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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10-26 (목) 23:2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382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계 18:1-8)
17장에서 시작된 사도 요한이 본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환상의 연장에서, 18장에서는 다른 천사들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 말한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본문의 바벨론은 그 당시에는 로마제국을 말하며, 오늘날에는 세속적인 문명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이 미국이, 중국이 멸망한다고 말입니다.
당시 로마가 망한다는 것은 전세계적인 충격이었습니다. 막강한 로마제국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록을 읽는 초대교회 교인들은 사탄 마귀의 종이 되어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로마제국이 멸망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온갖 힘들어도 소망을 가지고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1절)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본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큰 권세를 가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 천사가 선포하는 내용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권세를 주셨기에 큰 권세라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천사의 모습이 너무나도 빛나서 그 영광으로 땅이 환해질 정도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말입니다.
이 천사가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2절)라고 합니다.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분명히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땅과도 같이 된다고 합니다. 까마귀나 독수리들이 시체들을 뜯어 먹으며 귀신들이, 더러운 영이 우글거리는 곳과 같이 된다는 말입니다. 마치 고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했던 예레미야나 이사야 선지자들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막의 들짐승이 시랑과 함께 거기 거하겠고 타조도 그 중에 깃들일 것이요 영영히 거민이 없으며 대대에 거할 자도 없으리라”(렘 50:39; 사 12:21-22, 34:11-15)!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이 땅에 살더라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사탄 마귀가 날뛰는 현장을 피해야 합니다. 인신매매, 성(sex)의 상품화, 이교나 사교 집단, 돈을 벌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을 피해야 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악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3절에서 바벨론이 멸망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계 14:8)라고 한 말씀의 반복입니다. 바벨론이 모든 나라를 취하기 위하여 포도주를 사용하였으며 음행으로 유인했습니다. 그리고 다 넘어갔습니다. 여기 포도주는 세속적인 문명이 인간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유혹들을 상징합니다. 이에 중독이 되어 먹고 마시지 못하면 진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땅의 왕들이, 지도자들이 이에 넘어가 음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무역업을 하는 상고들, 오늘날로 말하면 사업을 하는 자들이 물질주의로 인하여 사치와 허영을 위하여 치부하였기 때문에 멸망 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이 바벨론의 정체를 바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 실상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물질주의, 정욕에 사로잡혀 짐승처럼 살고자 하는 바벨론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인간을 수단시하는 바벨론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단이, 사교 집단이 무서운 것이 거기는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정욕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채워지지 않으면 진노로 발광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4-5절)고 하였습니다. 4절 이하는 다른 천사의 음성으로 생각됩니다만, 혹자의 해석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보아도 괜찮습니다. 마치 목자가 자기 양에게 하는 소리이며,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게 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거기서 나오라고 합니다. 죄의 소굴에서 나오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을 떠나 아무도 없는 산속이나 사막으로 가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의 죄에서 떠나라는 뜻입니다. 동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당시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로마제국의 죄에 빠져 있는 모양입니다. 사치와 허영, 방탕한 삶, 자기 정욕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 죄 가운데서 속히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가진 것을 다 잃더라도 신앙양심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위선과 거짓된 삶에서 순수하고 진실한 삶으로 돌아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헛된 것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죄가 너무 많아서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며, 죽기도 하여 그 맺힌 한이 하늘 꼭대기에 닿은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그 죄가 축적되었으며 그 한계에 도달하여 곧 하나님의 심판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적인 것들과 타협하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도 경고하기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주님은 심판을 집행할 천사에게 명령합니다. 아마도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들과 동등한 권세를 가진 자로 생각됩니다(계 15:1).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로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6절)고 합니다. 공의로운 심판을 말합니다. 마치 율법에서 “생명은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4-25; 레 24:20; 신 19:21) 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심판하거나 복수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도 신명기 32:35절 말씀을 인용하여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친히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고 하였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해줄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이어서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7-8절)고 하였습니다. 고대 바벨론이나 로마제국은 그 교만이 극치에 달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세상의 주인이며 모든 도시들 가운데 가장 휼륭한 도시의 여왕으로 앉았다는 것입니다. 과부가 아니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왕들이 자신의 애인이라는 뜻입니다. 자신 스스로가 운명을 결정한다고 자신했기에 결단코 애통하지 않는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듯이(잠 16:18) 이제 로마에는 사망과 애통과 흉년의 재앙을 당하게 되고 불에 탈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재앙이 16장에 나오는 일곱 대접 심판들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당시 계시록을 받아 읽는 독자들은 막강한 로마제국이 이렇게 망한다는 사실을 믿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누가 New York, Tokyo, 혹은 서울이 이런 재앙을 만나서 잿더미로 변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심판주이신 하나님은 어느 누구보다, 어느 신보다 강한 분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심판하신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시를 믿는 사람들은 소망 가운데 죽음의 고통조차 이겨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해야 합니다.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warning sign 을 주실 때 stop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실 때에 스스로 절제하고 낮아짐으로 고난을 택하십시오. 이 세상에서의 고난은 잠깐입니다.
비록 이 땅에 죄악이 관영해도 그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죄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세상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자주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욕심을 점검해 보십시오. 목적지를 향해 바로 가고 있는지, 정도를 걷고 있는지, 수단과 방법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러려면 매일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루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세상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강합니다. 능하십니다. 신앙양심을 지키고 삽시다. 하나님 앞에서 삽시다. 다 보고 계십니다. 알고 계십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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