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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12-02 (목) 07:00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613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약 4:6-10)
두 사람이 함께 한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가 가깝다고, 친밀한 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함께 한다고 다 가깝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만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가깝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과 먼 사람도 있습니다.

4장 1-5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잘못된 기도를 설명하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욕심이 많아서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자기 정욕대로, 이기적으로 하는 기도는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채워 달라고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응답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져 있으니까요. 원수로 있으니까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니까요. 그러니 응답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는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6절)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 3:34)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겸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더욱 큰 은혜”라 함은 우리가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을 훨씬 능가하는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과 벗 되지 않기로 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기만 하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서도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실 때 불평이나 원망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든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그 모든 것이 주님 안에 있기에,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낮추면 분명히 특별한 은혜를 주시고 높여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무작정 우리에게 ‘겸손하라’ 말씀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몇 가지 행동지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전제는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7절상) 입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우리의 의지를 복종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기에 마땅히 그렇게 해야지요. 종으로서,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원하여 그렇게 복종해야 마땅합니다.
7절에 이어서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첫 걸음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마귀가 늘 기회를 노리고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의 영역에 교묘히,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공격합니다. 돈에 약한 사람은 돈으로, 이성에 약한 사람은 성적으로 유혹합니다. 명예에 약한 사람은 자꾸 자신을 드러내라고 부추깁니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마귀를 대적하라고 할 때 사람을 두고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이 마귀 같아도 사람이 마귀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조정하는 배후세력이 사탄 마귀입니다. 그 사람의 약점, 기질이나 혈기 때문에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하고 다투면 안됩니다.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영을 대적하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사실을 말했을 때, 베드로가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예수님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 책망하신 것이 베드로를 정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인성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약하게 하려는 마귀의 궤계를 보신 것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은 우리의 죄의 충동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죄의 영향력이 내게 미치려고 할 때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태도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않는다”(히 12:4)라고 꾸짖은 이유가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는데 죽기를 작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귀는 대적을 하되,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8절)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대적하면 우리를 피하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가까이할수록 우리와 가까이하십니다. 가까이한다는 것은 자주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일까?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 묻고, 말씀과 기도로 답을 찾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가까이하면서 죄와 가까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8절 하반절에 우리에게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죄인이 손을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이 딴 데에 쏠려 있으면 성결하게 하라고 합니다. 나뉘어진 마음을 한 마음으로 바꾸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접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저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라는 것입니다. 내 욕심과 정욕을 죽이라는, 내 자아를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9절)라고 명령합니다. 솔직한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두 마음을 품은 것을 깊이 뉘우치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두 마음으로 가지고 웃고 즐길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 ‘웃음’은 세상적인 천박한 웃음입니다.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애통하며 회개해야 할텐데 웃고 즐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두 마음을 품어 죄를 짓고는 만족하면서 웃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교인들이 지금 거짓된 만족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근심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고후 7:10)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결코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부르짖고 그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많은 시편에서 보듯이, 마치 다윗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삶이 좀 어려워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괜찮아지면 그 사모함이, 간절함이 사라집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던 모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하고 싶어서 자꾸 어려운 일을 주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으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으니까요. 얼마나 어리석나요? 어려울 때는 물론,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칼빈도 ‘배가 부르니까 기도가 나오기 보다 하품이 나오더라’고 했다고 합니다.
좀 괜찮아졌다고 하나님을 멀리 하지 마십시오. 더 큰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더 가까이하십시오. 끝없이 겸손하십시오. 낮아지는 만큼 주님께서 높여주십니다. 낮아질수록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역사상 그런 경험한 분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한 분이 19세기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라는 분입니다. 개혁주의, 칼빈주의 목사요, 신학자요, 암스테르담에 자유대학을 세우고, 총장을 지냈었고, 나중에 수상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서도 저술한 책만 100권이 넘고, 잡지에 기고한 글이나 논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말하기를, ‘19세기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위하여 준비된 시대였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 지식에 관심이 많았던 자유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젊었을 때 한번 어느 집에 심방을 했는데, 그 집 부인이 젊은 목사와 대화하는 가운데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 부인의 권고로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그 맛을 알게 되어 쓴 유명한 고전이 수상록 ‘하나님께 가까이’입니다. 정성구 박사가 이 책을 번역할 때 ‘경건 명상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죄를 지적해주며, 책망할 때 애통하며 슬퍼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손과 마음을 깨끗이 씻습니다. 바르게 합니다. 고칩니다.
또한,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께 관심을 갖는 사람은 주님의 몸인, 교회에 관심을 갖습니다. 당연하지요. 교회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 교회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의 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집니다. 희생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더욱 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인생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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