제 곧 바로와 애굽은 망할 것이야. 누가 감히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대적하겠니!"
확실한 신앙교육이 아닙니까? 정말 우리들의 자녀를 위해서라도, 우리를 바라보는 젊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신앙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이 메뚜기 재앙은 일곱번째 우박과 불 재앙에서 남은 나머지 식물을 모조리 없애는 재앙입니다(출 9:32). 지금까지 있었던 재앙의 마무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자기들의 마지막 재산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이제 알 거지가 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고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7절) 합니다. 최초로 그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내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애굽은 이제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더 이상 잡아두는 것은 그들의 올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붙들고 있는 한 재앙이 그칠 사이가 없으니까 이제라도 그들을 보내서 마지막 남아 있는 곡식이라도 건지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존심이 강하여 자기들끼리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제사를 요구하였다면 이들은 제사를 수백 번이라도 더 드렸을 것입니다. 제사드리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겸손을 요구하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도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은 예배당에 모셔 놓고 예배를 드린 후 세상에 나아가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것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하며,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교만했던 바로 왕과 애굽인들은 이제 마지막 남은 재산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 재산을 다 잃어버릴 것만을 두려워했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던 결과 벌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애굽 땅 위에 지팡이를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온 낮과 밤에 동풍을 일으키시고 메뚜기 떼가 온 땅을 뒤덮기 시작합니다(13절). 그 피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전무후무한 재해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람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동풍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곡식들을 말려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메뚜기 떼를 몰고 오셨습니다. 철저하게 애굽의 남은 것들을 없애 버리셨습니다.
바로는 이 엄청난 재해를 보고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 전에 재앙 당할 때처럼 자기가 잘못했다고 빌면서 이번만 용서하여 이 죽음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17절).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서풍을 불게 하셔서 모든 메뚜기 떼를 홍해 바다에 몰아 넣으시고 한 마리도 남지 않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믿으십니까? 만약 우리가 메뚜기 떼를 없애려고 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끝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능력있게 사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시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요일 5:14). 그러므로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기도하며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의 의하여 모세처럼 사용되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바로는 메뚜기 떼가 지나가고 나자 다시 마음이 바뀌어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20절). 그래서 결국 아홉번째 재앙인 흑암 재앙을 당한 후에야 자손을 함께 보내려고 합니다. 이만큼 우리의 자녀들을 사탄의 손에서 빼앗아 하나님의 손에서 키우기가 어렵습니다. 사탄 마귀는 그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정말 단단한 각오로 싸워 절대적으로 신앙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면 살수록 그 책임을 잘 감당하셔야 합니다. 자녀들을, 후배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며, 주의 말씀으로 늘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지혜로 양육해야 합니다. 때로는 상으로, 때로는 징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부부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부부관계는 어떠합니까? 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서 삽니까? 그렇다면 참 불행입니다. 서로 노력하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부관계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성숙하여지며 믿음의 깊이도 깊어질 뿐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남을, 사랑을 가꾸어 가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볼 때에 부모들에 대한 100% 신뢰를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녀들을 불안하게 합니까? 부모들이 싸우고 사이가 좋지 않게 되면 자녀들이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 아십니까?
부모로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로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보여야 합니다. 불평 대신 감사를 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서로 존중하며 대화 속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 후배들이 안심하고 교회 생활을 하며, 배우게 됩니다. 그렇지 못하고 서로 싸우고 나뉘고 하면 오히려 어른들을 불신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며 방황하게 됩니다. 그 책임은 절대적으로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정말 부모로서, 신앙의 선배로서 우리 자녀들에게, 한 가족이 되어 바라보는 젊은 후배들에게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전능하신 능력이 있으심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심을 보여주는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축복을 간구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은혜가 우리 경향가든교회 모든 성도들 가정에, 우리 교회 안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 후배들의 양육권을 하나님께 맡기며 위하여 기도해 주고, 돌보고, 사랑해 주어서 훗날 우리 교회와, 세계를 짊어지고 나갈 영적 지도자들로 키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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