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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5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16    
[1/29/06] 우리 하나님은 (5)
우리 하나님은 . . . (5) (히브리서 11:6, 24-27)
- 행함이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지난 주일에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찾기만 하면 만나주시는 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일이든지 그 동기가 하나님 나라이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어떤 핑계들도 버리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면 찾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하는 선택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우리 하나님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기뻐하신다는 진리입니다. 사실 믿음이라 함은 지난 4주 동안 살펴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나타내는 말인데, 매일 매순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믿음이 살아있어 행동으로 나타나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전한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믿음은 일회성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그 믿음으로 우리는 날마다 이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도 바울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살아가며, 믿음으로 사랑하고, 믿음으로 희생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예배하며,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결혼하고, 믿음으로 자녀를 갖고, 믿음으로 자녀를 키웁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러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이 있는 성경의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서 잘 가르쳐줍니다. 믿음의 영웅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39절에서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시대와 장소, 성격과 한 일들이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바로 그들이 한 행동은 다 믿음으로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행함이 있는 믿음의 상을 내리셨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남다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삶이 가능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우리도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칭찬 받는 삶, 상 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절에 믿음에 대한 간단한 정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실상(substance)은 사물의 본질적인 특성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집의 기초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믿음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영혼의 눈으로 보게 해주는 증거(evidence)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믿음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데 어느 정도 거룩한 불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소유하지 못한 어떤 거룩한 것을 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항상 바라는 것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필요로 하고 원하고 갈망하는 것은 무엇이나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다 이루어졌다면, 여러분의 모든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주님을 섬기고 있다면,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면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설교를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저는 믿기로 이 자리에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악이 가득하기에, 실망과 고통과 증오와 편견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기에, 이 세상에 사는 한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Ray Pritchard 목사님은 믿음은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믿고(believe),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고(see),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do)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참된 믿음은 여태까지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Vision 을 보고, 실제로 행하는 것이지, 결코 수동적이며 소극적일 수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생명력이 있기에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고, 노력하고, 시도하고, 이룩하고, 죄를 거부하며 의를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며,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꿈을 꾸고, 마침내 ‘성벽이 무너질 때까지’ 여리고 성을 돌고 또 돌게 합니다.

함께 읽은 본문에 나타난 모세의 예를 살펴봅시다. 24절에서 27절을 읽어보면서, 다섯 동사를 주의깊게 보십시오. ‘거절했다’, ‘더 좋아했다’(선택했다), ‘여겼다’, ‘바라보았다’, ‘참았다’! 즉 모세는 한 가지를 택하고 다른 한 가지는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였습니다. 사실 애굽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대접을 받으며, 세상 모든 것을 최상으로 누리며 자랐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불리기를 거절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권력을 거절했습니다. 연연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쉬운 결정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자기 생명의 은인인 바로의 딸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에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하여 그런 선택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기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때문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부와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무리와 합류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를 보았기에 애굽인들의 핍박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모세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이 그의 영적인 눈을 밝혀 주었습니다. 어떤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성경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26절하)고 말합니다. 모세는 이 땅에 두 세상이 존재하는데, 둘 중에 한 나라의 가치관에 맞추어서 사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보이는 세상의 권력, 쾌락, 명예, 자기 만족, 군사력, 즉 바로 왕이 통치하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의 세계,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며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중에서 바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주는 것들을 맛볼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이 숨을 거둘 때면 그들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들이 살며 추구했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 하나님 나라 기준에 맞추어 살던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지금 당장은 고난을 받겠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비로소 잔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상을 받으면서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하늘의 영광을 입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받는 고난과 함께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만족을 누립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기쁨, 만족을 누릴 것이며, 세상 사람들에게 거부를 당하고 조롱을 받는다고 하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모세는 이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애굽을 위해 사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은 주님을 섬기는 기쁨과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일시적인 고난과 40년의 광야 생활이 힘들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통을 받을 것이다!’
바로 믿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 숨겨진 세계의 실체를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믿지 못해도 진리를 믿고, 그 곳을 봅니다. 우리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도 모세와 같이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하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참된 믿음은 세상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고,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믿음을 생각해 보면서 두 가지, 믿음에 대한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감정이 이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기로 작정하는 의식적인 선택입니다. 감정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면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싶은 느낌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면, 그는 나무 한 그루 조차 벨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주위를 행진하고 싶은 느낌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면, 결코 그 성을 무너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감정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믿음의 기초가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하여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믿음은 선택하고, 그 다음에 행동하고, 그 다음에 감정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의심이 생기고, 반대에 부딪쳐도 믿음은 꺾이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우리는 아마 영원히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눈이 멀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고, 실제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우리의 의심이 사라지기를 기다린다면, 아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단순해야 합니다. 의심이 들더라도 믿음의 편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영적인 눈으로 보면서 말입니다. Philip Yancey 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시간이 지나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미리 믿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너무나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풀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일이 왜 그렇게 일어났는지, 다른 방법으로 일어날 수는 없었는지 알기 원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훗날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때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여러분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한다면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라고 하였습니다. 깜깜한 밤에 손에 든 등불은 한 발자국 내딛을 곳을 비추어 줍니다. 그렇게 빛은 어둠 속에서 한걸음씩 안전한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언제나 한 번에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빛 속으로 걸어가면, 그 빛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그 다음 걸음 내딛을 곳을 비추어 줍니다.
문제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는 거절했고, 선택하였고, 바라보았고, 참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 모두 다 앞을 내다보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비록 혹독한 시련이 있어도, 세상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았어도 참아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께서 인도하시는 곳은 어디나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1:17)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 1:21-22)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목사님, 만약에 예수님께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지요?’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주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면, 여러분이 생각할 때에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실 것이요, 주님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앞을 향해 말씀을 의지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며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시작하십시오. 이미 시작하신 분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믿으며, 영적인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보고, 못 한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행하고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칭찬을 받는, 기쁨이 되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 . . , 믿음으로 에녹은. . . , 믿음으로 노아는 . . .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 . , 하고 믿음장에 기록된 것처럼 여러분들의 이름도 이러한 명단에 포함되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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