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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10-02 (월) 10:2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90    
멜기세덱,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히 7:1-10)


모형이라 함은 실체와 비슷하지만 실체는 아닌 것을 말합니다. 한어 사전에는 실물을 본떠서 만든 물건, 혹은 같은 모양의 물건을 만들기 위한 틀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체를 설명하기 위하여 모형을 만듭니다. 모형을 보고 실물이 그렇겠구나 추측합니다. 마치 그림자와 같습니다. 좀 어려운 말로 예표(type)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유월절 어린양이라든가, 요셉이라든가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5:10)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5:11)고 함으로, 믿음으로 거듭날 뿐만 아니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멜기세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7장에 들어와 멜기세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해서 입니다. 5장 강해할 때에도 설명했지만,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멜기세덱도 탁월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자는 창세기 14장 사건을 설명하면서 멜기세덱이 어떤 제사장이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이었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1-2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있는 소돔을 쳐들어온 연합군,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롯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빼앗아 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훈련된 자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물리친 다음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도로 다 찾아왔습니다(창 14:1-16). 물론 노략한 전리품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아와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을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18-20절상)! 그러자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칩니다(창 14:20절하). 이로부터 1000여년이 지난 후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1000여년이 지난 후에 히브리서 기자가 이 이야기를 1-2절에서 한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임을 증명하며, 전체가 동일한 주제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그렇지만, 당시 동방에서는 왕이 제사장을 겸하는 법이 없습니다. 왕이면 왕으로, 제사장은 제사장으로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왕의 권력도 대단했지만, 백성들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도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왕이자,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예표인 것입니다. 물론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이기도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살렘의 왕이라고 이름했습니다. 실제로 히브리어 ‘멜기세덱(Melchizedek)’이라는 이름은 두 단어가 합성되었는데 ‘멜기’는 ‘무엇의 왕’이라는 뜻이며, ‘세덱’은 ‘의(righteous)’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 하면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살렘’은 예루살렘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데, ‘샬롬(평강)’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2절하)라고 한 것입니다.
우선 ‘의’의 개념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속성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인 죄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십니다. 원래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의 전가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를 전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또한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님이십니다(엡 2:14).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 즉 죄를 허무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간증은 마음이 평안하다고 합니다. 주위 환경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유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로 죄와 허물을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은 또한 율법에서 정한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제사장과 달리 홀로 제사장이었으며, 항상 제사장으로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아론의 후손과 레위 지파 중에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였는데, 율법이 있기 훨씬 전에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출생이나 죽음에 대하여 어떤 언급도 하고 있지 않기에 히브리서 기자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3절)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어떤 성경학자는 멜기세덱을 천상의 존재, 즉 천사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왕이며 제사장이었던 그가 결코 부모가 없이, 가족이 없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의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 성경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 직분과 비슷하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하니 말입니다. 만약 그가 천사였다면 히브리서 기자가 이미 천사의 역할에 대하여 두드러지게 설명했기에(1:5-14), 분명히 그를 천사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성경학자는 멜기세덱이 구약에 종종 나타나는 제2위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하기 전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3절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저 멜기세덱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것을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속성들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이 당시 탁월한, 높은 제사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바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4절)고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정말 위대한 존재로서 믿음의 조상(족장)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으니, 멜기세덱은 얼마나 더 높은 위대한 사람이냐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소득의 십일조를 레위 지파에게 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민 18:21, 24). 그리고 레위 지파는 그들의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이 제사장에게 그들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민 18:26-32). 즉 율법에서는 십일조를 낸 사람과 받은 레위 지파 사람들이나 제사장들이 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었습니다. 낸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 다 형제요 친척 간이었습니다. 그래서 5절 말씀,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있기 약 500여년 전,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 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6-7절)고 한 것입니다. 즉 멜기세덱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보다도 더 높은 탁월한 제사장이었기에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약속을 얻은 그를 멜기세덱이 축복한 것입니다.
8절은 또다시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내용을 근거로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몇 년간 섬기다가 죽은 자들이지만, 멜기세덱은 영원히 지속되는 제사장직을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죽으면 그 직분을 그 자손들에게 물려 주었습니다. 그런 유한한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 외에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바로 멜기세덱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 직의 모형이기에 말입니다.
또한 레위 지파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는 아직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을 때였기 때문에 그가 아직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10절). 그러니까 레위 지파가 십일조를 받아서 제사장에게 그것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그들도 아브라함을 통해 멜기세덱에게 드렸다고 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린 것을 멜기세덱에게 드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9절)라고 한 것입니다.
요약하면, 아브라함은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직을 수행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은 레위 지파도 아브라함을 통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높고 탁월한 제사장이었는데, 이는 바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신비한 인물의 실체는 예수님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멜기세덱이 이러한 인물인데 하물며 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하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은 멜기세덱보다 도 더 위대한 의의 왕이시요, 평강의 왕이십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모든 영광을 받으실 높고 높은 분이십니다. 모든 것 다 바칠만한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복을 빌어주시는 분입니다. 중보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과 아브라함과의 관계처럼 우리도 이러한 주님과 올바른 관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늘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예수님의 모형으로서 이 세상에서 그 발자취를 따라 살므로 의의 삶, 평강의 삶, 축복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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