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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11-24 (금) 01:4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372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데살전 1:2-3)
내일이 추수감사절입니다. 하나님께 제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감사할 것들이 많지만, 특별히 오늘 설교를 통하여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힘들고 바쁜 이민 생활을 하면서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주님 섬기며 교회를 위하여 여러 모양으로 봉사하며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여러분들의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사도 바울의 말씀이 생각나서 본문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를 떠나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마게도냐 반도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주후 49-51년 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늘 전도여행 중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듯이, 데살로니가에 있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을 상대로 3주 동안 전도하며 가르쳤습니다(행 17:1-10). 그 기간에 유대인들 중에서와 또한 많은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생겨났습니다. 마침내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주의자들을 격동시킴으로, 바울은 그곳을 피하여 베뢰아로 도망하여야 했습니다. 베뢰아에서 마찬가지로 복음이 확산되자(행 17:10-12), 또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는 남겨놓고 아덴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 후 바울에게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염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디모데가 아덴에 도착하여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도들이 변하여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이 편지의 서두에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먼저 하게 됩니다. 2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라고 하지 않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기만 하면 저절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가 드려진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로 감사할 것 세가지를 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않고 기억함이니"!

첫째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 생산하는 역사(evrgon), 일, 행동을 말합니다. 과거에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 주신 대속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칭함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하는 일들을 인하여 감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나타난 선한 행실들을 인하여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으로 이교사상(paganism)과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의 부도덕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옛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데살전 1:8-9). 변화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과거의 삶을 완전히 버렸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좋은 소문이 되어 각처에 복음 전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박해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주님을 섬김으로써 저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데살전 3:8). 외적으로 심한 핍박이 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믿음이 생기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서 물질에 대하여도 욕심을 버리고, 오히려 빈곤한 가운데서도, 환란과 시련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드린 일로 바울에게 칭찬을 받았던 그들이었습니다(고후 8:1-4).
사랑하는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예수님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에 변화된 삶을 보여주시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목회하면서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목회를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러나 조금씩 믿음이 자라면서 변화되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때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목회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그 사랑을 본받아 수고한 것을 인하여 감사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수고(tou/ ko,pou th/j avga,phj)라 함은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고, 고통과 아픔을 감당하면서 한 일들을 가리킵니다. 육신이 피곤하고 약해짐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애씀을 가리킵니다. 아가페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수고(labor)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을 쓰고 있는 당시에도 계속하여 사랑하며 일하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믿음의 역사라 함은 믿음으로 가지고 행한, 결과적으로 나타난 일을 말한다면, 사랑의 수고는 계속하여 희생함으로 고통이 따르지만 이웃을 위한, 남을 위한 삶의 수고를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사랑에 감격하여 그러한 아가페 사랑의 수고를 많이 하였던 것입니다. 뼈아픈 수고를, 해산의 고통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태신자 하나를 낳고 사랑으로 양육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그 사랑의 수고를 하신 것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때문에 피곤해도, 힘들어도 수고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올 한해에도 남 모르게 사랑의 수고를 한 교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자신의 개인 생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힘드면서도 교회 일에,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써 가면서 수고한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셋째는, 소망의 인내입니다.
다시 만나게 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th/j u`pomonh/j th/j evlpi,doj)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인내(endurance)’라 함은 어쩔 수 없어서 참는 부정적 인내가 아닙니다. 소극적인 인내도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핍박과 무거운 압력 가운데서도 기쁘게 참아 내는 것입니다. ‘아유 죽겠다’ 가 아니라 ‘아유 살겠다’ 입니다. 이유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주님을 다시 만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망은 사람을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아무리 핍박이 심해도 조금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영생의 소망이 확실하기에 잘 참아내는 것입니다. 오늘에 부딪힌 현실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하여 살기 때문에 잘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사실 중요한 일을 해내는 것은 힘이 아니라 인내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는 그러한 인내가 있었기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견고함, 흔들리지 않음, 경건하고 의로운 삶의 비결이 이 소망의 인내였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에게 올 한 해에도 크고 작은 사탄 마귀의 시험이, 힘든 일이 여러 번 있었어도, 주님을 소망하며 잘 참고 견디어 준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의 담임목사로서 여러분께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 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마치 바울처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칼빈의 말대로 이 세 가지는 참된 기독교의 간단한 정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올 한 해 동안도 저희 교회를 축복하셔서 여태까지 많은 새 교우들을 허락하시고 한 가족 삼아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물론 우리 교우들 중에는 이사를 하거나, 시험에 들거나 하여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회를 떠났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올 한해 동안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목사가 인정을 해 주던 안 해주던,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며 믿음으로 하신 여러 일들을 인하여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행실들을 인하여 감사 드립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옛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모든 우상을 버리고, 주님만 사랑하시면서 부도덕한 삶을 버리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외적으로 내적으로, 갖은 핍박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서서 신실하게 살아온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생활이 어렵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과부의 두 렙돈처럼 풍성한 연보를 해 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이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애쓰며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자기를 희생해 가며 아가페의 사랑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성도님들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여러 직분을 맡으면서 한마디 불평 없이 희생하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사랑의 수고만큼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만큼이라도 성장하게 된 것은 여러분의 사랑의 수고였다고 믿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랑의 수고는 우리 교회에는 말할 것도 없이, 여러분께도 큰 축복이 되었을 것이며,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탄 마귀가 주는 환란과 고통 중에도, 질병 가운데서도 주님을 다시 만날 소망을 잃지 않고 참고 인내하신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억울한 일에도, 오해를 받고도 잘 참아 주시고,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럴 수 없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오히려 웃고 기뻐하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소망의 인내로 한해 동안도 흔들림이 없이 견고하게 신앙생활을 해오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래서 저는 강대상에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들을 인하여 바울처럼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주님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인하여 감사 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를 보낸 후 아마 몇 달 후에 다시, 마지막 주의 날에 대한 교훈과 교회 질서를 위하여 데살로니가 후서를 보낼 때에도, 그 서두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란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데살후 1:3-4)고 하였습니다. 그 몇 달 사이에도 믿음이 자랐음을, 그리하여 더욱 많은 믿음의 역사를 감사하며, 각기 서로 사랑하는 것도 전보다 더 풍성하여 졌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 참는 인내를 다시금 거론하면서 바울이 알고 있는 다른 교회들에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이런 점들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저도 여러분을 대하여 내년 추수감사절에는 이러한 면에 더욱 감사할 것이 많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앞으로 더욱 믿음이 자라고,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여 져서 더욱 따뜻한 교회가 되며, 앞으로도 어떤 어려움이 올지 모르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더욱 굳건하여, 신앙생활이 흔들리지 않고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잘 참고 인내하실 수 있음을 믿어 봅니다. 사실 이 세 요소는 다 생산적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민교회들이 생산적이기 보다는 소비적인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교회를 교인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채우는데 사용하는 소비 성향의 모습이지요. 그런가 하면 믿음의 역사로 생산적인 일들을 해 내는 모습을 나타내는 교회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우리 교회는 소비성보다는 생산성이 더 있는 교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건강한 교회로, 생산성있는 교회로 자라서 많은 이민 교회들 가운데서도 좋은 소문으로 하나님께 참으로 영광되며,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Happy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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