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262,013
오늘방문 : 1390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870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4-21 (일) 20:25
분 류 주일설교
첨부#1 screenshot_20240421_at_81905e280afpm.png (1,590KB) (Down:0)
ㆍ조회: 67    
피곤한 사역 가운데 제자들을 세우심 (막 3:7-19)



2000여 년 기독교 역사상 주님을 따르는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보듯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에, 즉 잃어버린 영혼들, 상한 심령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시는 사랑으로 바라보는 주님의 눈으로 자신들도 바라볼 때에 그들은 주님의 일군이, 제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30살이 되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며 공생애 사역을 시작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이르기까지 홀로 사역을 해왔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왕에게 목 베임을 받아 순교한 후 당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었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랐지만, 그저 주님의 사역을 보고 있거나, 섬김을 받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시며, 완악한 바리새인들에게 진노하신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주인이 자신이라고 하니,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함께 예수를 죽이려고 하자(1-6절),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그 자리를 피하여 갈릴리 바다로 물러가니 큰 무리가 따라옵니다(7절).  이두매, 두로, 시돈 등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에까지 그 소문이 퍼지게 되어 온 지경에서 허다한 무리가 에워싸고 미는 것이었습니다(8-9절). 그러자 제자들에게 바닷가에서 작은 배를 띄우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십니다. 이유는 우선 예수님이 많은 사람을 고쳤기에 병든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만지고 낫기 위해서 였습니다(10절).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복음을, 하나님 나라를 전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기에(막 1:14-15) 무작정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만 찾아오는 그들을 멀리 하십니다.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예수님에게 큰 무리가 찾아올 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요 26)고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예수님을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며 부르짖습니다(11절). 병 낫기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귀신들조차 그렇게 예수님을 알아보고 고백하니 우리가 보기에 좋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경계하십니다(12절). 귀신들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증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막 5:19). 주님은 그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에게만 구원에 대해 증거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악한 영들은 증인으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홀로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12제자들을 동역자로, 하나님 나라 일군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막 1:16-20) 따라다니던 그들을 예수님이 사도로 세우셔서 일군 삼으십니다. 그들이 앞으로 주님과 함께 어떤 사역을 하면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마가는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13-15절) 하였습니다. 누가는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3) 하였습니다. 여기 ‘부르다’라는 원어는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 자신 앞으로 부르실 때에(행 2:39) 사용되었고, 선택한 자들을 부르셔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사명을 주실 때(행 13:2; 16:10)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불렀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무슨 부탁을 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주의 일을 위임하기 위하여, 맡기기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보내사”(14절) 한 것처럼, ‘사도’로 칭한다 함은 주의 일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는 자, 사명을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중생의 체험과 주께서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단계에서 3년간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보고 배우는 단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체험하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면서 권능을 주심으로 사도로서의 직분을 끝까지 감당한 것입니다.
한가지 넘겨 짚고 싶은 것은 12제자를 부르실 때에 그들이 내적으로 훌륭하거나 개인적으로 똑똑하고 신실하고 잘 나고 능력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아도 단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 역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주님께서 빚으실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특히 복음서에서 그들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가를 그대로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록 3년 간이나 주님을 옆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했던 그들이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기 전에는 믿음의 성숙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제자들과 인내하시면서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하여튼 주께서 12제자를 세우시고,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셔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주시는 훈련을 시키시는 데에 있어서 우리는 네 가지 진리를 깨닫습니다.

첫째는, 이 제자들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2제자 중 누구도 자신들이 먼저 주님을 따르며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주께서 먼저 선택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13절)고 하였으며, 주님께서 지상 사역의 마지막에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고 하였습니다. 제자들과 상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상의하셨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하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사야, 다른 모든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12제자들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하여 특별한 목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뭐 그들이 똑똑하고 신앙이 좋고 특별하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셔서, 그의 제자로 선택되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하나님이 구속 역사를 펼치시기 위하여 그 백성을, 사사나 왕이나 선지자를 택하셨듯이 말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 나라 일을 하게 하십니다.

둘째는, 주님이 기도한 후에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모든 일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했습니다. 모든 일에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선택도 예수님의 오랜 기도 후입니다. 마가는 본문 13절에 “또 산에 오르사” 라고 간략하게 적었으나, 누가는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였으니”(눅 6:12-13)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철야기도를 하시고 나서, 기도 응답의 결과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이기에 주께서 그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셋째는, 훈련을 받아 준비되기 위하여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중생함을 입고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님을 따른다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다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서 준비가,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3년간을 옆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배우고, 때때로 오해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주께로 나오신 분들에게 이러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니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훈련을 받지 않은 분들에게 훈련이 필요합니다. 3년 동안 제자들이 별로 주님을 도운 것도 없고, 주께서 하시는 일에 동의를 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방해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게 할 때에는 주님의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다 ‘훈련과정’이요, ‘준비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름 받은 제자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배우지 않고는 좋은 일군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가까이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간이나 동거 동락하면서 배워야 했습니다. 교실에서 강의를 들으며, 좋은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경험으로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성장은 경건한 삶의 본을 보면서 직접 가까이 배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존경할만하고, 사랑과 인내가 넘치며, 거룩한 삶 자체만큼 좋은 스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한 경건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가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마음을 옆에서 느끼는 것만큼 좋은 훈련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르심을 받는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많고, 부적절한 사람들이었지만 스승 되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의도는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고가 되도록 가르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때때로 실수가 있어도 예수님은 참고 계속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지막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까지도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영적 무지는 대부분 교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서로 누가 더 낫고 더 높은 자리에 앉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께 종종 꾸지람을 들은 것을 우리는 압니다(막 9:33-34; 마 20:20-21).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막 9:36). 혹은 믿음의 부족으로 연약함이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으로 믿었지만 그 능력이나, 그의 선하심, 진리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는 연약한 모습을 보였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겸손과 믿음의 부족은 헌신하는 데에도 연약을 보였습니다. 쉽게 주님과 약속하고 어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계속 참고 가르치셨습니다. 실제 겸손의 본을 보이시면서 겸손을 가르치셨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면서 믿음을 가르쳤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헌신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승천하신 후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 능력으로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그 제자들은 가롯 유다를 제외하고, 대신 사도가 된 맛디아를 비롯하여 모두 그렇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냄을 받기 위하여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2제자들은 훈련을 받은 후 세상으로 보냄을 받기 위하여 선택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사도로 칭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제자들을 부르신 까닭이 세상에 보내기 위함 입니다. 우리가 훈련 받고 준비하는 이유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여 제자를 삼으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마 28:19-20). 상한 심령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을 도우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그냥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습니다(15절).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하여 우리는 사도들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행 3:2-8; 참고 14:8-10).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행 5:12) 하였으며, 귀신도 쫓아 내고(행 5:16), 다른 병들도 고쳐 주었습니다(행 28:8-9). 이렇게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예루살렘은 물론이고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16-19절까지 12제자들의 이름이 나타납니다. 흥미로운 것은 선택된 제자들 가운데 이 가롯 유다가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19절). 물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12제자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마치 교회 안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음을 말씀하신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마 13:24-30). 우리 교회 안에는 가라지가 하나도 없기를 바라지만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부르심을 받고 훈련 받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넓고 깊어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전혀 자격 없는 부족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부르시고 준비시켜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그 뜻 가운데 자격 없는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신 역사 아닙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를, 아브라함을, 이삭을, 야곱을, 모세를, 기드온을, 삼손을, 다윗을, 엘리야를, 요나를 아니 오늘 본문의 12제자들을 보십시오. 심지어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그들에게 부족한 면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다만 그들은 부르심에 순종하고, 기꺼이 훈련을 받아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당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요 부르심입니다.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그저 감사하고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허락을 받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자격이 있어서, 믿음이 좋아서 부르신 것 아니었습니다. 다만 순종하고 훈련을 받아 준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보냄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다른 사람에게 여러분을 소개할 때에 ‘저 사람들은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내 생활에 필요한 돈을 대는 물주들이야. 나를 돌보기 위해서 필요한 분들이야’ 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을 가지겠습니까? 매일 하나님을 그저 여러분의 필요나 채워주고 돌보시고 지키시는 분으로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대하고 사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만 생각하고 산다면 심각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종으로, 일군으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 상한 심령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시는 그 사랑의 열정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동역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부족한 종을 통하여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 나라의 일군들은 세상에 보내어져 추수를 해야 할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시면서 훈련받으며 일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모두가 가롯 유다와 같은 가라지가 아닌, 겸손히, 믿음으로 헌신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하나님 나라 일군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86 주일설교 성령을 훼방하는 죄 (막 3:20-30) 한태일 목사 2024-04-28 25
1385 수요설교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만 자랑하라 (빌 3:1-6) 한태일 목사 2024-04-25 25
1384 주일설교 피곤한 사역 가운데 제자들을 세우심 (막 3:7-19) 한태일 목사 2024-04-21 67
1383 주일설교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막 2:23-3:6) 한태일 목사 2024-04-14 649
1382 수요설교 진실한 믿음의 친구요, 동역자들 (빌 2:19-30) 한태일 목사 2024-04-12 416
1381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토요일 새벽) 관리자 2024-04-08 588
1380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주일 오후) 관리자 2024-04-08 606
1379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주일 오전) 관리자 2024-04-08 597
1378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토요일 저녁) 관리자 2024-04-08 414
1377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과 간증집회(금요일 저녁) 관리자 2024-04-07 442
1376 절기설교 부활의 능력을 믿는다면 (요 20:1-18) 한태일 목사 2024-03-31 520
1375 수요설교 채찍질하고 조롱하며 때리더라 (요 19:1-3) 한태일 목사 2024-03-28 637
1374 절기설교 잘못된 믿음 (요 12:12-16) 한태일 목사 2024-03-24 607
1373 주일설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막 2:18-22) 한태일 목사 2024-03-17 727
1372 주일설교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3-17) 한태일 목사 2024-03-10 798
1371 주일설교 회막을 향하여 진을 치고 (민 2:1-2) 관리자 2024-03-04 906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