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15,683
오늘방문 : 1462
어제방문 : 2119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2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8-13 (월) 09:0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273    
세상이 감당못하는 담대한 믿음(히 11:29-40)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항상 역동적이며 주님께 가까이 올라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늘 사탄 마귀와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씨름을 하더라도 가능하면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는 분들은 참된 믿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통하여, 수요예배나 새벽기도회, 경건의 시간 등을 규칙적으로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때로는 내려갔다가도 올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사탄 마귀와 싸우기만 하면 이깁니다.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의지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두려워하며 물러서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절하)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사탄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렇게 세상을 이긴 구약의 성도들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도무지 세상이 감당을 못한 성도들이었습니다.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우선, 지난 주일에 살펴본 모세의 믿음과 지도력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홍해 바다를 건넜다고 합니다(29절, 출 14장). 눈 앞에서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하였으니 당연히 물 가운데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 쫓아오던 애굽 바로왕의 군대는 자신들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후에 물이 도로 합쳐져서 다 물 속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하고도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며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며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런 대부분의 백성들과 달리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을 거의 다 정복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30절, 수 6장)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마차 두 대의 두께로 만들어진 난공불락과 같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데 하나님께서는 정말 말도 안되는 지시를 여호수아에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군사들이 성 주위를 매일 한 바퀴씩 엿새 동안 돌다가 칠일 째 되는 날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길게 불러서 그 나팔 소리가 들릴 때 백성이 다 큰 소리로 외치면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수 6:2-5). 그런데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은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랬더니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한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명령하신 말씀 가운데 내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순종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말씀하시는 분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주권자 하나님이심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인간의 상식으로 신앙생활하는 것 아닙니다.
그리고 기생 라합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31절, 수 2장)! 우리말 번역에 라합을 기생이라고 하였으나 사실 창녀(prostitute)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에 가장 비천한,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그 많은 이방인 가운데 혼자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늘 하나님의 은혜는 그 은혜를 받는 사람이 믿음의 반응을 보일 때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 때 정탐꾼을 알아본 라합은 그들을 평안히 영접하였습니다(31절). 마음에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고 숨겨주었습니다. 이유는 라합이 여호와 하나님이 과거에 그 백성들에게 베푼 여러 기적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듣고는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수 2:11)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믿음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정탐꾼들을 도망가게 하면서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많은 여리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때 자신의 가족들을 살려준다는 맹세를 정탐꾼들에게 하게 하면서 표를 받은 것입니다(수 2:12-13). 그래서 라합은 믿음대로 행동으로 옮길 때 온 가족이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믿음이 있어서 행동으로 옮기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교회에서도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계급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차별을 받는 사람들도 교회에서만큼은 다 같이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천대 받는 자들도, 버려진 자들도, 환영 받지 못하는 자들도 교회는 차별 없이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입으로만, 말로만 믿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32절)고 하였습니다. 사사와 선지자들과 다윗 왕의 믿음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33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 싸워 대적들을 물리친 사사들이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다윗 왕이었습니다. 또한 의를 행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불의하게 전쟁하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무기로, 힘으로 전쟁하지 않았습니다. 의로, 사랑으로 이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주어진 하나님의 의로 세상을 이깁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무력이나 권력으로 재력으로, 지력으로, 육체의 힘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받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가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함으로 그 약속대로 되는 것을 경험하고, 또 미래에 이루어질 약속을 믿고 행하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어려움이, 위기가 없었던 것 아닙니다.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사자굴에 던져졌어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담대히 사자굴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사자들의 입을 막아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34절)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어려움을 만납니다. 문제에 부딪힙니다. 위기를 만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이나 위기, 문제 자체를 보지 말고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온전히 신뢰합니다. 오히려 그런 고난을 통과하면서 강하게 됩니다. 영어에 ‘Lots of pressure make a diamond’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압박을 많이 받은 결과 만들어지는 보석입니다. 정금 같은 믿음은 연단을 잘 받습니다. 나를, 내 자아를 쳐서 복종시킵니다. 교만을 물리치고, 자존심을 버립니다. 인간적인 생각들을 내려놓습니다. 그리하여 치열한 사탄 마귀와의 전쟁 중에도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싸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칩니다. 아 멘!
또한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35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여자들은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시돈 사람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을 가리킵니다. 엘리야 선지자로 말미암아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왕상 17:22-24). 수넴 여인의 아들도 엘리사 선지자로 말마암아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왕하 4:35-37). 정말 이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아들을 부활로 받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악형을 기꺼이 받았다고 했는데 이는 아마도 성경학자들의 말처럼 구약 성도들 가운데 무시무시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비겁하거나 구차하게 살기 보다 이 세상 삶보다 더 좋은 삶의 부활을 있음을 믿고 순교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예: 마카비 2서의 엘리아살과 그의 어머니, 일곱 명의 형제들). 뿐만 아니라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족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36-37절) 한 것처럼 온갖 고문과 학대를 당하며 비참하게 유린을 당하며 살았어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희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또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믿음 때문에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앞서간 순교자들이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왜? 어떻게 그들은 목숨까지도 희생하며 주님을 따릅니까? 우리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게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보다 주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을 세상이, 사탄 마귀가 어떻게 감당이 되겠습니까? 아니 죽기를 각오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절대로, 결코 세상이 이길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 때문에 세상은 복음으로 정복되기 시작했으며, 많은 교회들이 세계 곳곳에 세워지며 교회들이 부흥을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도 주님 때문에, 믿음 때문에 조롱을, 수치를 당해본 적이 있습니까? 매를 맞거나 욕을 먹은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서, 사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서 말입니다. 정말 믿음으로 사는 분들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니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나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39-40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약속’은 메시아가 오신다는 약속을 말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갔습니다.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인 새 언약의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이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미 오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하여 알고 믿기에 우리가 아니면 그들은 온전히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예수님을 경험한 우리처럼 그들도 온전함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잘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있으십니까? 어떤 믿음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많은 교훈을 받습니다. 그 동안 믿음의 영웅들을 살펴보면서 반복한 교훈들이었습니다만, 한 가지만 마음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담대한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사탄 마귀가 어쩌지를 못하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 부인하지 않기 바랍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자아를 철저하게 버리면서 그저 주님을 신뢰하면 세상을 이기게 될 줄 믿습니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사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고 하였습니다. 사탄 마귀에게 져서 비굴하게 수치스럽게 사는 것보다 죽기를 각오하고 담대히 믿음으로 세상이 어쩌지를 못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47 수요설교 고난 중에 유혹을 이기려면 (벧전 1:13-21) 한태일 목사 2022-05-13 441
1246 주일설교 믿음의 어머니 (룻 1:6-18) 한태일 목사 2022-05-08 517
1245 주일설교 절망에서 소망으로 (눅 24:13-35) 한태일 목사 2022-05-01 540
1244 수요설교 구원의 큰 기쁨으로 (벧전 1:6-12) 한태일 목사 2022-04-28 466
1243 주일설교 선한 목자 요 10:1-5(한영제 선교사) 관리자 2022-04-27 494
1242 주일설교 부활 신앙 (눅 24:1-12) 한태일 목사 2022-04-17 512
1241 절기설교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4-49) 한태일 목사 2022-04-16 499
1240 주일설교 저희 뜻대로 넘겨주다 (눅 23:1-25) 한태일 목사 2022-04-10 574
1239 수요설교 산 소망으로 사는 나그네 (벧전 1:1-5) 한태일 목사 2022-04-07 480
1238 주일설교 너희 말과 같이 (눅 22:63-71) 한태일 목사 2022-04-03 483
1237 주일설교 어떤 실수를 하셨나요? (눅 22:54-62) 한태일 목사 2022-03-27 547
1236 수요설교 의인의 믿음의 기도 (약 5:13-20) 한태일 목사 2022-03-24 579
1235 주일설교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눅 22:47-53) 한태일 목사 2022-03-20 528
1234 주일설교 이 땅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눅 22:39-46) 한태일 목사 2022-03-13 558
1233 주일설교 실패하지만 결국은 ... (눅 22:31-38) 한태일 목사 2022-03-06 637
1232 수요설교 참고 인내하라 (약 5:7-12) 한태일 목사 2022-03-03 629
1234567891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