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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3-16 (금) 00:2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51    
[3/11/07] 우리가 믿는 것 1
우리가 믿는 것 1 (로마서 4:16-25)
- 사도신경 강해 서론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그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그 뒷 배경이 있습니다. 그 말과 행동 뒤에 숨어있는 이유를 알려면 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 가를 알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동기는 그가 무엇을 믿는 것,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신념(conviction)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신자(信者)입니다. 사실 무신론자라는 말이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도 하나님,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니까요. 사실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무엇인가를 믿고 삽니다.  
한편, 기독교 신앙에도 2000년을 내려 오면서, 그 믿음의 모양이 가지각색으로 나타납니다. 이단은 무론하고, 초대교회들이 믿었던 신앙에서 곁길로 떠나가 가짜 신앙이 많이 생긴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 나름대로 믿고 있는 것을 고백하기도 하고, 고백하지 않기도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고 하였습니다. 여기 마음과 입, 믿는 것과 고백하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된다고 합니다. 고백하여야 된다고 합니다. 고백이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이요, 세상에 대하여 증거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고백하는 자가 고백한 것에 대한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짜 신앙과 진짜 신앙을 알려면, 아니 참 신앙, 진짜 신앙이 무엇인지 잘 알고, 믿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들 가운데 참된 그리스도인들, 진짜 성도들에게 필수적으로 암송되고, 또 마음으로, 입으로, 행동으로 고백되어 지는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과,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우리들의 행동 강령으로, 기독교 윤리 헌장이라고 할 수 있고,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의 본(model)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주일 예배 때마다, 새벽기도 때마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초대교회 사도들의 신앙 고백문입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까지 역사상의 참된 주님의 교회가 변함없이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 내용입니다. 신경(Creed)이란 말은 라틴어의 'Credo' 에서 나온 것으로 '내가 믿는다' 하는 뜻을 갖고 있는 신앙의 선포입니다. 사도신경에도 '내가 믿사오며'라고 반복되지요. 곧,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는, 성경말씀에 기록된 복음진리를 바르고 간략히 그 중심내용을 간추려 준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신경 혹은 신조는 교회 안에 들어오는 이단을 물리치고, 교회를 보호하는데 필요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부들도 그러한 목적으로 교리를 간추려서 신앙고백을 만들었습니다. 지상교회는 온전하지 못하기에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라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고백이 바르지 못하면 교회가 흔들리고, 구원의 확신이 흐려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신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들에게 주신 신,구약 66권의 기본 뜻을 집약해놓은 교회사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처음에는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단순한 것으로, 초대 12사도들의 신앙고백이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주후 140-150년 경 로마교회에서 사용한 '로마신조'를 원형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5세기 경 이래 확인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라는 질문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그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여러분은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믿든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롬 1:17).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것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를 추구하면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주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믿음으로 굳게 섭니다(stand firm).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후 1:24)고 하였고, 이어서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고후 5:7) 하였습니다.
그러면, 먼저 믿음(faith, belief)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정의, 그 요소들을 살펴봅시다.

첫째로, 믿음은 참된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참된 명제 혹은 진술, 진리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어떤 사람이 1 + 1 = 2 라고 할 때에, 내가 1 + 1 = 2 라고 믿는 것입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요 와싱톤은 미국의 수도라고 할 때에 그 진술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진리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믿음은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많은 불신자들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신뢰하면서(trust), 의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와싱톤에서 서울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면 서울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의하고, 믿는다 하더라도, 서울 가는데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그것은 산 믿음이 아닙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할 때에는 그 분을 정말 신뢰할만 하기에 그 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실제로 공급받을 때에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적으로(intellectually) 알고, 감정적으로(emotionally) 느끼고, 의지적으로(willingly) 결단하여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산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큰 배의 닻(anchor)과도 같습니다. 큰 배가 정착할 때에는 바다 깊은 곳에 닻을 내려서 움직이지 않도록 하지요. 바다 깊은 곳에 닻을 내리면 아무리 큰 파도가 와도 흔들리거나 떠내려 갈 염려가 없음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확실하게 알고,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 세상의 험한 풍파를 만나더라도 이 믿음의 닻이 우리를 하나님께 굳게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믿음의 대상을 잘못 선택하여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지요. 피조물들인 유한하고 연약한 인간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다든가,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기에 종말이 비참한 경우를 말합니다.
반면에 믿음의 대상인 굳건한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였는데(16절) 그 이유를 설명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지적으로 알고 믿을 뿐 아니라, 의지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보통 사람 같으면 전혀 바랄 수 없었을텐데 그는 믿음으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합니다(18절).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가나안으로 가라고 할 때에도, 백세에 얻은 자식을 바치라고 할 때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삶을 맡기었기에 떠날 수 있었고,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았기에,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임을 철저히 신뢰하였던 것입니다(17절). 조금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히 11:1).
또한 재림신앙을 강조하는 어떤 현실도피자가 아닙니다. 현재의 상황(reality)을, 문제를 잘 직시하면서도 인격적인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요.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존재는 믿으면서,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의지하지 않으십니까? 어쩌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는 거리가 먼 가짜 믿음인지 모릅니다. 알고 있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자신을 온통 내어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째로, 믿음은 온전한 헌신이 뒤따라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헌신하는(commit)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는 내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결정이 그 분에 의하여서 되어져야 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를 주장하도록 그 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우리가 영접한다고 할 때에 단지 손님으로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권자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철저히 헌신하는 것처럼, 우리도 철저히 하나님께 헌신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스스로 낮아지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먼저 만나주시며,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낮아져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 사랑에, 은혜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그 반응이 헌신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의 표현이 순종으로 보여지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을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하라는 그대로 따라 하는 순종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헌신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과정이 힘들고, 많은 시간이 걸리고, 때때로 실망이 찾아오고, 때로는 잘못 갔다가 되돌아 갈 때도 있다 하더라도, 그는 참고 인내하여 끝까지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습니까?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확실히 믿었던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하지요. 오히려 그 과정이 그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의(righteousness)’로 여기셨다고 2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23-24절) 하였습니다. 로마서 1장 5절 하에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라고 하심으로, 믿음은 곧 순종으로 표현되어짐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의지적으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하여 순종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한 것입니다. 반대로 죽은 믿음은 말로만 믿고 행동으로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약 2:17).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전혀 쓸데없는 무익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참 믿음의 이러한 헌신과 순종이 나타납니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그 하신 약속은 신실하게 이루실 줄을 확신하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사십니까? 순종하고 살려고 성령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십니까? 그렇다면 참 믿음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신자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와 예배도 드리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행실도 보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에 진정한 헌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가짜 신자요, 가짜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 가운데서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믿고, 얼마나 믿고 있는가는 너무 중요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그 사람 삶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캄캄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는 더욱 올바른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옛적으로 돌아가서, 초대교회 사도들이 믿었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만을 알고, 피상적으로 믿고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몸에 어디엔가 염증이 생겨서 점점 곪아가며 열일 펄펄 끓고 있다고 합시다. 항생제를 먹으면 몸에 저항력이 생겨서 그 병균을 죽이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또 믿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결국 못 고치고 죽고 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성령님에 대하여 아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무지하여서 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으며,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온전히 헌신하여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 믿음은 살아있는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요,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주일부터 몇 주일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강해하면서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믿고 있는 것인지 더욱 확실히 깨달아서 어떤 거짓 신앙이든지 구별하며, 예수님 앞에 정결케 서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들으시면서 크신 은혜가 있어, 여러분의 삶에 변화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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