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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10-21 (일) 00:0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41    
[10/14/07] 신령한 축복
신령한 축복 (사도행전 16:11-15)
어떤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는 사람입니까? 여러분 생각에 누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눈에 보이는 좋은 차, 좋은 집에서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는 사람입니까? 비록 좋은 집, 좋은 차는 없어도, 비록 좀 가난하게 살아도 늘 평안과 기쁨으로 사는 사람입니까? 아무리 건강하고, 부자로 살면서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즐기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산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안이 없고, 늘 걱정과 염려 가운데 살면서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절대로 축복 받은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주시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면서, 다가오는 죽음조차도 조금도 두렵지 않고 뵙고 싶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로 신령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신령한 축복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여인의 삶을 살펴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사도 바울과 실라, 디모데, 누가는 2차 전도여행 중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마게도니아로 선교지를 바꾸어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와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에 이르게 됩니다(11-12절). 빌립보는 헬라제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주전 167년 경에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그 이후 은퇴한 군인들이 많이 거기서 살았다고 합니다. 항구도시로 육지와 바다를 잇는 마게도니아의 중요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이 선교팀은 빌립보에 도착하여 즉시 사역을 시작하지 않고 수일을 지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12절하). 성질이 급한 한국 사람들과는 달리 상황을 살피며, 먼저 기도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늘 안식일에 유대인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회당을 찾았는데, 유대인들이 적었던 빌립보에서는 회당을 찾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기도처를 찾았습니다(13절). 유대법에 유대인 남자 10명 이상이 되어야 회당이 세워졌기 때문에,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곳곳의 기도처에서 여자들을 중심으로 안식일에 모였던 것입니다. 마침 성문 밖 강가에 여자들이 모여 있어서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모인 여자 가운데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인 루디아(Lydia)를 만나게 됩니다(14절). 두아디라 성은 오래 전부터 자주 염색산업이 성했던 고장으로, 그곳에서 염색한 옷을 팔거나, 자주 염색을 해주며 살던 루디아가 빌립보로 와서 장사하며 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루디아가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고, 이 두아디라 성에서 온 여인을 사람들이 루디아(Lydian lady)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소아시아의 옛 나라 루디아의 헬라 지역은 자줏빛 염색업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가 14절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 라고 했습니다. 여기 ‘공경하다’는 말은 ‘예배하다’는 뜻으로,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였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신 이후,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만으로는 구원함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는 죄 사함을,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루디아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그 말씀을 청종하게 하셨다고 14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영의 눈을 뜨게 하시고 영의 귀를 열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신령한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녀의 자주장사 사업이 번창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그 심령을 역사하시고 축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단지 복음을 전했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역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절대주권 아래, 주권적으로 섭리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가 바울의 말씀 전함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았지요. 하나님께서 바울의 입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한 사람의 회심(Conversion)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그 말씀을 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잃어버린 영혼들은 모두가 사탄의 영에, 이 세상의 신들에게 그 마음들이 혼미해졌기 때문입니다(고후 4:4).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주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고전 12:3).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이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사람의 책임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야 하고, 그 사람이 사모하며, 들어야 하고 회개하며 믿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가장 큰 축복, 신령한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내가 진실로 예수님이 믿어진다는 것이, 회심을 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15절에 루디아가 회심한 후에 믿음으로 한 행실을 우리는 주의깊게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루디아의 회심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디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나타난 그녀의 믿음의 표현, 그 행실에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하였습니다. 세례는 예수님과 하나됨을 성도들 앞에서 증거하는 예식입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함은 루디아가 먼저 믿은 후에 순종하여, 세례를 받고 가족 전체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였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데리고 있던 그 집의 종들까지도 인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겸손히 회개하며 자신이 세례 받는 것은 물론이고, 복음을 듣고, 받은 후에, 가서 전하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당연한 결과이기에 그대로 순종하여 온 집안 식구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세례를 받도록 합니다. 바로 이 온 집이 믿음의 식구가 되어서 빌립보교회가 개척이 되고, 세워지게 됩니다. 이야말로 신령한 축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은혜 보답에 대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나, 신랑에게 순종하는 신부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때문에, 은혜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했다고 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uJpakohv) 이라는 단어의 뜻은 '듣는다' 에서 나온 말로, 종이 주인의 말을 듣고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나타납니까? 성경에 나타난, 우리가 잘 아는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사무엘, 다니엘, 베드로, 바울, 요한, 디모데, 아니 오늘 본문의 자주 장사하던 여인 루디아, 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가지고 있는 믿음에 따라 행실로 나타난 순종입니다.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우리 기독교 역사상의 앞서 지나간 사람들도 마찬가지요. 또한 지금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순종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음에 순종하며 삽니다. 정말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려고 몸부림을 치며 삽니다. 이것이 바로 신령한 축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둘째로, 참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15절 하반절에 루디아는 복음을 전하여준 바울과 실라의 일행을 강권적으로 집으로 초대하고 대접합니다.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믿는 자가 믿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믿는 자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루디아는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하면서 강권적으로 그들을 초대하여 대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니, 사랑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증거입니다. 한 번 마음이 열리고 난 후에는, 그 집의 닫혀진 문도 열립니다. 마음이 닫혀진 사람, 아직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대접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을, 교인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주기가, 무엇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0-13절까지 말씀하시기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여기 마지막에 대접한다(filoxeniva) 라는 말은 형제사랑(filevw) 에서 나온 말입니다. 피를 나눈 한 형제에게 사랑으로 대하며, 대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신령한 축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바로 주는 자의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 & Lord)로 믿는 믿음이 있으시면, 하나님의 은혜, 사랑을 깨달았으면,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마음이 열려 사랑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을 대접하려고 합니다. 정말 메마른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가 아닙니까? 한 교회의 가족이 서로에게 인색하게, 자기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가 풍성히 사랑을 주는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으로 뭉쳐진 가족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웃들도 부러워하며 함께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려고 할 것입니다. 사랑하며, 대접하며, 주면서 사십시다.

사랑하는 경향가든의 교우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성경 속의 한 여인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 루디아라는 여인은 장사를 하는 여인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다가 복음을 듣고는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신령한 축복을 받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가 행실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고백하며 세례를 받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 종들까지 복음을 전하여 함께 예수를 믿으며 다 세례를 받는 데에 이릅니다.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며 복음을 전하고 온 식구를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또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주의 종들을 기꺼이 집으로 모시고 대접을 합니다. 주는 사랑입니다. 성도들을 대접하는 사랑입니다. 이 가족을 중심으로 빌립보교회가 서게 되고, 우리가 빌립보서를 읽어보면 이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감사가 넘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빌립보서 1장 서두 3절에서 6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고 로마 옥중에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오늘 본문의 루디아의 진짜 이름은 빌립보서 4장 2절에 나오는 유오디아나 순두게일 것으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이후로 루디아라는 이름이 빌립보서에서조차 언급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서게 되고 땅끝까지 선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필요로 하시는 사람이 초대교회의 루디아와 같이 신령한 축복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다시 오실 구세주로 믿어집니까? 이미 신령한 축복을 받으신 분입니다. 죽음조차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약속하신 평강과 기쁨이 여러분의 삶에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이유는 그 믿음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잊고 있어서 주위에 그 사랑이 전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하셔야 합니다. 의지적으로라도 순종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들을 먼저 사랑하며, 대접하며, 주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우리 교회에 루디아와 같은 믿음의 식구들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한 식구들로 말미암아 수년 내에 커다란 부흥이 찾아올 줄로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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