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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0-01-05 (화) 05: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02    
[1/3/10] 신년주일 - 다시 일어서는 힘
다시 일어서는 힘(히브리서 12:1-3)
2009년 묵은 해를 보내고 2010년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는 지난 송구영신예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주시기 원하시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를 지켜 보호하시며,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사 은혜를 베푸시며, 역동적인 평강을 주시기 원하시는 능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오늘 신년 첫 주일을 맞아 지난 한해의 어려웠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넘어지고 쓰러졌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다시 한번 일어서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 원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사성어의 칠전팔기(七戰八基)라는 말이 사실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의인, 즉 믿는 자들은 일곱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010년을 맞는 우리는 어쩌면 우리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간을 맞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말이 들려옵니다. 우리의 인생 항로에서 거센 폭풍을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거센 폭풍을 맞았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 앞 11장에 열거된 수 많은 증인들 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요셉도, 다윗도, 바울도 다 풍랑을 만났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풍랑 중에도 다시 일어서서 헤쳐 나갔던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거센 폭풍 가운데 쓰러져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입니다. 쓰러졌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힘이 어디서 오는 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1절). 지난 주일 설교와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달음박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고전 9:24). 천천히 걷는 것이 아닙니다. 조깅도 아닙니다. 마라톤 경주입니다. 경주(race)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ajgwvn)의 뜻은 고통이 따르는 씨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당히 힘든 경주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라톤을 뛰는 사람이 무거운 것을 가지고 뛸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거센 풍랑 가운데 있는 배는 짐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풍랑을 통하여 내가 이제까지 버리지 못한 것들을 버리게 만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놓을 것을 과감히 내려 놓아야 일어서는 힘이 생깁니다. 무엇인가 여러분을 얽매이게 하는 것이 있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듭니다. 자라갈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을 얽어매는 모든 장애물들, 예를 들면 나쁜 습관, 잘못된 생각, 거짓, 불의, 교만, 시기, 질투, 방탕을 버리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아니 자존심 마저도 버려야 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죄를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것들로 매여 있으면 일어서지 못합니다. 그 줄을 끊어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도, 수영 선수도 조금이라도 스피드에 방해가 되는 것은 다 제거합니다. 그것이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때문입니다. 사실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은, 실패하는 것은, 즉 바닥 체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버리는 체험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게도 그 상황에서 버리지 못하면 계속 바닥에만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일어설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풀이나 꽃 나무를 보시면 늦가을이나 겨울을 맞으면서 다 버리고 그 해를 마감합니다. 그리고는 새 봄이 되면 새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입니다. 바닥은 절망의 자리가 아니고, 치고 올라가는 자리입니다.
1절        하반절에 보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고 합니다. 여기 인내의 뜻은 계속 앞으로 나가겠다는 결단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를 넘어뜨리는 것들을, 포기하게 하려는 것들을 극복하고 나가겠다는 결단 말입니다. 그냥 어쩔 수 없으니까 참는 것이 아닙니다. 수동적인 참음이 아니라 능동적인 참음, 역동적인(dynamic) 참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시련이 이 역동적인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온전히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고 하였습니다. 내게 다가온 고난이나 시험에 대한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내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인내를 만들어 내려고 주시는 고난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잠시 넘어졌다 하더라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내 생명 다할 때까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다시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결승점을 바라보아야 다시 일어서는 힘을 받습니다(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라톤을 뛰다가 너무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어도, 아니 넘어진다 하더라도 결승점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시 일어서게 되어 있습니다. 상을, 면류관을 바라보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이스의 마라톤 경기에서 끝까지 달린려 승리한 사람에게 면류관이 주어지듯이 말입니다.
달음박질 하는 목적이 분명하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승점에서 면류관을 들고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다시 일어서는 힘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좋은 예, 모델이 아닙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처절한 기도를 들으면 우리 주님도 십자가 지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고통을, 그 수치와 모욕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사실 사람에게 제일 힘든 것이 누구에겐가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진실을 몰라주고 다르게 생각하여 판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큼 오해를 받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논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내하셨습니다. 이유는 그 앞에 있을 즐거움을 보신 것입니다. 사흘 후면 살아나시고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을 미리 보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경주를 하시면서 결승점에 도달하면 받게될 중요한 상을 기대하지 않으면 분명히 끝까지 달리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달릴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앞에 놓은 큰 장애를 보지 마시고 그 뒤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센 폭풍이 몰아칠때 그 시커먼 구름을 보지 마시고 그 구름 뒤에 햇빛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나 환경을 보지 마십시오. 자꾸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바라볼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내 자신의 연약한 모습도 보지 마십시오. 그러면 다시 일어서기 힘듭니다. 우리의 목표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꾸 주님을 바라다 보면 주님을 닮게 됩니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그를 기다리다가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이 되었던 소설의 주인공처럼, 우리가 늘 예수님만 바라보고 산다면 능히 다시 일어설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격과 언어와 성품이 주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믿음의 주(主)라고 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그렇게 경주를 마쳤던 성도들과 주위에 함께 뛰는 성도들을 생각하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다시 일어설 힘을 받게 됩니다(1절상, 3절).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믿음장에서 길게 우리의 앞서간 믿음의 용장들을 열거한 후에,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어서 우리도 끝까지 경주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그들이 이 세상 험한 풍랑을 만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11:36-38).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던 믿음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쓰러졌다가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서서 이겨내었던 성도들이 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지금 주님 옆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운동경기에서 홈 그라운드의 이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유는 홈에서 경기를 할 때에 자기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경기장을 둘러싸고 응원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더 힘을 내고 잘 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쓰러질 때, 거센 폭풍 가운데 흔들릴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어쩌면 모세가 ‘나도 너 같이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나이 40에 성질을 부리다가 살인까지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일어날 힘을 주셔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도록 인도했다. 그러니 너도 다시 일어나라.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지, 무슨 실수를 했든지 하나님은 너를 바라보고 계시다. 나도 인생의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갔더니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졌더라’고 하면서, 우리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영웅들로부터 격려를 받는 힘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또한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3절)고 하였듯이,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도 힘든 경주 속에 피곤하여 지쳐 쓰러져 낙심하는 우리를 향하여, 우리의 잘못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을 박았던 죄책감 속에 낙심하는 우리를 향하여 참으시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히 4:15). 아니 우리 주님께서 부축하시고 붙드셔서 함께 뛰자고 하실 것이니 힘이 생기지 않겠습니까?이런 주님을 생각하면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신앙생활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자전거는 뒤로 갈 수 없습니다. 뒤로가는 것은 넘어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도 없습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있으면 잠시 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신앙생활이 뒤로 가거나, 정체 상태라면 이미 넘어진 것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살았는 신앙생활은 그저 앞을 향해 갈 뿐입니다. 어쩌다 무엇에 부딪쳐서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서서 페달을 밟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마라톤이건, 수영이건, 자전거 타기든 공통점은 반복입니다.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연속되는 반복의 결과가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것은 지루함, 지겨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야 결승점이 보이게 됩니다.
옳은 길, 바른 길을 계속 반복하여 뛰다가 피곤하여 지치거나, 어떤 장애물 때문에 중도에서 그만두고 싶을 때 힘이 필요합니다. 다시 시작할 힘, 다시 일어설 힘이 필요합니다. 힘을 얻고 또다시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최종 승리를 맛보게 됩니다.
물론 다시 일어서는 힘은 우리 주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우리를 자꾸 얽어매는 무거운 짐을 벗으면, 구체적인 죄를 버리면 주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주위에 방해되는 것들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결승점을 바라보면 주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우리를 앞서간 수 많은 믿음의 증인들을 생각하면 힘을 주십니다. 어쩌면 박수치며 응원하고 있는 믿음의 증인들을 생각하면 힘이 생깁니다. 아니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나의 부족함을 다 아시는 주님을 의지하면 힘이 생깁니다.
새해에 이 힘을 얻어 지루할 지 모르지만 또 다시 일어서서 반복하셔야 합니다. 복잡한 삶을 정리하고 단순하게 반복해야 합니다. 손과 발을 호흡에 맞추어 달려야 합니다. 앞을 바라보고 페달을 계속 밟아 나아가야 합니다. 옳은 것이라고, 바른 것이라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예배 생활, 기도 생활, 찬송 생활, 전도와 봉사 생활 등등 말입니다. 때때로 지루할 지 몰라도 반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너무 힘드셨던 2009년 한해였습니까? 그래서 그만 지쳐 쓰러져 버렸습니까? 일어서서 다시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결승점을 바라보며, 어떤 고난이라도 극복할 힘을 주실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증인들 응원을 생각하며, 나를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리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인내하여 궁극적인 승리를, 면류관을 받기까지 말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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