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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9-12 (월) 09:1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358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신 5:11)


지난 주일 제 2계명 강해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게 만들어 놓은 교회 안의 십자가나 예수님 초상화나 사도들 성상 등이 우상의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 빠뜨린 것은 심지어 천사들조차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천사는 우리 성도들의 심부름꾼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 1:14)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눅 17:21), 예수님이 있다(고후 13:5), 성령님이 있다(롬 8:15-16)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것입니다(롬 8:29; 갈 4:19; 엡 4:13). 즉, 눈에 보이는 무엇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절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영광을 바라보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아 멘!
   
   한편,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이름을 자주 사용합니다. 예배 시간에는 물론이고, 평소의 삶 속에서도,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말입니다. 찬양과 기도에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제 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치 아니하리라”(11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말은 ‘헛되게 한다, 낭비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 하나님을,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를 수 있습니까?
   우선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헛되이 불려질 수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은 예배 말입니다. 전혀 심령이 함께 하지 않는 예배 말입니다. 몸만 앉아 있는 예배입니다. 그야말로 교회 마당만 밟고 가는 분들입니다.
   찬양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헛되게 부를 수 있습니다. 찬양의 내용이 마음에도 없는 것이라면 헛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영감이 없는 죽은 찬양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부르는 찬양, 곧 죽은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을 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불러야 합니다. 또한 아무리 뜨겁게 부르는 찬양이라도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세상 유행가와 다름이 없습니다. 유행가도 얼마든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에, 비록 가사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어도 사람들의 감정을 흥분시키기 위한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기에 헛된 것입니다. 그냥 자신을 위한 노래일 뿐입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대표기도 하는 분들의 기도에 여러분의 마음이 합하여지지 않는다면 헛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 대표기도 하는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기도하거나, 자기를 나타내는 기도라면 그것은 당연히 마음에 합하여질 수가 없습니다. 그 기도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자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건성으로 듣는다면, 딴 생각을 하고 듣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가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말만 한다면 설교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상 이야기, 혹은 교양강좌나 도덕적인 설교에 그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그 크신 사랑과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교회에 왔다 하더라도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저 사람들만 만나고 간다면 헛되이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한 것입니다.

   또한, 예배 때만 아니라, 우리의 평소 삶에서도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의 이름이 헛되이 불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대체로 미국 사람들은 193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청교도 신앙의 가정이 급격히 줄고, 자유주의와 인본주의 물결이 온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인들이 많아지고, 점점 불신자들이 늘어나다 보니까 너무나 쉽게 욕을 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욕 가운데 하나님(God), 예수(Jesus Christ)가 들어갑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스꽝스러운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이민을 와서 영어를 배우는데 이 욕을 제일 먼저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를 잘 못하면서도 욕은 빨리 배워서 조금만 화가 나면 그들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합니다.
   그리고, 욕은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어떤 일을 당하면 가장 쉽게 나오는 것이 ‘Oh My God!’ 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불러놓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넘어갑니다. 왜 그 때 하나님의 이름이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릅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이야기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워낙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서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제발 ‘Oh My!’ 에서 그치라고 수차례 강조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는 것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했다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약을 했다면 최선을 다해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3계명을 어긴 것이 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하는 거짓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예, 그 영광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영어로 ‘I swear with God’s name’ 이라고 하지요. 심지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들의 입에서도 쉽게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헛된 맹세입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사업을 하면서도, 사람들과 약속을 하면서도 말입니다. 심지어 법정에서 성경책에 손을 얹고 맹세를 해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하나님에 대하여 경외심을 품어야 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시는 경우, 꼭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함부로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레 19:12)는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마 5:33-34)라고 하셨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라고 했다라고 하면서, 나중에는 번복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들먹이며 약속하거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고 해놓고서는 뒤집는 경우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경우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한 예를 생각해 봅시다.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남 유다 여호사밧 왕이 한번은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이라는 성을 정복하기 원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 때 여호사밧 왕은 우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물어보자고 합니다. 그러자 아합 왕은 선지자 400명을 모아 놓고 길르앗 라못 정복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니까 금방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리이다”(왕상 22:6)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좀 이상해서 다른 여호와의 선지자 미가야에게 물어보자고 하니, 아합 왕이 그는 왕에게 대하여 길한 예언보다도 흉한 예언만 한다고 해서 사로잡아 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즉 400명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 않고 아합 왕의 뜻으로 동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을, 다른 사람의 소원을 하나님 뜻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됩니다.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점을 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믿는 자들의 생활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도 제 3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할 때 그 사람만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욕을 먹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텐데, 반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수치스럽게 하는, 망령되이 일컬어지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딤후 2:19)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얼마나 많은 신자라고 이름하는 자들이 믿는 자답게 살지 못하여 불신자들에게 욕을 먹고 있습니까? 복음 전도의 길을 막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제 3계명에도 경고가 들어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할 때마다 벌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오래 참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쉽게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어떤 분은 ‘죄 짓고 나서 회개하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는 분도 계십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분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떻게 하다가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짓지,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음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8-9)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의적으로, 일부러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더럽히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사랑의 교제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십계명 전체의 원리입니다. 사랑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계명 앞에,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위대하신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만홀히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서론에 언급하였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닮기까지, 예수님의 형상을 온전히 닮아가기 원하십니다. 마음에 이런 소원이 있어야 예배든, 생활이든 그저 형식적으로, 타성적으로 내용이 없이 그냥 그렇게 살지 않게 됩니다. 죄를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정말 마음으로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헛되게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 영예를 실추시키지 않습니다. 그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려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높이며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모습을, 그 생활을, 그런 예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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