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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0-01 (월) 08:4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269    
성도의 의무 I (히 13:1-3)


그리스도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혹은 성도라고 불리는 우리들은 그러한 정체성에 합당한 놀라운 특권과 축복을 받고 있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 혹은 의무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장부터 10장까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그의 사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하여 말씀을 전해준 후에, 11장에서는 앞서간 믿음의 영웅들의 발자취를 설명하면서 그들처럼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 것을, 12장에서는 마라톤 경주와도 같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이제 13장에 들어와서는 우리 성도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성도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성도로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살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12:25-29) 만약 하나님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섬긴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1절) 하였습니다. 여기 ‘형제 사랑하기를’ 이라는 원어(filadelfi,a)는 한 단어로서 말 그대로 형제 사랑(brotherly love)을 말합니다. 형제 우애를 뜻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5-7)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형제로서, 한 가족으로서 서로 관심을 나타내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고난과 축복을 나누는, 눈물과 웃음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형제 자매들과 삶을 나누면서 서로 위하여 기도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영혼이 깨끗하여져서 거짓이 없이 순수하게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합니다. 제대로 된 가족이라면 그렇게 서로 뜨겁게 사랑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권속, 가족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장자입니다. 우리는 다 양자들입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면서 엄청 신경을 쓰고 계십니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처럼 영적 가족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 아버지께서 너무 기뻐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가족들이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싸우면 아버지께서 너무 슬퍼하십니다.
1절에서 더 중요한 단어는 ‘계속하라’는 명령입니다.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계속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조석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좋다가도 저녁에 싫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조금만 섭섭해도 마음이 상해서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사랑하려면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십자가 사랑의 감격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아가페 사랑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어떻든 관계 없이 꾸준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 하면 곧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라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 짓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는,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하루 전날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여야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제자인줄, 진짜 성도인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형제, 자매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 나그네도 사랑하라고 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2절)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핍박을 피하여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멀리서 온 나그네로서 혹은 여행을 하는 중인데 돈이 떨어져서 쉴 곳도 먹을 것도 없을 때에 누군가 초대하여 대접을 한다고 하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대접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에 믿지 않던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랑에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옛날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을 대접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낯선 세 사람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달려 나가 영접하면서 물을 가져다가 그들의 발을 씻기고 사라더러 떡을 만들게 하고 하인들에게 송아지를 잡아 요리를 하게 해서 대접을 하였습니다(창 18:1-8). 그랬더니 그들이 대접을 받고 나서 사라에게 하는 말이 사라에게 아들이 있겠다고 하면서, 여호와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창 18:14). 즉 나그네들을 대접을 하고 보니 하나님의 천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한 것입니다(2절). 여기 천사들은 메신저들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메신저들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대접을 잘 하고 있습니까? 올해 들어와서 자주 손님을 대접하였습니까? 하나님이 보낸 천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신저일 수 있습니다. 늘 사랑으로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영접하며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곧 주님을 영접하며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시면서(마 10:40),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하셨습니다. 소자 하나라도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당연히 대접을 하는데 상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아브라함과 사라가 손님을 접대하여 복을 받아 노년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임신을 하게 되고 이삭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손 대접하는 것이 초대교회 감독들의 자격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딤전 3:2; 딛 1:8). 믿음이 있던 여자들의 일이었습니다(딤전 5:10). 그러므로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정도 되면 누구나 대접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낯선 사람들조차 말입니다. 아니 성도라고 하면 누구나 사랑으로 대접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갇힌 자,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3절)고 하였습니다. 물론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는 자들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에는 너무 많았습니다. 로마제국의 핍박이 심했고, 유대주의자들의 핍박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들이 갇혀 있고, 학대를 받고 있는데 나는 괜찮다고 편하다고 그들에게 무관심하다면 죄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난을 받고 있는, 학대를 받고 있는 자들을, 심지어 감옥에 갇힌 자들을 생각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창살 없는 감옥에서 고통 받는 자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나도 함께 당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에 대한 긍휼이, 동정이 있어야 합니다. 갇힘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함께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와 주고 돌보아 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나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는 아무도 없었느니라”(빌 4:14-15)고 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그들이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선물을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빌 4:18절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학대를 받고 있거나 핍박을 받는 자들을 향하여 나 몰라라 하면 안됩니다.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생각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북한에 있는 믿는 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믿음 때문에 온갖 고문을 받으며 정치범 수용소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형제, 자매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옥과도 같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 꽃 제비로 팔려가는 탈북자들도 생각해 봅니다. 죽기 살기로 중국을 거쳐 동남아 나라를 경유하여 한국 땅에 오는 그들 말입니다. 그런 분들을 돕기 위하여 ‘그날까지 선교연합’ 선교단체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고, 우리들 가운데 몇몇 분들이 돕고 있습니다.
아니 잘 모르지만 우리 가까이에도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나 동료들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를 받으면서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분들을 우리가 돌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섬기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꾸준히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7-18)고 하였습니다. 말로만 사랑을 떠들지 맙시다. 기도해준다는 말로 사랑했다고 하지 맙시다. 기도하면서 실천합시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뿐만 아니라 낯선 나그네들에게조차 손 대접을 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우리 주님이 가장을 하고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의 집을 찾아서 두드리고 계신데도 문전 박대를 하시겠습니까? 그들을 영접하고 대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대접할 때에 상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눈에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믿음 때문에 학대를 받고 있는 자들을 잊고 살면 안됩니다. 갇힌 자들을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도와 주어야 합니다. 사탄 마귀의 세력 아래 힘들어 하는 자들을, 그 악한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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