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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8-08 (월) 11:0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163    
성도의 의무(4) (롬 13:8-10)




인생을 가장 보람 있게 사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좋은생각 월간지의 윤재윤 변호사는 어떤 사물을 다루는 더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정보, 지식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내면이나 관계에 관하여는 지혜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을 보람있게 사는 법도 찾을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꾸짖은 사람들이 바로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킨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은 곧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오늘 본문 서론에, 또 마지막 결론에도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8절하), 또,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0절하)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고 하여도 이웃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곧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을 잘 못 지킨다 하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산다면 율법을 다 지킨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이웃 사랑은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분들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법을 지키면 얼마나 칭찬을 받을까요? 자기는 법을 지킨다고 우쭐대면서, 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멸시한다면, 사랑이 없다면 자기 자랑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나라의 시민이기 때문에 이 세상 나라에 대한 의무도 있다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자들, 위정자들에게 순복해야 합니다(롬 13:1-7). 관원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책임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8절상)고 하였습니다. 우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해서, 오늘날 우리들이 집을 사거나 차를 살 때에, 사업을 할 때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말고 다 현금으로 사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이 사역할 당시 로마 교회 교인들 가운데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이, 일도 잘 하지 않으면서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서 먹고 마시면서 무책임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그런 무책임한 생활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빚을 지다”는 동사는 헬라어 현재완료형으로서, 과거에도 그러했는데 지금도 습관적으로 빚을 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계속 빚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갚지 않고 계속 빚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오늘날 현대 사회에 적용을 하면 계속 신용카드 빚으로만 산다는 것입니다. 늘 남에게 돈을 빌려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잘 갚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카드를 사용했으면 반드시 한 달 안에 갚아야 합니다. 편리함 때문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카드를 의지하면서 살면 안됩니다. 성도는 자신의 재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욕심을 따라 무리하게 돈을 빌리는 것은 안됩니다. 내 분수에 넘치게 사치하며 허영심을 채우려고 빚을 내어서 명품을 사지 않습니다. 탐심 때문에 빚을 내는 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은 괜찮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슨 뜻입니까? 우선 우리는 하나님께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은 것뿐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도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준 것이며, 자녀들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직장이나 사업체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이라고 해서 전혀 갚지 않고 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빚을 갚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많은 사람에게 사랑의 빚을 집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죽을 때에도 많은 사람이 슬퍼하며 여러분의 장례를 위하여 사랑의 봉사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오늘날의 여러분이 된 것은 결코 여러분 스스로 된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혼자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으며, 혼자 서게 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심지어 고아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고아원의 선생님이나 고아원을 후원하는 분들의 도움이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많은 사랑의 빚을 다 갚을 수는 없어도 최선을 다해 남을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이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늘 사랑할 생각을 하고 살고,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40).

그래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8절하). 그러면서 모든 율법의 요약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 가운데 이웃에 대하여 지켜야 할 법들을 이야기합니다. 아시다시피 십계명은 두 파트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네 계명과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여섯 계명입니다.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1계명부터 4계명을 지키지 않을 수 없고, 이웃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5계명부터 10계명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9절)고 하였습니다. 비록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과 9계명이 리스트에서 빠졌을지라도 이 모두가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면 다 지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부모를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에게 거짓 증거를 하겠습니까? 이웃의 아내나 남편을 간음하겠습니까? 이웃을 살인하겠습니까? 이웃의 것을 도적질하겠습니까? 탐내겠습니까?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에,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에 음욕을 따라 간음을 하게 되고 가정을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아내나 남편, 자녀들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아내나 남편, 자녀들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성도라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도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 사랑 때문에라도 더더욱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사랑이 없기에, 이웃을 욕하고 미워하며 살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시작하시면서 처음 하신 산상수훈 설교 가운데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마 5:22)고 하셨습니다. 여기 “노한다”의 헬라어 원어의 뜻은 뿌리깊은 분노를 가슴에 품는 것을 말합니다. 형제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 진노하여도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라가”는 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미련한 놈”은 형제가 나이는 들어서 어른 같은데 지능은 어린아이 같다 라고 멸시하면서 내뱉는 말입니다. 즉 무슨 말이든지 형제를 인격적으로 모독하며 욕하는 것은, 화를 내면서 함부로 말하는 것은 곧 살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형제를 미워하며 욕하면서 자신이 살인했다(요일 3:15)고 생각하는 분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쉽게 미워하면서 ‘I hate someone!’이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믿는 형제, 자매들에게보다 이 세상의 이웃들을 향하여 까리따스의 사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12장 9-10절에서 형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 주위에 있는 불신자라 하더라도 그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결코 우리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0절)고 하였습니다. 즉 죄악과 사랑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미국의 제1차 영적 대각성의 주역이었던 유명한 Jonathan Edwards 는 ‘신자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영적 감각이 생기게 되고, 이로써 그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 새로운 감각을 부여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랑의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엄청난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받은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그 아가페 사랑을 입은 사람은 그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의 이웃에게 까리따스의 사랑을 하게 되는데, 이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의지적으로 사랑합니다. 사랑의 감정이 생길 때, 이웃을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지적으로 사랑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느낌이 없어도, 좋은 감정이 없어도, 아니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나는 사랑하며 살아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내 느낌, 내 감정에 상관 없이 사랑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이 생각이 나의 태도를 바꾸어 사랑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으면, 그 빚을 내가 갚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살면, 남은 인생이 보람된 인생이,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인생 얼마인지 몰라도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과거에 그런 생각이 없으셨다면 오늘서부터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기를 바랍니다. 주위 사람들과, 이웃들과 관계가 좋지 않으시다면 다 내 탓으로 생각하고, 내가 사랑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사랑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그것이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사랑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큰 것입니다. 고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오늘 본문 설교를 하시면서, 만약 우리가 사랑하면 자유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노예는 사실 가장 많은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라고 말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오히려 얽매이는 것입니다. 자기를 그 미운 감정에 사로잡혀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론 인간의 본능, 죄성 때문에 우리 힘으로 내 이웃을 사랑하기는 힘듭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은혜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성이 죽어지고, 지성이 설득되어서 그 은혜를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기자이자, 작가인 Mitch Albom 은 그의 교수였던 Morris Schwartz 가 죽으면서 남겨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is to learn how to give out love and let it come in!”, 즉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가를 배우는 것이며,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너무나 성경적인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거짓말하시면 안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뿐만 아니라 이웃들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요 13:34-35).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마 22:37-39). 이것이 성도의 의무 중 가장 큰 의무입니다.
이 사랑은 생각만 하는 사랑도 아니고, 말로만 하는 사랑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약 2:15-17). 까리따스의 사랑은 대가를 치르면서, 희생을 하면서 실제로 사랑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혹시 우리는 너무나 나만, 내 가족만, 내 교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우리의 눈을 다른 사람에게, 다른 가족에게, 다른 교회나, 이 세상이 소외되고 어려운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 돌려서 까리따스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나가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35-40).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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