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76,155
오늘방문 : 1016
어제방문 : 3163
전체글등록 : 3,859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7-02 (월) 23:4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12    
[7/1/07] 주를 힘입어 담대히
주를 힘입어 담대히 (사도행전 14:1-7)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그 크신 은혜를 받고 나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가장 최근에 누구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해 보신 적이 언제 입니까? 아직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해보신 적이 없다면 여러분이 믿는 주님이 정말 살아계신 분이신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아주 오래 전에, 처음 뜨겁게 믿을 때 복음을 전해보시고는 요즈음은 전혀 하지 않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아마 주님과 거리가 많이 멀어진 현재의 영적 상태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누구나 증인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계신 분들이 증인의 증언을 듣습니다. 여러분의 말을 듣고, 행실을 봅니다. 여러분을 보는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심을, 우리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배우고 깨닫습니까? 일대일 양육에서 전도 주제에 관한 성경공부에 보면 아래와 같은 짤막한 시가 나옵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복음의 편지를 한 장씩 쓰고 있지요/ 여러분이 행하는 행동과 말들로/ 사람들은 여러분이 쓰는 것을 읽지요/ 거짓이거나 진실이거나/ 여러분은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13:51), 이고니온이라는 지역으로 옮겨가 복음을 전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도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니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많이 믿었다고 합니다(1절). 물론 믿지 않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2절에서는 믿지 않는 자를 순종하지 않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복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동일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믿음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악한 생각 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악감’이라는 헬라어 원어는 독약을 먹인다는 뜻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사탄이 사람들 마음 속에 악한, 독한 생각을 품도록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도하여야 합니까?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복음을 전하는 일이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굴하지 않고 오히려 이고니온에서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셔서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였습니다(3절). 반대 세력이 있다고 하여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주님을 힘입어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그 동안 배운 성경 실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을 아주 논리정연하게 잘하는 기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분을 내세우며 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님을 힘입어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매 순간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혈의 능력을,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있었다는 말은 끈기를 가지고 전했다는 말입니다. 한 두번 해보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영혼 사랑, 주님 사랑이 그들의 심령이 뜨겁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은혜의 말씀인 것이 확실히 체험이 되었고,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표적과 기사라고 하였습니다.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유명한 신학자인 Donald Gray Barnhouse 는 그의 주석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할 때에는 아직 기록된 성경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사도들에게 그러한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었다. 즉 이 시점에서는 단 한 줄의 신약성경도 쓰여지지 않았으며,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정말 진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전하는 말씀과 사역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 보이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설명입니다. 만약 요즈음도 완성된 성경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런 기적을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완성된 성경이 있어서,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요즈음 하나님의 능력인 초자연적인 역사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오늘날도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그 때처럼 지금 그렇게 자주 기적을 보여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 보이면서 복음을 전하자 계속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겨나서 사도들을 좇게 되었습니다(4절). 그런데 그래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편에 서는 유대인들을 좇는 자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는 기적을 보이면서 전하는데도 믿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이에 대하여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13장, 막 4장, 눅 8장). 그 마음이 아스팔트 길거리와 같이 강퍅하게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돌들이 널려있는 밭과 같아서 흙이 얇아 금방 말라버리는 경우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감동을 받는 것 같지만 금방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아니면 잡초밭과 같아서 씨가 싹이 터서 자라려고 할 때에 잡초들 때문에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 걱정, 염려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경우입니다. 단지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착하고 좋은 마음이어서 말씀을 듣고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뿌리도 깊게 내리고 영양분을 잘 받아 성장하는 경우에는 놀라운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전도 대상자의 마음밭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밭부터 일구어야 합니다. 강퍅한 마음을 부드럽게, 주위에 돌들을 다 치워버리고, 잡초를 제거할 수 있도록 사랑을 부어야 합니다.

사탄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악감을 품게 해서 선동하는 것으로 복음 전파를 막지 못하니 이제는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연합하여 사도들을 대적합니다(5절). 능욕하며 돌로 쳐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6-7절) 하였습니다. 혹시 어떤 분들을 ‘왜 사도들이 죽음이 두려워 거기서 도망했느냐, 순교의 각오로 계속 돌에 맞아 죽더라도 복음을 전했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도들이 죽음이 두려워 비겁하게 도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혜로운 움직임이었다고 믿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어리석게 전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연히 고난을 자처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떠난 것입니다. 돼지나 개에게 진주 목걸이를 해 주지 않습니다(마 7:6). 인생을 돼지처럼, 개처럼 살면서 좋은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계속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는 속히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좋은 소식을 받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 계속 갈 이유가 없습니다. 즉 전도에 있어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 운동은 그 때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계속 진행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사탄의 방해공작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금방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전하다가 순교를 당하여 더 이상 복음운동이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어떤 상황에도 절대로 중단되지 않습니다. 엄청난 고난과 핍박이 있다 하여도 복음은 계속 전진하고 확장되어 갑니다. 그래서 복음은 지난 2000여년 동안 한 곳에 머무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도들에 의하여 시작된 전도 여행은 유럽을 거쳐 영국으로, 그리고 청교도들에 의하여 미국으로, 미국을 거쳐 우리 한국 땅에도 이르게 되어서 저와 여러분들의 믿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한국에서 중국, 동남아시아로, 러시아, 중동 등 미전도종족들에게, 그래서 결국 다시 이스라엘에 복음이 왕성하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선교사들이 선교여행 중에 고난 당하는 모습 속에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볼 것이 아니라, 바로 땅 끝까지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는 복음운동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 복음의 역사에 어떻게 동참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면, 당연히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세상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항상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즉 복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은혜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요, 감격의 소식이지만, 오히려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걸림돌이요, 거침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드시 싫어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사탄의 역사가 계속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는 선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연합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능욕하며 돌로 치려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대세력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한편 분명히 믿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좇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대조적인 반응을 반응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서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신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피흘리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십니까? 이 자리에 이렇게 앉아 계신 것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너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확실한 진리의 말씀이요, 은혜의 말씀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은혜의 말씀을 받아들이신 성도 여러분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놀라운 사랑의 좋은 소식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아니 명령을 받았음에도 잊고 살거나, 핑계를 대고 전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입을 열어 전해야 합니다. 사실 복음(유앙겔리온, gospel)의 원래 의미는 전쟁에서 승리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소식입니다. 그 크신 사랑의 소식입니다. 너무 좋은 소식입니다. 자랑거리입니다. 사실 사도들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만나주신 후에 그 부활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까?
또, 입으로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행동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서론에도 언급하였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무엇인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 크신 사랑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聖徒)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래야 불신자들로부터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사실 교회를 세우신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 나라 확장인 전도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내용 가운데,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0-21)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2제자들만을 위하여 애써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들의 전하는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데, 마치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하나가 되지 못하면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데, 누가 교회에 나아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가 되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참으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하나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반대 세력이 있어서 핍박과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끼리 먹고 즐기며 지내라고 교회를 세워주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중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 다른 교회를 통해서 하십니다. 다만 훗날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잘 감당하였느냐고 말입니다.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느냐고 말입니다. 믿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다만 말로, 행실로 우리 주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책임,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55 주일설교 [2/5/06] 우리 하나님은 (6)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26
1254 주일설교 [2/6/05] 서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임 한 태일 목사 2005-02-09 2523
1253 주일설교 [3/27/05] 부활의 기적이 우리의 삶에도 한 태일 목사 2005-03-29 2517
1252 주일설교 [1/29/06] 우리 하나님은 (5) 한 태일 목사 2006-08-12 2514
1251 주일설교 [7/1/07] 주를 힘입어 담대히 한 태일 목사 2007-07-02 2512
1250 주일설교 [5/13/07] 신앙의 어머니 한 태일 목사 2007-05-15 2505
1249 주일설교 [9/21/08] 고난 중에도 찬양을 한 태일 목사 2008-09-25 2495
1248 주일설교 [5/6/07] 우리가 믿는 것 8 한 태일 목사 2007-05-08 2494
1247 주일설교 [8/21/05]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한 태일 목사 2006-08-12 2494
1246 주일설교 [9/23/07] 부흥하는 교회 한 태일 목사 2007-09-29 2489
1245 주일설교 [2/11/07]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5 한 태일 목사 2007-02-13 2486
1244 주일설교 [12/31/06]한 해를 마감하며 한 태일 목사 2007-01-09 2484
1243 주일설교 [7/2/06] 체험하는 신앙 한 태일 목사 2006-08-12 2484
1242 주일설교 [10/8/06] 오늘 우리에게도 기적이 한 태일 목사 2006-10-09 2472
1241 주일설교 [3/11/07] 우리가 믿는 것 1 한 태일 목사 2007-03-16 2469
1240 주일설교 [1/7/07]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1 한 태일 목사 2007-01-09 2469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