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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12-29 (금) 01: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184    
할렐루야!(계 19:1-10)
유명한 오라토리아 ‘메시아’를 작곡한 George Frideric Handel 은 1685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712년 27세에 런던으로 이사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원래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자였는데 1741년에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위하여 오페라를 버렸습니다. 원래 ‘오라토리’ 는 소예배당에서 무대 장치도 없이 공연되는 뮤지컬 드라마였습니다. 주로 성경의 인물들의 역할을 솔리스트들이 맡고 합창단은 그 사건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헨델은 그의 친구 Charles Jennens 가 복음서, 이사야서, 시편, 계시록에서 수집한 성구들을 사용하여 1741년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24일 동안 그는 잘 먹지도 자지도 않고 미친듯이 곡만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따금 방을 서성거리며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했다고 하며, 다 완성 후에야 하루종일 계속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1742년 4월 12일 더블린에서 공식적으로 첫 공연을 했고, 1759년 4월 13일 죽기 하루 전에도 마지막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이 메시아 오라토리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고 유명한 44번 ‘할렐루야’ 합창은 헨델이 최선을 다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동시대의 하이든이 이 합창을 듣다가 무의식적으로 ‘저편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도다’ 라고 외치며, 멘델스존의 ‘엘리야’와 함께 세계 3대 오라토리오라고 불리우는 자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작곡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742년 메시아 초연을 할 때 참석한 영국의 George 2세 왕이 할렐루야 합창에서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는 바람에 그 이후에 청중들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할렐루야’를 성탄과 연관시키지만, 헨델 시대에는 부활절에 공연이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할렐루야’는 성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승리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사 ‘할렐루야’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신약성경의 유일한 장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Charles Jennens 가 여기 계시록 19장에서 따온 것입니다. ‘할렐루야’는 원래 히브리어로 그 뜻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 입니다. 바로 성도들의 최고, 최대의 찬양입니다.
   18장에서 사도 요한은 바벨론(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해 들은 것을 기록했는데, 19장에서는 실제로 바벨론이 멸망한 후 있어질 놀라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1절)! 바벨론(로마제국), 혹은 이 세상 나라가 망한 후에 하늘의 허다한 무리가 큰 음성으로 할렐루야 찬양을 합니다. 모든 성도의 대 합창입니다. 왜 이 세상 나라가 망한 후에 성도들이 찬양을 할까요?
   첫째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지 않았다면 함께 망하여 지옥에서 영원히 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의 자리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나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이 세상은 방해를 하고 유혹을 하여 늘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아직도 우리 안에 죄성이 있어서 교만해질 때도 있고, 시기와 질투로 힘들 때도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싸우는 가운데 괴로울 적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팝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자체가 말씀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고통을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망하게 되니,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2절) 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이유를 두 가지 말씀하시는데, 하나는 바벨론이 음행으로 세상을 더럽힌 죄이며, 다른 하나는 순교자들의 피를 흘린 죄입니다. 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지킨 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망하게 했습니다. 죽였습니다. 불신자들에게는 방종과 타락을 부추기었습니다. 그 어떤 짓을 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심판이 임할 때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3절) 하였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아브라함이 보니까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던 것(창 19:28)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커서 이 세상이 불에 타도 연기가 계속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또 24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4절) 합니다. 이미 설명하였듯이 24장로는 모든 성도들의 대표입니다. 보좌 앞에 있는 네 생물은 천사들의 대표입니다. 이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즉 ‘진실로 그렇게 될지어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6절) 라고 찬양합니다. 왜 모든 피조물들까지도 찬양을 드립니까? 피조물들도 인간의 죄 때문에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것입니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대론무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5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천군천사들의 찬양도, 다른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도 받으시지만 정말 원하시는 찬양은 모든 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드리는 찬양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오늘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여 드리는 찬양은 그 때를 위한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찬양은 소리가 작습니다. 예배도 너무 작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되면 전 세계 온 성도들이 함께 부르는 정말 웅장한 찬양이 모든 천군천사들, 그리고 피조물들이 함께 하는 찬양이 될 것입니다. 2000명이 부르는 찬양도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데, 어떠하겠습니까? 물론 찬양의 주 내용은 “할렐루야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심판을 받게 되면 이러한 찬양과 아울러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7절)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씩이나 비유로 해 주셨던 말씀의 성취입니다(마 22:2; 25:10). 영광의 주님과 우리 성도들의 그 때의 만남은 혼인 잔치와도 같습니다. 서로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아닙니까? 영적으로 이미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까? 혼인 기약한 바로 그날, 그 때에는 실제로 우리 모두 부활한 몸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는 잔치를 하게 됩니다. 전무후무한,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잔치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잔치가 될 것입니다. 아내가 그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신부가 결혼식 날 준비를 다 하고 기다리듯이 말입니다.
  어떻게?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8절) 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옷인 흰 세마포는 아무에게나 입혀주는 것이 아닙니다. 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만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참 믿음의 열매가, 옳은 행실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니 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 열매가, 옳은 행실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즉 흰 세마포를 입었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정말 죄 용서를 체험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살려고 발버둥을 치며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보입니다. 신앙 양심을 속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속이는 실수를 했다면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며 애통하여 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참 믿음의 열매가, 증거가 없는 자, 옳은 행실이 없는 자는 이름뿐인 신자입니다. 결코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놀라운 계시의 말씀을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기록하여 남기라고 합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9-10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들을 추수할 일꾼으로 보내었을 때,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게 됨을 기뻐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그 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7:20절하)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지 않았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놀라운 말씀을 천사로부터 받은 요한이 그를 경배하려고 하니 오직 하나님에게만 경배하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증거는 천사가 아니라 요한과 같은 사도들을 통하여 대언되는 것이며 이 복음의 증거를 듣고 참으로 믿는 자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신부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신부입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옳은 행실이, 산 믿음의 열매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할렐루야 찬양을 해야 합니다. 찬송을 해야 할 이유가 너무 많습니다만, 그것이 가장 복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기쁨,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난다고 하는 기쁨이 찬양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심판이 다가옴을 알고 참고 견디면서 찬양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 심판을 면하게 하시고, 오히려 저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살게 하시니 말입니다. 우리 평생에 할렐루야 찬양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과 영광과 능력의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기뻐하며 찬양과 경배를 올려 드리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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