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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4-21 (월) 21:4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386    
[4/20/08] 반석 위의 새성전
반석 위의 새성전 (마태복음 7:24-27)
작년 2007년 첫 주일에 새성전 비전을 구체적으로 이루어가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할까 생각하고 빌립보서 3장 10-11절을 가지고,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서론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무리 큰 집, 새 집을 원하여 열심히 돈을 모아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큰 집이, 새 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새 집이 좋은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불행할 뿐입니다. 작은 집, 헌 집에 살 때에도 한 마음으로 서로 화목하고, 행복하면 큰 비전 속에 더 큰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큰 집, 새 집에 이사해도 더 화목하며, 더 행복하여 기뻐하며 큰 은혜 속에 주신 꿈을, 비전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즉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큰 집, 새 집을 주어도 오히려 불행인 것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며, 돈을 좀 벌어보려고 사업체를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당사자가 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더 고생하게 됩니다.’
드디어 오늘 우리 교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성전 착공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다시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새성전 공사가 되기를 원하면서 말씀을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건축에 있어서 기초가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신앙의 기초, 우리 교회의 기초를 다시 점검하고, 우리 모두 기도하면서 공사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현재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처음 사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그 크신 하나님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있습니까? 예배 생활, 기도 생활, 경건의 시간 등이 어떠합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꾸준히, 아니 더욱 열심히 주님을 사랑하며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십니까?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도,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도, 말씀을 듣는 가운데도 혹시 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알고있는 성경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하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켜 말로만 ‘주여’라고 외치며, 생활에 믿음의 열매가 없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시면서(7:15-23), 구원에 이르는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자기 삶의 기초를 쌓는 자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을 집 짓는 것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집 짓는 두 사람이 똑 같이 말씀을 듣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 듣기는 듣습니다(24, 26절). 구원의 길에 대한 말씀을 듣고 집을 짓는 것도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여 무너질 집을 짓고자 하겠습니까? 처음 의도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집을 짓는 것이지요. 집을 짓는 주거 환경이나 장소도 비슷합니다. 둘 다 나중에 폭풍을 같이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 두 사람의 삶에 겉으로 드러난 환경은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보다 나은 환경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어쩌면 같은 교회를 다니며, 같은 설교를 듣고, 교제하며, 세상에서 고생도 비슷하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슨 차이가 났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순종하여 주초를, 기초를 반석 위에 놓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여 기초를 모래 위에 놓았던 것입니다.
즉, 참 성도, 참 제자의 표시는 단지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은 후 믿고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2-25)고 하였습니다. 즉 주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금방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잠간 주님의 은혜를 맛보며, 새로운 삶을 맛 볼지 몰라도 그런 것들이 금방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4-6)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5-16)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그 진리에 대한 지식을 고백하더라도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그 진리 안에 살지 않는다면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의지로 짓는 것입니다. 자기 의와 자기 만족, 자기 의지로 집을 짓는 사람을 진리의 참된 가르침을 받아 들이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순종의 삶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변화된 삶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증거가 나타나는 변화 말입니다. 들은 말씀에 순종하려는 몸부림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자기 의나 자존심을 버리는 삶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자아를 죽이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집을 짓고 나면 반드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며 바람이 몰아치는 폭풍이 옵니다. 그것을 현재 인생살이 가운데 오는 많은 어려움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정확한 해석은 마지막 종말입니다. 한 인생의 종말일 수도 있고, 이 온 세상의 종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결과가 크게 두 길로 갈라집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눅 9:47-49)고 하였습니다. 잠언 30장 12절에는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돌아서야 합니다. 주님의 뜻으로,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난 무리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라고 합니다. 여기 ‘놀래니(ejkplhvssomai, be amazed)’는 문자적으로 사람 자신이 얻어 맞았음’을 뜻합니다. 비유적으로 그 마음에 놀람으로 박혔다는 의미입니다. 무리들은 주님의 가르침에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런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흑백을 분명히 가려준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의 권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권세를 가지고 말씀하심을 깨달았습니다(29절). 그러나 그렇게 놀라버리고는 만 것이었습니다. 놀람보다는 믿음이, 순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놀라게 하려고 하신 말씀도 아니었고, 단지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구원의 좁은 문으로, 협착한 길로 초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기만 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험해 보십시오. 아니 내가 나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고,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판단하시면 무엇이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혹시 입으로는 주를 고백하면서 주님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고 살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 구원 받지 못한 것입니다. 많은 말씀을 들어도 행하지 않는, 순종하지 않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참으로 구원 받은 믿음이라고 한다면 주님의 뜻을 행하고 살려 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나 자신을 내어 버리는 희생을 감당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도 크기에 내가 치러야 할 희생을, 대가를 기꺼이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치루어야 할 대가가 싫어서 감당하지 않는다면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행실을 보고 구원이 확실한지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잘 구별을 못할지 몰라도 폭풍이 몰아칠 때가 옵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인생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제일 싫은 사람이 말로만 다 하는 사람입니다. 전혀 행동이 뒷받침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최근에 저희 교회 가족이 되신 분들에게는 생소하시겠지만, 5년 이상 되신 분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던 새성전을 짓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새성전의 기초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아무리 멋있게 잘 지어 놓아도 기초가 잘못되어 무너져 버린다면 그 얼마나 낭패입니까? 사실 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건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주로 고백하는 무리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무리들이라면 그 삶에서 말씀을 순종하며 주께 헌신한 무리들입니다. 말로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만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행실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모습들이 나타나야 진실한 성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참된 성도들이 힘을 합하여 새성전을 짓기 시작한다면 반석 위에 기초를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참된 성도들이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하신 말씀을(삼상 12:23) 기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되 특별히 이런 큰 일을 진행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하여 시마다 때마다, 예배 마다 힘써 모여 기도하며 새성전을 짓는다면 얼마나 튼튼한 반석 위에 세워지겠습니까? 새성전 짓는 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악한 사탄 마귀들의 공작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수천명이 모이는 큰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릇도 못됩니다. 그러나 200-300명이 모여도 진짜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를 원합니다. 저는 300명의 정말 헌신된 용사들만 모여도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만 많이 모이면 무엇합니까? 대부분이 진짜 신자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얼마나 문제를 일으키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으로가 아니라 사람의 생각대로 교회를 끌고 나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말로만 믿고, 순종하고, 헌신하는 가짜 신자들이 모이는 교회는 정말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들의 모임, 그런 모델 교회를 원합니다. 여러 교회를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지역에서 본 받을만한 개혁주의 장로교회가 없지 않습니까? 말씀 중심의 교회, 말씀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역사하는 교회 말입니다.
결단하십시오. 참 믿음으로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며 추구하는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여 속이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참된 헌신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반석 위에 집을 짓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감동을 주셔서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새성전을 지을 수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짓는 새성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참으로 큰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로 쓰임 받을 줄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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