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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8-14 (월) 11:2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429    
점점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갑시다(히 5:11-14)


자녀를 갖기 원하는 부모에게 아기가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더 기쁘고 좋은 것은 아기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고, 자전거도 배우고 그러다가 유치원에도 가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면 부모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아니 사춘기를 지나 철이 들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어 순종하며 공경하게 되면 다 키운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자라지를 않으면 부모에게 근심 걱정이 됩니다. 다른 아이들은 잘 자라는데 내 자녀는 계속 젖만 먹으려고 합니다. 3살, 4살이 되는데도 기저기를 계속 차고 있습니다. 유치원에도, 학교에도 보내지를 못합니다. 너무 슬프겠지요.
아니 몸은 커져서 대학교도 가고 하는데 철이 들지 않아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부모를 더 힘들게 하고 괴롭힙니다. 그런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어 그 자녀가 되는 것을 정말 기뻐합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데, 새로 태어나는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엄청 기뻐하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은 중생한 후에 우리의 신앙이 점점 자라가는 것입니다. 처음엔 영적인 젖을 먹다가 차츰 밥을 먹게 되고, 스스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자전거도 타며 여러 운동을 하면서 점점 커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는 것은 영적으로 철이 들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고,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오래 다녀도 신앙이 자라지 않을 때 우리 하나님은 안타깝게 생각하며 슬퍼하십니다. 그래도 거의 빠지지 않고 매 주일 설교를 들어서 성경을 좀 압니다. 그런데 머리만 커졌지, 가슴으로 내려오질 않아서 냉냉합니다. 손과 발이, 몸이 머리로 아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산 지식이 아닙니다. 철이 들지 않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자기만 위합니다. 무엇이 정말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지 분별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몸은 커졌는데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생활 얼마나 오래 했느냐, 교회의 봉사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를 묻지 않습니다. 그 동안의 신앙생활로 얼마나 자랐는지 묻습니다. 아니 믿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성장하라고, 성숙해지라고 명령합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고 하였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고 하였으며,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라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교회를 오래 다니는데도 성장하지 않는, 성숙해지지 않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 예수님은 구약의 멜기세덱처럼 그의 반열로서 왕이며, 대제사장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고난을 받아 우리 믿는 자들의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5:7-10). 그 고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한 통곡과 눈물의 간구와 탄원을 하나님 아버지께 올렸지만,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결국 응답을 받아 부활 승천하셨고 오늘도 주권을 가지시고 다스리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독자들 가운데 신앙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 자라지 못하여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믿는 자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11-12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듣는 것이 둔하기 때문에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둔하다는 말은 좀 어려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하지요. 어린아이에게 고등학생, 대학생 수준의 가르침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때가 오래 되었으니까, 즉 믿고 교회 생활한지가 오래 되었다고 하면 영적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어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누구에게 다시 하나님 말씀의 초보, 기초를 다시 배워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아직도 젖을 먹어야, 우유병을 들고 있어야 하니 안타깝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단단한 음식을 먹고 소화시켜야 할 때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단단한 음식이란 성경에 나타나는 딱딱한 교리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아주 중요하고 없어서는 영적인 음식입니다. 5년, 10년 이상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런 단단한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면서 초신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준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딱딱한 말씀도 잘 이해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 영양분이 되게 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13-14절)고 하였습니다. 왜 자라지 못하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듣기 좋은 쉬운 말씀뿐만 아니라, 듣기 어려운 말씀도 이해가 되고 그 말씀대로 살아서 진리임을 경험해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시편의 말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레위기나 선지서 등도 보셔야 합니다. 복음서뿐만 아니라 바울의 서신서나 요한계시록도 보셔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삶에 적용해서 성령 하나님을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righteousness)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때로 아플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죄성이 있는데 그것을 거스리는 가르침이니 왜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사춘기 자녀들이 부모가 하는 옳은 말을 듣기 싫어하는 이유가 거슬려서, 고통스러워 그런 것 아닙니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닙니까?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숙한 자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철이 들면 다 이해가 되고 듣게 되어 있습니다. 훈련을 받아 영적인 지각을 사용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훈련을 잘 받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더라도 부모는 점점 단단한 음식을 먹게 합니다. 젖에서 이유식으로, 이유식에서 밥으로, 맛이 별로 없는 건강한 음식으로 훈련을 시킵니다. 그것이 싫다고 내 입에 달콤한 것만 달라고 하며 떼를 쓴다고 해서 단단한 음식을 주지 않으면 건강하게 못 자라는 것입니다. 병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맛이 없는 단단한 음식이라도 먹고 소화를 잘 시키면 건강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몸에 좋다는 것을 경험해 보아야 하지요. 그러면서 철이 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연단을 받아’ 입니다. 더 정확한 번역은 ‘훈련을 받는다(have trained themselves)’ 입니다. 자녀들도 훈련을 받아야 건강하게 자라지 않습니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격언도 있습니다. 먹기 싫어도 몸에 좋은 건강한 음식을 먹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가서 적당히 운동도 해야 합니다. 예의, 예절도 배워야 합니다. 나누는 훈련도 해야 합니다. 친구도 잘 사귀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장하지 않으려고 하며 그냥 세월을 보내며 사는 것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영적으로 자라가지 않겠다고 노력하지 않아도 훈련 없이 가만히 있으면 자라지 않습니다. 마치 나이가 들면서 배가 나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되는대로 식사를 하고, 아무 운동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배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노력해야 합니다. 절제해야 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성을 거스려 점점 성숙해져 가려면 영적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훈련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골고루, 이해하기가 어려운 구절들도 보아야 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성도로서 예의, 예절도 배워야 합니다. 자신보다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고 배우지 않습니까? 잘 사귀어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늘 부정적인 말로 불평 불만을 하는 사람들과는 멀리 해야 합니다. 그보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고 격려하며 세우는 사람들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탄 마귀의 장난인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지 분별하는 훈련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번 교회 나아와 주일 예배 드리는 것만으로는 훈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5년, 10년, 20년 교회를 다닌다고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목사가 ‘수요예배도 나와야 합니다. 새벽기도회도 하실 수 있으면 해야 합니다.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공부 해야 합니다. 제자양육 받아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라고 권면하는 것을 잔소리로 알아들으신다면 그것은 사춘기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의 말을 잔소리로 알아듣고 반항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 때문에 여건이 안되면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않게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깝습니까? 영적으로 둔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꽤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깨달음의 진보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참 안타까워하는 영적 어린아이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자기만 알고 떼쓰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삐죽거리며, 쉽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릅니다. 아마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답답해 하시며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신앙이 자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퇴보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자라가지 않고 그냥 정체 상태에 있는 것은 곧 퇴보하는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자라가야 합니다. 성숙해져 가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말입니다. 아이들은 매년 자기 키가 얼마나 컸는지 벽에 대봅니다. 지난 해보다 1인치만 커도 엄청 기뻐합니다. 부모가 기쁩니다. 그런데 키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져서 철이 들면 너무 좋아합니다. 살 맛이 납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다 주고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난 해보다 영적으로 성숙해졌다면 정말 좋아하십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영적으로 장성했다고 말할 수 없고, 교회 다닌 지 몇 년 안되었다고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포도원 품꾼 비유의 결론에서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마 20:16)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지만 훈련을 잘 받아서 먼저된 자보다 성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단단한 음식도 잘 먹고 소화시킬 수 있기 바랍니다. 지속적으로 말씀을 하고 가까이 하고 기도하면서 영적 분별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삶 자체가 훈련인 것입니다. 매순간 말씀에 비추어 보고 돌이킬 것은 돌이키고, 고칠 것은 고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하는 것이 훈련입니다. 죄에 민감하여 조금이라도 성령께서 깨우치시는 것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입니다.
늘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아닌지,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 구별하여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점점 주님의 마음을 더 알기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흡족한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점점 더 성숙해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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