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21,542
오늘방문 : 4562
어제방문 : 2757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8-04 (토) 00:2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55    
[7/29/07]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 (사도행전 14:19-28)
이 세상에서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시간이 오기 전에는 반드시 고난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고난을 거치지 않은 영예나 성공은 아무도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엄청난 부자라서 자식이 재산을 물려받거나 혹은 우연히 복권에 당첨되어 부자로 산다거나, 줄을 잘 타서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을 누가 존경하고 받들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고생 끝에 성공하거나 영화로운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위하여 고생한 사람들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크게 영화롭게 하십니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평범하게 30년을 사시다가 마지막 3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실 때에 정말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큰 고통을 겪으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순종하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자신의 우편에 앉히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권세와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여행이 마무리되는 장면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바와 같이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기적을 베푸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신들인 쓰스(Zeus)와 허메(Hermes)인 줄 알고 제사를 드리려고 하자, 너무 놀라서 그들을 애써 말리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14:11-18). 이 일 후에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쫓아와 무리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치게 됩니다(19절). 아마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사도들이 신들이 아니라 오히려 사기꾼들이라고 변덕스러운 무리들을 설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돌팔매질을 심하게 하였으면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다 내쳤겠습니까? 이 사건은 후에 바울이 그의 고난을 회상하면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분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고후 11:23하-25)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죽은 줄 알고 시체를 성 밖에 내다 버렸는데 제자들이 보는 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도로 성으로 들어가 그 다음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갔다고 합니다(20절). 여기 ‘일어나’라고 사용한 단어는 부활의 능력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죽음 일보직전까지 가도록 돌팔매질을 당하여 시체와도 다름이 없었던 바울을 소생시키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바나바를 찾아 함께 더베로 가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난 가운데 삶의 목적이 분명했기에 앞만 보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면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양육하여 제자를 삼는 사역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지상 대 사명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파송한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다시 돌아오는데, 더베에서 다소로 거쳐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택하지 않고, 남부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을 돌아보기를 원하여 빙 돌아갔습니다. 아마 고난을 받고 있을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개척했던 연약한 교회들을 말씀으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22절) 말입니다. 제자들이 어떠한 고난에도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여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굳은 사람들이 되라고, 그리고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 하나님 아버지 안에, 주님 믿음 안에 거하면서 의지하고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이 땅에서 많은 환란을 겪을 것이니 당연히 여기고 오히려 기쁘게 여기라고 권하였습니다.
또한 각 교회들마다 영적지도자인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기도하며 세우고 교회를 맡기며, 주께서 지켜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23절).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제자를 삼고, 지도자로 세워서 사명을 감당하게 한 것입니다. 그들이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목회(ministry)를 함께 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양하는 바가 아닙니까?
그리고는 비시디아를 거쳐 밤빌리아, 버가에 이르러 또 복음을 전하고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24-26절). 그리하여 모교회인 안디옥교회에서 제1차 전도여행에 대한 선교보고를 하고 안식년을 맞는 것처럼 쉬면서 제자들과 오래 있었다고 합니다(27-28절). 인상 깊은 것은 선교보고의 내용이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여러 열매를 맺은 것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마음 문을 여셔서 복음이 전파된 것을 보고하였습니다(27절하). 남들이 못하는 일을 자신이 했다고 떠들어 대며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 하거나, 선교헌금을 많이 모으기 위하여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어떻게 이방사람들 조차 믿게 되었는지 보고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우리가 은혜 받을 것이 있습니다. 첫째, 돌에 맞아 거의 죽음의 문턱에 있던 바울을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입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째 다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찾아와 일곱번을 넘어진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죽을 정도로 돌팔매질을 해서 성 밖에 내다 버렸을 때에는 아마 이제는 다시 못 일어나겠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나 그 다음날 성으로 다시 돌아가 제자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체험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능력입니다. 어떤 고난, 환란에도 다시 일어서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목적을 두고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목표가 흔들리지 않아야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환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목적이 뚜렷하여 우리의 모든 관심이 집중될 때에 때로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환란을 당하며, 병들기도 하고, 매 맞고, 굴욕을 당하기도 하고, 미움을 받으며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 하여도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믿음이라면 무슨 일을 당하여도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없기에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바울은 이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이 고난과 핍박을 받던 지역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소망이 확실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사는 목적이 하나님 나라이기를 바랍니다. 주님 만날 그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적인 탈곡기를 거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도 말하고 있지만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가 예수를 바로 믿으면 고난을, 환란을 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란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데살후 1:4)고 하였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고 하였습니다. 아마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디모데에게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였습니다. 여기 고난, 혹은 환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추수할 때에 알곡에서 겨를 분리시키는 고대 탈곡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영적 탈곡기를 거쳐야 하는데, 바로 고난, 환란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참 믿음과 거짓믿음을 구별해 내시기 위하여 고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 알곡은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을 잘 감당하지만, 그렇지 않고 짐짓 믿음이 있는 것 같으나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이 올 때 피하거나 도망가는 사람은 겨, 가라지라는 말입니다.
물론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살 때에 당하는 고난, 환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가 죄를 짓거나, 잘못해서 당하는 아픔, 어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민 와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고생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믿고 살면서, 믿음을 지키고 살려고 하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면서,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섬기면서 당하는 고난을 뜻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들고 영적 탈곡기를 잘 거치는 알곡들 이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우리의 모든 삶은 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바울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사신다면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결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고통과 환란의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늘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일을 감당했다고 하였습니다. 아니 내가 약해질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를 강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하여 아주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힘 주셔서 하신 줄 알고 나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참 믿음이 있으십니까? 정말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그렇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오늘도 주(主, Lord)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우리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믿으십니까? 정말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 그 나라의 부흥에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참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 문을 열고 진심으로 죄인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모셔 들이기 바랍니다.

참 믿음을 가지셔서 오늘도 주를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시는 여러분들! 힘드시지요. 고난이 있지요. 어쩌면 앞으로도 더 큰 고난, 환란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 때문에 우리가 받는 고난은 정말 의미있는 고난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고 있는 고난이요, 앞으로 휘황찬란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 환란의 끝은 찬란한 빛, 그렇게도 그리던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고난을 이기시고 일어 서십시오. 하나님 나라 소망을 더욱 확실하게 붙잡고 견디십시오. 영적 탈곡기를 잘 통과하십시오. 그리고는 모든 이김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십시오. 영광의 날이 다가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정말 여러분들이 주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 위하여 세상에서도 열심히 살고,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여러 모양의 환란을 당하는 것은 바로 그 때를 위함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찬송시가 떠오릅니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연약한 후에 강건하며 애통한 후에 위로 받고 눈물 난 후에 웃음 있고 씨 뿌린 후에 추수하네/ 괴로운 후에 평안하며 슬퍼한 후에 기쁨 있고 멀어진 후에 가까우며 고독한 후에 친구 있네/ 고통한 후에 기쁨 있고 십자가 후에 면류관과 숨이 진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는 진리로다.
그러므로 먼저 앞서 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조금만 참고 더 인내하여 목적지까지 잘 달려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때에 주님의 위로와 상급이 크실 줄 믿습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63 주일설교 [3/18/07] 우리가 믿는 것 2 한 태일 목사 2007-03-19 2545
1262 주일설교 [4/30/06] 평신도 전도자 빌립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44
1261 주일설교 [6/12/05] 이 사람들을 어찌할꼬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44
1260 주일설교 [2/26/06] 결단의 시간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43
1259 주일설교 [10/14/07] 신령한 축복 한 태일 목사 2007-10-21 2542
1258 주일설교 [8/20/06] 준비된 사람 고넬료 [1] 한 태일 목사 2006-08-22 2542
1257 주일설교 [11/6/05] 받은 은혜를 기억하라 3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35
1256 주일설교 [6/3/07]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한 태일 목사 2007-06-05 2532
1255 주일설교 [5/22/05] 어떤 신자입니까? 한 태일 목사 2005-05-24 2528
1254 주일설교 [11/12/06] 선교하는 교회 한 태일 목사 2006-11-15 2527
1253 주일설교 [4/2/06]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21
1252 주일설교 [3/30/09] 서원을 지킴으로 한 태일 목사 2008-03-31 2517
1251 주일설교 [5/27/07] 자녀 양육 한 태일 목사 2007-05-28 2514
1250 주일설교 [4/8/07] 우리가 믿는 것 5 한 태일 목사 2007-04-16 2513
1249 주일설교 [8/2/06]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12
1248 주일설교 [2/5/06] 우리 하나님은 (6)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11
1234567891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