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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12-07 (목) 12:4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202    
바벨론의 슬픈 노래(계 19:9-19)
17장에서 시작된 사도 요한이 본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환상의 연장에서, 18장에서는 다른 천사들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 말한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본문의 바벨론은 그 당시에는 로마제국을 말하며, 오늘날에는 세속적인 세상 나라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가 망한다는 것은 전세계적인 충격이었습니다. 막강한 로마제국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록을 읽는 초대교회 교인들은 사탄 마귀의 종이 되어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로마제국이 멸망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역경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견딜 수 있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벨론, 즉 로마제국이 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왕들과 상인들, 그리고 선원들이 슬퍼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슬퍼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들에게 손해가 오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다가 한 순간에 로마제국이 불타버리니 그들도 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자들은 세속적인 문화에 빠져들면 안됩니다. 악한 영이 주장하는 이 세상은 반드시 망합니다. 우리는 그 때까지 단지 세상에서 살 뿐이지 세상 문화와 가치관에 빠져 동화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꾸로 세상을 변화시키며 복음으로 정복해야 됩니다. 사상적으로, 영적으로 세상을 부리는 마귀의 영과 상관없이 살아야 합니다.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부터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때까지 총리로 지낸 사람입니다. 비록 나라는 바뀌어도 그는 계속 총리의 자리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유는 바벨론과도, 페르시아와도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왕이 되더라도 항상 똑같았습니다. 언제나 정직하고 신실하고 공평정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 왕들에게도 신임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에게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위기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 때에도 죽을 뻔 하였고, 다리오 왕 때에는 사자굴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뜻을 정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단 1:8).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가 망해도 다니엘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더라도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 누구의 사람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붙들지 않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삽니다. 누가 우리에게 잘해주면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순수하게, 하나님 사랑으로 잘해주는 것인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잘해주는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불순한 동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잘해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거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피차 하나님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롬 13:8).

바벨론이 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슬퍼한 자들은 이 땅의 왕들이었습니다. 권력자들이었습니다. 바벨론과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왕들입니다(9절). 그들에게도 같은 운명이 찾아올 것 같아 두려워합니다.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10절)고 합니다. 권력을 가지고 마음대로 누리며 살던 자들이 그 권력이 사라지게 되고, 엄청난 손실을 경험하며 함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슬퍼하는 자들은 상인들입니다. 바벨론을, 로마를 등에 업고 사업하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다시는 그들의 상품을 살 자들이 없어졌기에 사업이 망하게 된 것입니다.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11절)고 하면서 거래하던 상품들 29가지를 열거합니다(12-13절). 거의 로마가 수입하던 상품들입니다. 금, 은, 보석, 진주 등 각종 jewelry 와, 세마포, 자주 옷감, 비단, 붉은 옷감 등 옷 종류와 향목, 상아, 값진 나무로 만든 가구들과 진유(청동), 철, 옥석(대리석) 등 실내장식에 필요한 물건들, 그리고 계피, 향료, 향, 몰약, 유향 등 각종 향수들과 포도주, 감람유, 고운 밀가루, 밀 등 음식 종류, 소, 양, 말 등 짐승들과 짐승이 끄는 수레, 종들과 사람의 영혼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의 영혼까지 사고 팔 수가 있습니까? 돈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사는 것입니다.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요즘도 돈에 노예가 되어서 그 영혼이, 그 인격이 없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바로 악한 영들이 주장하는 세속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가 낳은 결과입니다.

이어서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 것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14절)! 앞에서 열거한 사치스러운 상품들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벨론으로 인하여 치부하던 상인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15절), 누리던 사치와 허영, 부가 한 순간에 다 망해버린 것을 슬퍼하며 상선을 운행하던 선장들, 선객들과 바다에서 일하던 모든 자들이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희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18-19절)라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왕인데, 다른 나라처럼 왕을 달라고 할 때가 그 시초였습니다. 그 이후로 자꾸 주위 이방나라의 문화를, 우상숭배를 따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교인들은 정말 순수해야 합니다. 절대로 돈이나 권력이나 정욕에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그렇게 되면 이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살면서 묻은 때를 벗기 위해 회개하며 정결하게 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영혼이 치료되는 병원이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뭉쳐진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교인들의 세계관, 가치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고방식과는 달라야 합니다. 무엇이 살아가는 동력이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왜 사는지,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내게 가장 가치가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배우고 그 일을 위하여 청사진(blue print)을 그리고, 나는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겠다고 결단하고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속적인 것으로 나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 순결하게 살겠다 작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죄성은 우리를 자꾸 다른데 끌리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이 잘 입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부럽지 않아야 합니다. 명품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런 것이 없어도 행복해야 합니다. 자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니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합니다.
세상에서 직장생활을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그저 돈을 벌기 위함이라면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목적이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서라면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마치 로마제국을 사용하여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이익을 챙기던 왕들이나, 상인들이나, 선원들처럼 산다면 그 결과는 망하는 것입니다. 바벨론과 간음한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 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애통하며 슬픈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남는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며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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