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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7-11 (일) 02:5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11    
믿음으로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십시오 (히 11:8-10)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 주어도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말리다가 오히려 간섭하지 말라며 싸우던 두 사람이 말리던 사람을 쳐서 죽였다는 예기도 듣습니다. 점점 참으로 간섭하기 힘든 시대는 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나이 많으신 어른이 말하면, 선생님이 말하면 속의 마음은 어떻든 간에 순종하는 자세로 고개를 숙였는데, 요즈음은 "당신이 뭔데" 하며 반말하는 젊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간섭 받기 싫어하고 제멋대로 살기 원하는 인간을 위해서 참으로 부지런히, 꾸준히 간섭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인간은 끊임없이 대들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간섭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여러분 가운데 그렇게 끈질기게 간섭하시는 하나님에게 결국 항복하고 믿게 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러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믿음으로 잘 받아 복을 받은 사람들이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신약성경은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요,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 3:7)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하나님의 간섭을 잘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고향을 기꺼이 떠났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8절)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여 부르시기 전까지 아브라함은 태어나면서부터 75년을 살았던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날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땅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땅입니다. 당대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여 돈을 잘 벌었던 부자였습니다. 그가 평생 잘 살아온 땅, 문명이 발달해 살기 좋은 그 땅에 많은 이웃과 친구를 두고 75세에 어느 누가 이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냥 고향 땅에 머무르는 것이 아브라함에게는 아내 사라와 함께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셨을 때,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요, 행동으로 옮기기에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안다고 하면 보다 쉽겠지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아내와 함께 떠난 것입니다. 비록 주위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비방하였을지라도 말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고 했습니다(창 12:7).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떠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는 언약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그 어떤 간섭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 놓고 따릅니다. 내 경험과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너무 달라도 믿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약속을 신뢰하며,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간섭을 받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주님을 따르라고 하실 때 순례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옛 삶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 5:37-38)고 비유로 말씀하셨고,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였습니다. 또, 에베소교회에게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엡 4:22-23) 한 것처럼, 믿기 전의 불신앙과 무신론자나 이교도의 사고방식,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간섭을 받아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가치관으로 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새 땅에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옛 것을 다 포기한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다 버려야 합니다.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앞을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과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 놓인 어떤 장애물도, 어떤 문제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래의 밝은 소망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믿음으로 인내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9-10절)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가족들에게 전해져서 3세대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이 그와 함께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순례자로 살면서 견고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약속의 새 땅에 거하였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도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지으실 미래의 영원한 천성을 바라며 기다렸습니다. 이 세상의 땅이 영원히 살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소망하였습니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을 믿고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1-2)고 한 것입니다. 이 하늘나라 소망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잘 참아냅니다.  
소망이 확실하면 이 세상의 어떤 고생도 힘들지 않습니다. 천국 소망이 분명하면 고생하는 것이 길게 느껴져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분명하면 무슨 일을 만나도 이 세상 순례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믿는 소망이 분명하다면 얼마든지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간섭을 잘 받은 아브라함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는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간섭을 잘 받은,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은 대가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하였습니다(롬 8:15).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간섭을 잘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야곱의 장막에서 귀여운 아들로서 온갖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아버지 야곱의 장막에서 풍요롭게 살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요셉의 삶을 간섭하셔서 어린 나이에 비전을 보게 하시고, 형들에게 팔려 남의 나라에 종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후의 그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즉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심한 기근으로 고생하는 자기의 가족들과 친족들을 구하였습니다. 모세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비록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애굽 왕의 딸의 양자로 왕궁에서 좋은 교육과 환경에서 40살까지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 당시 최강대국의 왕실에서 살았습니다. 그러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간섭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의 결과로 비록 어려움이 있었으나, 모세는 자기의 만족을 이끌고 430년의 포로 생활에서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당시의 최고의 명문 전통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고 정통 혈통, 즉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별 어려움 없이 잘 나가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로마의 통치아래 있다고 해도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당시의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 간섭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받은 결과 바울은 기독교의 복음이 온 땅에 퍼질 수 있게끔 한 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만나서 의기투합하여 만든 공동체가 아닙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자 만든 모임도 아니고, 정치를 하려고 모인 공동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불러주실 때, 간섭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입니다.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모세처럼, 바울처럼 하나님의 간섭을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옛 땅을 떠난, 옛 삶을 청산한 우리들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젖어있던 구습으로부터의 떠남은 하나님께서 간섭하심의 시작입니다. 간섭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에 즐겼던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기적인 내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떠나 하나님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풍습과 유행, 수많은 우상을 영향을 받은 가치관에서 떠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간섭을 받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믿기 전에 사랑했던 것들과 작별해야 하며, 우리가 붙들고 의지했던 것들 것 결별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괴롭고 아프겠지만 그런 경험을 통하여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간섭하심을 받은 사람은 많은데 실제로 복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은 적습니다.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받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죄성을 따라 내 마음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한때 간섭을 받았지만 자신이 주저앉은 자리를 완전히 떠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떠나도록 명령을 받았건만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전능하셔도 옛 것을 버리지 못하는 자들을 억지로 끌어다가 축복의 자리에 앉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옛 것을 애착하여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처럼 떠나야 할 갈대아 우르를 용기를 내어 떠나십시오. 요셉처럼 아버지와 형들의 집을 떠나십시오. 모세처럼 애굽의 왕궁을 떠나십시오.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의 유대종교를 떠난 것처럼 떠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어 축복의 통로로 삼고 싶어하는데, 하나님이 싫어하는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복이 주어지겠습니까? 결단하십시오.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버리십시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간섭하심을 잘 받고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귀한 복을 주시려고 우리의 삶을 간섭하고 계시는데, 만약 우리가 ‘지금 이대로가 좋사오니’ 하면서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엄청 사랑하시면서 간섭하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고집대로 그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의 간섭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디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 나그네요, 이 세상의 순례자들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사랑하는 주님을 눈과 눈을 맞대고 영원히 함께 살 천국입니다. 이 소망을 확실히 붙드십시오. 이 나그네 길에서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나, 어떤 고난과 문제가 닥칠지 모르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가는 길이 좁고 힘들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가까이 품어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복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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