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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12-29 (금) 00:5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57    
[12/24/06] 큰 기쁨의 좋은 소식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누가복음 2:8-20)
2000여년 전의 일입니다. 다윗의 후손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로마 황제 아구스도(Augustus)의 명을 따라 호적하기 위하여 고향인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갔다가, 사관(여인숙)에 있을 곳이 없어 아기 예수를 말구유에서 낳을 때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때 예루살렘 근처에서 한 밤중에 양 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갑자기 한 천사(가브리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저들을 둘러 덮을 때에, 두려워 떨고 있는 그들에게 천사가 말을 전합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10-12절)고 말하자마자, 많은 천사들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저는 오늘 2006년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함께, 그 때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전하여준 천사의 소식이, 우리 예수님의 나심이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복음)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본문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목자들에게 들려진 소식, 2000여년 전에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셨다는 사실이 어떤 소식이기에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첫째로, 가난하고 억눌린 자에게 주어진 소식입니다.
그 당시 양 치던 목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러운 양을 치고 닦아주고 돌보는 목자들을 대단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목자들에게 천사가 하나님의 영광 중에 나타나 구세주의 탄생을 전합니다. 그래서 그 몇몇 목자들이 어두운 밤 말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증인들이 됩니다(16-17절). 복음의 첫번째 증인들이 됩니다. 물론 그 이전에 마리아에게도 마찬가지이기에, 그녀도 천사로부터 자신의 복중에서 뛰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을 들은 후, 찬양 드리기를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 . .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들을 내리쳤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 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 1:46절 이하) 하였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받으신 후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에 이사야 61장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化肉降世, Incarnation) 이유는 저와 여러분 같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보잘 것 없고, 평범하며,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나는 죄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잘 났다고 생각하고 세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 마음이 교만하여 부유한 사람들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의 목자들처럼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죄 문제를 해결 받고 영적으로 자유함을 입어 다시는 죄의 종, 사탄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영의 눈이 멀었던 자들이 빛을 만나 주를 보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예수님의 첫 설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성탄의 예수님은 저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스스로 이 땅에 오신 자신처럼, 낮고 천한 사람들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성탄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입니다.

둘째로,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소식입니다.
듣고 무서워 할 이유가 없는 소식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천사가 나타났으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무서워하고 있는데 들려주시는 말씀은 엄청난 소식이었습니다. 11절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합니다.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나신 분이 구세주, 그리스도(메시아), 주(Lord)라는 소식입니다. 죄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위험, 염려와 근심, 질병, 사망, 심판 등 모든 재앙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실 구세주(Savior)이시니 더 이상의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Christ)란 구약에서 예언되어진 메시아, 즉 대제사장이요, 왕 중의 왕, 대선지자라는 뜻입니다.
왜 아기 예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야 했던 이유를 아십니까? 성령으로 잉태되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아십니까? 그래야 자신을 온전한 희생제물로, 죄 없으신 제물로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녀 성관계에서 태어난 아기는 누구나 아담의 후손으로 죄를 전가 받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용서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시는 대 제사장, 주권적으로 모든 세계를 다스리고 다스리실 왕, 앞으로의 일들을,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전해주신 대선지자! 모든 일의 주인이 되시는 주(Lord)! 이 사실이, 이 진리가 우리에게 궁극적인 기쁨을 가져다 주는 이유가 됩니다. 이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치는 좋은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택자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부인하려고 하여도 어쩌면 가장 나쁜 소식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은 또한 심판의 주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즐거움이 아닙니까? 마구간에 나신 아기 예수보다는 산타클로스가 더 인기를 끌고, 장사 속으로 인간의 향락을 위하여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지 않습니까? 또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온데 간데 없고, 평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인도주의(Humanism)적인 구제로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집 없는 사람을 찾아가는, 사회사업하는 날로 되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성령으로 태어나신 그 분이 그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영생의 기쁨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8절에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라고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성탄절이, Christmas 가 왜 기쁨을,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까? 왜 Merry Christmas 입니까? 어린아이들처럼 많은 선물을 받기 때문입니까? 선물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까? 참된 기쁨은 여러분의 구주, 예수님이 나셨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메시아, 구세주의 생일이기에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큰 기쁨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직접 대화할 수 있고, 간구할 수 있고, 가까운 교제를 할 수 있게 된 기쁨입니다.

세째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소식이요, 우리에게는 평화를, 평안을 가져다 주는 소식입니다.
그 당시 많은 천군 천사들의 찬송처럼, 아니 우리들의 찬송처럼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평화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하나님께 먼저 입니다. 그 다음이 사람에게 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비록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들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주시기 원하셔서 보내셨지만 아픈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과 아가페 사랑에 의해 인간들과 화목케 하는 길을 여셨으니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를 보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원하시던 큰 일을 결국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뿐 아니라,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모든 이들과 화목을 이루는,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되도록 평화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고 말씀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자기 백성, 이 진리의 말씀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오늘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죄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 구세주로 영접하시고, 그 분을 삶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고 섬기고 사시는 분들은 하나님께 이미 영광을 돌리고 있으며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많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어떤 사람과도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처음 본 증인들은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먼저 그것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임을 전해 받았습니다. 이유는, 그 소식은 죄인들,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주어진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은 구세주, 그리스도(메시아)가 되시는, 주께서 오셨다고 하는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평화를 가져다 주는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지체하지 않고 그 천사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5절 이하에 보면 주께서 저들에게 알려준 것을 보기 위하여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을 만나고, 아기 예수를 보고 그 전해 받은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몇몇 목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고, 처음 증인이 되게 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복음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받았으면 목자들과 같이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할 줄 압니다. 주의 크신 은혜를 전파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도 즉각적인 순종이 요구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20절).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탄, 초림이 없었다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존재하며 그 분이 인격적인 하나님인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에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목자들이 만났던 것처럼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아시고 이 세상에 그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을 위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로,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려고,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평화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를 나타내셨습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이 정말 여러분의 왕이 나신 것입니까? 정말 여러분의 구주, 그리스도, 주님께서 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사십시다. 목자들처럼 증인이 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고, 축하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생일 선물을 드립시다. 성탄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시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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