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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7-10 (화) 03:3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33    
[7/8/07] 구원받을만한 믿음
구원받을만한 믿음 (사도행전 14:8-10)
이 세상살이에는 믿음의 종류가 많습니다. 사실 한 사람도 어떤 믿음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건물에 들어가도 그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믿고 들어가지요. Chesapeake Bay Bridge 와 같은 긴 다리를 지나갈 때에 무사하게 잘 건너갈 줄 믿고 지나지, 그렇지 않으면 지나 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차를 타고 어디를 가도 그 차가 중간에 서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고 믿고 가지요.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도 마찬가지 입니다. 몸이 아파서 의사에게 가면 의사가 진단하여 처방약을 주면 낳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의사에게 가지요. 또 직장에서 일을 하면 Pay 를 받을 것이라고 믿고 일을 하지요. 사업을 시작하면 잘 될 줄 믿고 많은 돈을 투자하여 시작하지요. 결혼한 부부는 서로를 믿고 살게 되어 있지요. 부부가 서로를 전혀 믿지 않는다면 부부가 아니지요. 그러므로 세상 살이라고 하는 것은 정도 차이는 있어도 믿음이라는 기초 위에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종류의 믿음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이 구원받을만한 믿음입니까? 제가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이지만, 교회를 다니며 입으로 믿는다고 하는 분들 가운데서 어떤 분들은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때때로 의심이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이해한다고 해서, 공감한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 말씀을 사실이라고 인정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천국을 인정한다고 하고서는, 나중에 죽어 가봐야 확실하게 알지 하는 사람도 있다라는 말입니다. 매주일 교회에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 구원받는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교회에 얼마 동안 다니다가 흥미가 생기고 좋아져서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신의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잘 듣고 받아들이며,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을 믿습니다. 매주일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려고도 합니다. 제 이야기는 참 믿음이 아니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구원받을만한 믿음을 가지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루스드라 라는 곳에 사는 한 앉은뱅이 장애인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다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것처럼 제 1차 전도여행 중에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바나바는 능욕하며 돌로 치려는 무리들을 피하여 루스드라 라는 곳에 이르러 복음을 전합니다. 이 곳은 유대인 회당도 전혀 없는 이방인들로만 가득찬 도시로서, 유대교에 대하여도, 헬라 철학에 대하여도 잘 모르는 사람들로서 본질적으로 로마 군대의 퇴역 군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8절에 의하면 이 장애인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어 평생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부모의 심정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장애인은 늘 남에게 업혀 다니거나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 밖에는 하는 것이 없어서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되는 사람이었으니 얼마나 자신을 미워하였겠습니까?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로 인하여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저 땅에 기어 다니던지, 하염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처지인 것입니다. 그에게 생명은 있으나 그 생명을 누릴 자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 좌절과 불만, 원망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 육체적으로는 장애인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저 땅에 붙어서 땅에 속한 것에만 관심이 있어서 하늘에 속한 것이나, 영적인 일, 영원한 것에는 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그만 일에도 좌절과 불만, 원망으로 살지요. 허무주의적이며, 비관적으로 살지요. 자기 마음대로 살지요. 죄를 지어도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삽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지요. 생명은 있으나 그 생명을 누리고 살 줄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복음을 듣고 믿기 전 앉은뱅이 장애인과 별 다를 것이 없지요.

그런데, 이 앉은뱅이 장애인에게 엄청난 기회가 왔습니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로 갈 수 없는 그에게 바울이 찾아와 복음을 전합니다(9절). 사실 바울은 이고니온에서 핍박이 심하여 도망하여 쫓겨온 곳이 루스드라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연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 장애인에게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주어집니다.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할 마음이 일어나고, 그 말씀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 때에 마음을 활짝 열고 성령의 역사에 반응을 하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놀라운 축복을 받는 기회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고 하였고,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하)고 하였습니다. 즉, 여러분에게 구원받을만한 때가 있고, 은혜받을만한 때가 있다라는 말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본문의 앉은뱅이에게 구원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에 그는 놓치지 않고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9절에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할 때에 사용된 단어는 미완료 동사로서, 헬라어에서 미완료는 과거진행형을 의미합니다. 즉 ‘계속적으로 듣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외치는 복음을 한번 듣고 믿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는 꾸준히 계속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어디서 오는 가,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꾸준히 들을 때에 구원받을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내 인간적인 지식으로 따지지 않고, 의심없이 그대로 믿을 때에 구원받을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 앉은뱅이에게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하였습니다. 문맥에 의하면 이 장애인이 가진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줄 수 있는 전능하신 분으로 믿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설명을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복음에 영적 권위를 부여하고, 참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해 주기 위하여 바울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을 주셨는데, 바울이 이 장애인의 믿음을 꿰뚫어 보니, 참 믿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의심 없이 평생 써 보지 못한 그 발로 일어서라고 했더니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고, 또 그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구원받을만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람들의 말이라면 생각하고 분별하여 들어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아멘!’ 하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인간의 생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해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심각하고 오래된 마음의 상처라도 주님께서는 깨끗하게 치유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 망가진 것 같은 인생이라도 성령께서 회복시키시고 멋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실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바울은 앉은뱅이의 외적인 모습보다 그의 속 마음을 들여다본 것입니다. 사람을 그가 입은 것, 가진 것, 아는 것, 생긴 것 등의 외모로 보지 않고, 속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바울은 그의 믿음이 진실한 것이며 구원받을만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땅에 속한 것만을 바라보고 땅에 붙어 기어 살던 인생이, 이제는 하늘을 보고 위의 것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이 믿음은 인간을 장애인으로 앉은 상태로 얽어 메고 있는 모든 죄악의 쇠사슬을 끊는 능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반신반의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정말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실까?’ 하면서 온전히 믿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온전히 믿다가 당한 경우가 많거든요. 위정자를, 친구를, 남편이나 아내를, 자식을, 그 외에 이 세상 것들을 믿다가 발 등이 찍힌 경우가 많으니까 우리 하나님도, 예수님도 온전히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기 전에는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를 실망시키실 분이 절대 아닙니다. 온전히 믿을만한 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수천 년의 역사 속에 수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오늘도 믿고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받을만한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합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죄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였음을 조금도 의심없이 믿습니까?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나중에 부활할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참 믿음을 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였습니다. 입으로만 주여라고 외치고, 신자라고 한다고 해서 다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약 2:17, 26)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에, 계속 들을 때에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잘 듣습니까? 얼마나 계속, 자주 듣습니까? 조금도 의심없이 그대로 받고 순종하려고 힘쓰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우리 인간은 모두 장애인입니다. 죄를 갖고 태어나고, 죄로 말미암아 삐뚤어진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행하고 살게 되어 있는 장애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 장애를 고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구원받을만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주로 영접하고 의지하고 살 때에 죄 문제가 해결되고, 수많은 고통과 가슴 아픈 문제들이 놀랍게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장애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믿음이 실제적인 수평적 인간 관계 속에서 증명되어 깨어진 관계들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구원받을만한 믿음이라면 당연히 그런 경험을 하셨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람과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큰 나무를 뿌리채 뽑을 수도 있고, 믿음은 향기와 같아서 귀에 들리지 않지만 온 방안을 향기롭게 하며, 믿음은 햇빛과 같아서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차디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믿음은 사랑과 같아서 소리 없이 병든 마음을 치료해 주며, 믿음은 생명과 같아서 우리를 살게 하고, 영원으로 인도하는 다리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실제적인 믿음,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믿음, 행동에서 보여지는 믿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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