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75,663
오늘방문 : 524
어제방문 : 3163
전체글등록 : 3,859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5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25    
[2/5/06] 우리 하나님은 (6)
우리 하나님은 . . . (6) (야고보서 1:2-4)
-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허락하시는 고난 –

지난 주일에는 우리 하나님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는 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처럼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영적인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보고, 못 한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행하고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자고 하였습니다. 의식적으로 믿음의 길을 선택하고, 어떤 의심이나 반대에도 꺾이지 않는 살아있는 믿음으로 살자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난이 없이는 성장하지 않기에 허락하신다는 말입니다. 고난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제게 인생이 참 쉽네요, 아무 어려움도 없어요’ 라고 말하실 수 있는 분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드시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악한 영향을 끼치는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돌아다 보십시오.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뉴스를 보십시오. 좋은 소식보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 세상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미국 속담에 ‘어느 인생에나 비 오는 날은 있다(Every life has a little fall in the rain)’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과 슬픔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지만(마 11:29-30), 그것은 바리새인들과 비교해 볼 때 훨씬 쉽고 가볍지만, 그래도 멍에는 멍에인 것입니다. 매일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우리 성도의 삶이 제일입니다. 가장 좋습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를 알고 믿기에, 하나님을 알고 믿기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 때문에, 주님 따라가는 것 때문에 희생하고 포기한 것에 대하여 이생의 삶에서도 몇 배로 보상이 있고, 내세에는 더 큰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핍박을 겸하여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것은 우리의 대적 사탄, 마귀들이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하였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네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딤후 2:3)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에게는 많은 위험과 수고와 유혹이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어려움을 우리에게 주시느냐 하면, 우리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성장하게 하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아는 자는 고난을 보는 시각이, 해석이 달라집니다. 정말 잘 대처하여 참으로 자신에게 유익하게 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과하면서 영적으로 성숙해 집니다. 승리를 체험하는 좋은 군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다가온 고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유익할 수도 있고, 손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장할 수도 있고 뒤로 후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고난을 피할 수 없고 하늘 나라 갈 때까지 계속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조금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믿음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욥을, 다니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이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
어떤 분이 이렇게 충고합니다. ‘고난이 닥칠 때 그 고난의 노예가 되어 희생당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일을 통하여 배우는 학생이 되게나.’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고난의 노예가 되는 희생자들은 대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말하며, 세상이 불공평하다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배우는 자세를 가진 사람은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하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또, 성경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하였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죄성이 남아있어서 늘 갈등을 겪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둘이 싸운다는 말입니다. 육체와 성령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끈질기게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죄성은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고, 이기적입니다. 물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하였기에, 성령이 우리 안에 있어 죄성이 온통 우리를 지배하지는 못하지만, 죄로 이끄는 힘이 아직 남아있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다면 죄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같은 입으로 찬송과 축복의 말을 하면서 욕하고 저주를 합니다. 사랑하면서도 시기와 질투로 미워하기도 합니다. 남을 섬기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 욕심을 챙깁니다. 복음을 전하고 돌아서서는 친구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성경을 읽고 나서 음란한 영화를 봅니다. 나타나는 양상은 다르지만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유는 이러한 갈등이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자녀들은 그런 갈등을 느끼지 않습니다. 죄가 부담이 되어 갈등을 느끼면서도 거룩해지기를 원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고, 더욱 예수님을 알기 원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여러분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실패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시기 원하시는 일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죄와 싸우는 것이 거룩한 유업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고 저주하고, 미워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비방하고, 음욕을 품으며, 온갖 더러운 생각을 하여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 사람은 양심에 화인을 맞은, 이 세상에서도 아무런 소망이 없는 폐인입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유혹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갈등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입니다. 갈등하며 전쟁하는 자체가 죄가 아니고, 마귀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 죄입니다.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죄입니다. 성도라면 아무도 그러한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육과 영의 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천국에나 가야 없어집니다. 우리는 그 날이 올 때까지 매 순간 싸우면서 나아갑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여러분이 의지할 때만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여전히 선택하여야 합니다. 육체냐 성령이냐, 의의 길이냐 죄의 길이냐, 내 방식이냐 하나님의 방식이냐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갈등이 있는 이유는 갈등이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고,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게 합니다. 주님만 의지하게 합니다. 회개하게 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예민하게 만들어 줍니다. 천국 소망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갈등조차도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이나 갈등을 통하여 영적으로 성장하기 원하신다면 오늘 본문을 깊게 묵상하여야 합니다. 여려움이 다가올 때 유익한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은 각양각색입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갑자기 다가오는 시련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이 구절을 J. B. Philips 는 ‘온갖 고난과 유혹이 네 삶에 가득 찼을 때 형제여, 그것을 침입자로 여기지 말고 친구로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너무 가슴이 찡하는 번역입니다. ‘친구로 받아들이라’! 물론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반응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다가온 고난을 의식적으로 친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 안목이 필요합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 어떤 고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으면 내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제가 올 첫째 주일에 드린 말씀인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셨든지, 허락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행복감과는 좀 다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견디기 힘들어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느끼는 만족감이 성경이 말하는 기쁨입니다. 또한 ‘나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내게 유익하라고 허락하신 것이다’고 믿는 것입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한 가지 경고하는 것은 여러분의 감정을 믿지 마십시오. 절대로 여러분의 감정이 여러분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 여러분의 감정은 절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기쁨으로, 혹은 신뢰하도록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느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 괴로움과 절망의 감정에 항복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처한 상황을 감정으로 판단하려 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결론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되돌아 갈 수 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 졌다. 나는 이대로 머물 수 없다. 그냥 주저 앉을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십시오. 감사할 기회로 삼으십시오.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미래 지향적으로, 불투명한 미래이지만 한걸음씩 내딛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믿음으로 행하고 나아가면, 우리의 영혼에 기쁨의 샘물이 솟아나 새롭게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본문 3절에서는 왜 고난이, 갈등이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니라”! 고난의 학교인 우리의 인생에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암흑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가? 일이 잘 풀리지않아도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도 주님을 놓지 않을 것인가?
또한,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부정함에서 정화시키기 위하여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겸손하게 하기 위하여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마치 금이 섞인 돌을 용광로에서 제련하여 불순물을 걷어내고 순수한 금을 채취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불 같은 시련’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일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용광로’를 견뎌 내야 합니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들은 고통의 용광로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인내를 얻게 될 것입니다. 순금이 될 것입니다. 욥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여기 ‘인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변치 않음’ ‘참을성’ 을 뜻합니다. 적의 포화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도망가지 않는, 전쟁의 시험을 거친 그런 종류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는 순교자의 모습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때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 불굴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4절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시련이 그 역할을 다했을 때,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것을 모두 갖게 될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외에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 중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든지 너무 조급히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시련을 거치기 전에는 여러분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고난이 올 때에 여러분의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여러분의 믿음은 사변적인,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주의 나라와 의에 대하여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찾아올 때에,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육체와 성령의 싸움으로 갈등을 느낄 때에 어떤 선택을 하는 지, 진실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려움 속에서 기다리면서 인내를 이루시고, 우리의 할 일을 감당하면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됩니다. 고난을,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 라는 질문보다는 ‘무엇을?’ 이라는 질문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 자신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두 단어를 기억하십시오. ‘기도와 인내’! 피하지 마십시오. 숨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 대항하지 마십시오. 원망하지 마십시오. 변명하지도 마십시오. 마귀와 흥정하지도 마십시오.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 ‘기도와 인내’ 뿐입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을 가르치시려 하십니까? 말씀하십시오, 주님! 제가 듣겠나이다’ 하십시오. 그리고 기다리십시오. 내 삶이 혼란스러워도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굳게 하십시오. 약속을 믿으십시오. 나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잊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잘 통과하시면 멋진 주님의 작품들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55 주일설교 [2/5/06] 우리 하나님은 (6)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25
1254 주일설교 [2/6/05] 서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임 한 태일 목사 2005-02-09 2523
1253 주일설교 [3/27/05] 부활의 기적이 우리의 삶에도 한 태일 목사 2005-03-29 2517
1252 주일설교 [1/29/06] 우리 하나님은 (5)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14
1251 주일설교 [7/1/07] 주를 힘입어 담대히 한 태일 목사 2007-07-02 2511
1250 주일설교 [5/13/07] 신앙의 어머니 한 태일 목사 2007-05-15 2505
1249 주일설교 [9/21/08] 고난 중에도 찬양을 한 태일 목사 2008-09-25 2495
1248 주일설교 [5/6/07] 우리가 믿는 것 8 한 태일 목사 2007-05-08 2494
1247 주일설교 [8/21/05]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한 태일 목사 2006-08-12 2494
1246 주일설교 [9/23/07] 부흥하는 교회 한 태일 목사 2007-09-29 2489
1245 주일설교 [2/11/07]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5 한 태일 목사 2007-02-13 2486
1244 주일설교 [12/31/06]한 해를 마감하며 한 태일 목사 2007-01-09 2484
1243 주일설교 [7/2/06] 체험하는 신앙 한 태일 목사 2006-08-12 2483
1242 주일설교 [10/8/06] 오늘 우리에게도 기적이 한 태일 목사 2006-10-09 2472
1241 주일설교 [3/11/07] 우리가 믿는 것 1 한 태일 목사 2007-03-16 2469
1240 주일설교 [1/7/07]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1 한 태일 목사 2007-01-09 2469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